대청봉 가는 길 1 – 한계령에서 서북능선까지

나는 지난해 시월 중순쯤 처음으로 설악산의 대청봉에 올랐다.
올해도 나는 비슷한 시기에 또 설악산을 찾았다.
이번에는 그녀와 함께 였다.
우리는 10월 16일 월요일 새벽 5시 30분쯤 집을 나서
동서울 터미널에서 한계령가는 6시 30분 버스를 타고 설악으로 향했다.
버스는 세 시간을 달려 9시 40분쯤 한계령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아침을 먹고 발걸음을 산으로 옮겨놓았다.
오늘은 한계령에서 귀때기청봉과 대청 방향의 분기점,
그리고 그 분기점에서 끝청에 이르는 서북 능선을 걸어본다.

Photo by Kim Dong Won

한계령 휴게소에서 바라본 한계령의 모습.
안개가 골짜기를 향하여 머리를 길게 뽑으며 움직이고 있었다.

Photo by Kim Dong Won

사실 설악산같이 험한 산은
초행길엔 설레임과 더불어 두려움이 함께 따라붙기 마련이다.
지난 해의 초행길엔 그래서 길을 갈 때 두려움이 많았다.
두번째 길엔 그 두려움이 없다.
지난 해도 나는 이 나무 밑에서 사진을 찍었다.
낯이 익다는 것은 반가움이 된다.
한해전에 이곳을 지나가며 터두었던 나무와의 인연을 되새김하며
잠깐 동안 나무와 반가운 눈인사를 나누었다.

Photo by Kim Dong Won

한계령을 올라갈 때 버스의 차창으로 보니
아래쪽의 계곡엔 아직 많은 단풍이 고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그러나 등산로로 들어서니 단풍은 거의 찾아보기 어려웠다.
초입에서 겨우 만난 단풍은 붉은 색이 완연했지만
단풍잎 사이가 숭숭 뚫려있어
그곳으로 흐린 하늘이 마구 비집고 들어오고 있었다.
하지만 단풍의 색은
한참 동안 눈길을 붙잡고 있기에 충분할 정도로 붉었다.

Photo by Kim Dong Won

설악산을 오르다 보면
자주 다람쥐를 만난다.
어떤 사람들은 다람쥐도 쥐 아니냐며
다람쥐를 징그럽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사람도 옷을 잘 차려입으면 사람이 달라보이듯이
아무리 쥐라고 해도 다람쥐는 줄무늬 옷을 잘 차려입은 패션 리더라서
쥐와는 확연히 달라보인다.
또 설악산의 다람쥐는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서
카메라를 가까이 들이대도 잘 도망가질 않는다.
한 녀석이 낙엽을 뒤져 도토리 한알을 찾아낸 뒤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해주었다.

Photo by Kim Dong Won

나뭇잎이나 나무의 자태를 보면 눈에 많이 익은데
이름은 생각이 나질 않았다.
껍질이 빨간 열매가 빨간 씨앗을 속에 간직해 두었다가
이제 문을 열고 땅으로 내려보내려는 중이다.
아마 땅으로 뛰어내릴 때 엉덩이가 아프지 않도록
낙엽 사이의 푹신해 보이는 곳을 고르고 있는 중일 것이다.

Photo by Kim Dong Won

그녀가 저만치 걸어간다.
한계령에서 대청봉으로 가는 길은
일단 가파른 산길을 따라 봉을 두 개 정도 넘어야 한다.
오르락내리락하는 길이지만
중간중간 평탄한 산길이 잠깐씩 나온다.

Photo by Kim Dong Won

올해 여름의 비피해가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는 곳이다.
다자란 커다란 나무가 뿌리채 뽑혀 나뒹굴고 있었고,
마치 산의 거죽을 아래쪽으로 죽 긁어낸 듯한 상채기가 그대로 남아있었다.
비가 엄청나게 왔던가 보다.

Photo by Kim Dong Won

히히히, 무섭지.
머리를 헝클어 뜨리고 귀신놀이하자고 덤빈다.
나도 모자를 벗고 긴머리를 헝클어 뜨린 뒤
“히히히, 더 무섭지”하고 놀렸다.

Photo by Kim Dong Won

멀리 안개 속에 바위 하나가 보인다.
살펴보니 하나의 바위가 아니라
바위에 바위가 얹혀있고, 사선으로 금이 가 있다.
금방이라도 미끄러질 것 같은데
저러고 아마 수천년의 세월을 저 자리에 있었을 것이다.

Photo by Kim Dong Won

중간에서 그녀가 넘어졌다.
두 시간 정도를 걸은 뒤였다.
다시 한계령으로 가려면 한 세 시간은 걸릴 것이다.
난감한 상황이었지만
몸을 추스린 그녀는 그냥 대청으로 가자고 했다.
중간에서 아치형의 나무를 만나
그 앞에서 그녀와 함께 사진을 한장 찍었다.
나는 그녀 앞의 그림자로 함께 했다.
저 나무는 죽은 나무가 아니라
저렇게 휘어져 있어도 여전히 살아있는 나무이다.

Photo by Kim Dong Won

빨간 색이 눈길을 끌기는 하지만
까만 색의 열매도 그에 못지 않다.
이 나무도 이름을 모르겠다.
가을에 자주보는 열매인데…

Photo by Kim Dong Won

원래 서북능선을 따라가면
봉정암있는 내설악의 풍경을 한눈에 내려다 보는 것이 큰재미이지만
흐린 날씨가 설악의 풍경을 거의 모두 감추어 놓고 있었다.
산들은 저만치 윤곽만으로 버티고 서서 안개 속을 흐르고 있었다.
저 곳은 내설악 쪽이 아니라 한계령 방향이다.

8 thoughts on “대청봉 가는 길 1 – 한계령에서 서북능선까지

  1. 작년에 본 나무를 기억하고 또 찍다니…
    찍사의 눈과 마음은 기억력이 대단하네요.
    고모가… 대청까지 갔을까? 더 읽어보자…

    1. 이번에는 도토리를 빙글빙글 돌리며서 껍질을 까고 알맹이만 먹는 것도 찍었어요.
      다람쥐가 우는 것도 봤어요. 눈물흘리며 우는게 아니라 소리지르는 거요.
      별 구경을 다 했네요.

  2. 오늘두 동원님의 멋닞사진과 좋은이야기로
    마음에 양식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도토리를 주워 먹은 다람쥐가 사랑스럽기 그지 없습니다.

  3. 멋진풍경을 사진으로 남길때 아쉬운게 눈에 보이는 거만큼 담지 못하다는 것이었는데 이스트맨님의 사진을 보니……………..가능한 거군요~!!
    역쉬 찍는사람의 재량…..
    -_-;;;;;;;

    1. 찍는 사람의 재능이라기보다 찍는 카메라와 렌즈의 성능!
      니콘 렌즈는 그런대로 담아내는데 탐론이나 시그마 렌즈가 역시 많이 딸린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사람은 원래 사람의 미모보다 이쁘게 찍는게 가능한데 자연은 그건 어려운 거 같아요. 근처의 남한산성이나 낮으막한 산에 갔을 때는 보기보다 멋있게 찍는다는 느낌이 드는데 설악산이나 남해 바다에 갔을 때는 보이는 것의 아름다움을 100분의 1도 담아내지 못한다는 느낌이 저절로 들죠. 설악산의 일출이나 날이 맑은 날 보았던 여수 바다, 내설악 풍경 등은 도저히 사진에 제대로 담을 수가 없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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