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린다. 엄청나게 내린다. 열흘넘게 이어지고 있다. 이럴 때 살고 있는 곳이 반지하 방이면 마음이 심란해진다. 반지하 방엔 심한 호우 끝에 물이 차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반지하 방에선 비가 달갑지 않다. 비는 마음의 심란함이 된다.
시인 최하연도 그런 경험이 있는 듯하다. 이미 언급했듯이 “물 차오르는 반지하 방에”서 있으면 마음의 심란함 이외에 달리 가질 수 있는 것은 없어보인다. 시인은 말한다. “이젠 알겠다/구름이 무거워 비 내리는 것이 아니라/그저 심리 현상이라는 것을”이라고. 시인에겐 비가 내리는 것이 자연 현상이 아니라 그 현상에 따라 어떤 마음의 움직임이 동반되는 심리 현상이다.
엄청나게 내리는 비는 반지하 방을 침수시키고, 침수된 반지하 방은 시인의 마음을 심란하게 뒤흔든다. 비가 오는 것은 자연 현상이지만 우리는 그것을 자연 현상으로만 바라볼 수가 없다. 그 자연 현상은 우리들 마음의 빛깔을 바꾸어 놓는다. 그런 측면에서 비가 내리는 것을 심리 현상으로 본 시인의 견해는 충분히 이해가 간다.
하지만 최하연의 견해엔 미묘한 구석이 있다. 그것을 가리켜 심리 현상이라고 하면서 그 앞에 ‘그저’라는 말을 덧붙여 놓고 있기 때문이다. ‘그저’라는 말이 풍기고 있는 말의 느낌에 주목하면 시인의 얘기는 그것이 피할 수 없는 필연적 심리 현상이라기 보다 그저 심리 현상에 불과할 뿐이라는 말로 들린다. 그렇다면 반지하 방을 침수시킨 자연 현상도 마음만 달리 먹으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르게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일까.
비와 관련하여 우리들의 상상력은 매우 빈약하기 이를데 없다. 기껏해야 비를 눈물과 연계하여 걷잡을 수 없는 슬픔 정도로 이어가는 정도이다. 침수된 반지하 방은 더더욱 우리의 상상력을 제한한다. 그런 상황에선 어떤 상상을 한다는 것 자체가 어렵다.
최하연의 시 「호우」는 그런 점에서 우리들이 아주 독특한 시인의 상상력을 만나게 되는 지점이다. 시인은 상상한다. 구름은 떠다니는 하늘의 토양이라고. 토양이라고 상상을 하니 그 상상에 자연스럽게 나무가 덧붙여진다. 이제 시인은 그 토양에서 자라는 나무를 옮겨심을 때를 떠올린다. 나무를 옮겨심을 때 우리는 분을 뜬다. 뿌리 주변을 둥그렇게 파서 잘라냄으로써 뿌리 주변의 흙을 나무와 함께 그대로 옮겨갈 수 있게끔 해주는 작업을 분을 뜬다고 말한다. 그때면 삽을 찔러 넣을 때 너무 뻗어나간 뿌리는 잘리게 된다. 시인은 그때 뿌리가 잘리는 소리처럼 나무를 옮겨 심을 때는 어떤 명료한 순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뿌리가 잘리는 소리에 대응되는 것이 시인에겐 호우 때 들을 수 있는 요란한 빗소리이다. 빗소리는 말하자면 지금 하늘의 토양, 즉 구름에 심어져있는 나무 한그루를 옮기기 위해 분을 뜨고 있는 소리이다. 이렇게 상상을 하면 반지하 방에 차오르는 물은 이제 지상으로 자리를 옮긴 하늘의 토양이 된다. “누군가 하늘 한 덩이”를 “푹 퍼”간 것이며, 그렇게 퍼간 하늘 한덩이가 지금 시인의 반지하 방에서 물로 차오르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상상이 그에게서 한편의 시로 잉태된다.
이젠 알겠다
구름이 무거워 비 내리는 것이 아니라
그저 심리 현상이라는 것을
하늘도
나무를 옮겨 심으려면 분을 뜨듯이
한 삽 푹 찔러 넣을 때 뿌리 잘리는 소리처럼
명료한
순간이 필요한 것
그리하여
빗방울은 저리도 요란한 것
물 차오르는 반지하 방에서
이젠 알겠다
누군가 하늘 한 덩이
푹 퍼 갔음을
─최하연, 「호우」 전문
누가 그렇게 생각할 수 있으랴. 시인이 아니면 우리 모두는 그저 심란할 뿐이다. 하지만 시인이 있어 물이 차오르는 반지하 방을 살아도 우리는 잠시 심란한 우리의 반지하 방을 하늘의 토양이 자리를 옮겨온 공간으로 뒤바꿀 수 있다. 그 토양에서 시인의 시 한 편이 자랐다. 하지만 아마 시인은 더 이상 그런 토양을 갖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나도 하늘의 토양이 반지하 방으로 자리를 옮기는 일은 더 이상 없었으면 좋겠다 싶었다.
다만 그 상상력에 힘입으면 이제는 호우 속에 길을 갈 때 길의 물웅덩이에서 지상으로 자리를 옮긴 하늘의 토양을 볼 수 있을 듯 싶다. 하긴 물없이 지상의 식물들이 어찌 자라랴. 그러니 그것이 하늘이 내려준 또다른 토양이란 사실은 크게 무리가 없다.
오늘도 비가 심하게 내린다. 옮겨 심어야할 나무들이 여전히 많이 남았나 보다.
(2013년 7월 23일)
**인용한 최하연의 시는 다음의 시집에 실려있다.
최하연 시집,『팅커벨 꽃집』, 문학과지성, 2013
7 thoughts on “침수된 반지하 방에서의 상상력 – 최하연의 시 「호우」”
종종 이 코너에 올려주시는 시들 가운데 오랜만에 어렵지 않게 읽히는 시네요.^^
산문시보다는 이렇게 짧은 토막으로 된 서정적 시가 익숙하고 읽기 편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곁들여주신 사진이 맘에 듭니다.
최하연의 시가 대체로 엄청나게 난해한데.. 서너 편은 쇱게 읽히더라구요. 이건 쉽게 읽은 서너 편 중의 하나 였어요.
지하방에 물이 차오르는 심난함이 시에 붇어 있네요..
심난함으로 도배된 비요일들..
저는 그저 그 상상력에 놀랐어요.
시인들이란 그저 놀라운 존재인 듯.
그래서 시인은 타고나는가 봐요 ..ㅎㅎㅎ
언어로 마음을 표현하는 시인들의 방식은
아무리 부러워도 흉내조차 낼 수가 없는…
저는 글 잘쓰시는분들에게 약간의 컴플렉스가 있어요..
부럽고 질투도 나고..ㅎㅎㅎㅎ
돈많은건 하나도 안부러운데 말입니다…
빗물 차오르는 반지하 방에서 누구나 시인처럼은 아니지만
그저 어쩔 수 없는 일인 것은 마찬가지겠지요.
한 삽 푹 찔러 넣을 때 뿌리 잘리는 소리라…
하늘 한 덩이 푹 퍼 가고 잘려져 남은 뿌리가 되고 보니
그저 어쩔 수 없는 일이 너무 많다 싶어요.
항상 그 어쩔 수 없는 순간이 가장 힘든 거 같아요.
이 시인은 그런 어쩔 수 없는 순간이나 관계에 대한 시가 많더라구요.
그래서 공감도 많이 되고..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닥쳤을 때 마냥 어쩔 수 없는 것만은 아니구나 싶기도 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