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7일의 촛불집회는 청계광장에서 있었다.
이석기 파동으로 물타기를 한 탓에
사람들이 크게 줄지 않았을까 걱정이 되었다.
걱정은 기우로 끝나고 말았다.
지하철을 타기 직전
핸드폰을 집에 놓고 나왔다는 것을 알게 되어
다시 집으로 갔다 오는 바람에
집회 시간에 늦었다.
늦으니 좋은 점도 있었다.
종로에서 청계천으로 걸어가고 있을 때
사람들이 외치는 함성이
건물 사이를 건너와 종로 거리를 뒤흔들었다.
오늘도 많이 모였음을 직감하며
늦은 걸음이 짜릿함을 맛보는 순간이었다.
집회 장소에 도착해보니
사람들이 광장을 모두 채워 자리를 찾는게 어려웠다.
그것도 남다른 기쁨이었다.
앉을 자리가 없어 돌아가게 되면
그것이 기쁨이자 즐거움이 될 집회이다.
뒷쪽에서 차근차근 살펴보며
둘이 들어가 앉을만한 자리를 찾아내고
촛불이 된 사람들과 함께 했다.
간만에 그녀와 함께 한 자리이기도 했다.
9월 7일의 촛불집회는 대학 특집으로 마련되었다.
대학생들과 대학 교수들이 많이 참여하여
좋은 발언과 다짐들을 해주었다.
집회에서 발언한 누군가가 그랬다.
가을은 투쟁하기 좋은 계절이라고.
날씨가 선선해서 정말 함께하기에 좋았다.
가을은 책읽기에 좋고
말들은 살찌기에 좋은 계절이기도 하지만
아울러 민주의 결실을 꿈꾸며 투쟁하기에 좋은 계절이기도 하다.
다음 집회는 9월 13일 금요일 서울광장에서 있다고 한다.
나도 다시 그 자리에 함께 할 생각이다.
이 가을에 촛불로 키워내는 좋은 세상이 만들어질지도 모르겠다.
촛불 집회는 두 시간 가량 진행된다.
두 시간 동안
꼭 촛불을 손에 들고 있게 되는 것은 아니다.
가끔 사람들은 촛불을 옆에 내려놓기도 한다.
그러나 촛불은 한번 밝히면
그때부터 촛불든 사람을 잊지 않는다.
불을 밝힌 사람의 옆에서
사람들이 외치고 싶은 구호를 환히 밝히며
불꽃을 세운다.
민주에 대한 열망은 쉽게 꺼지지 않는다.
촛불은 종종 사람들의 손에 들려 리듬을 탄다.
투쟁의 구호만 넘쳐날 것 같지만 천만이다.
민주에 대한 열망은 흥겹게 몸을 흔들며
리듬과 박자를 타고 그 세상을 꿈꾼다.
아이 엄마가 아이를 꼭 껴안고
촛불 집회 자리를 끝까지 지킨다.
아이는 아마도 엄마 품에서 잠든 듯 했다.
자리는 소란스러웠지만
엄마의 품은 따뜻하고 평화로웠을 것이다.
아이가 깨어났을 때쯤
좀더 가까이 다가선 민주주의 세상을
아이에게 안겨주고 싶은 것이
아이를 안고 자리를 지킨 엄마의 꿈이었을 것이다.
의인 열명이 없어 망했던 세상을 생각하면
굳이 사람 수가 많아야 하는 것은 아닌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 사람이 모여
우리가 맞이할 민주 세상에 초점을 모으고
그 셋이 함께 든 촛불은 더욱 힘이 있어 보였다.
세 사람은 두 시간 내내 서서 함께하고 있었다.
한 아이가 아빠의 핸드폰으로
아저씨가 든 촛불을 찍는다.
아저씨가 앞의 노랫소리에 맞추어
촛불을 이리저리 흔들면
아이의 핸드폰도 이리저리 흔들리며
아저씨의 촛불을 따라다녔다.
촛불이 환하기도 했지만
사실은 어린이가 이 밤을 더욱 환하게
밝히고 있는 느낌이었다.
한 아버지가 예쁜 딸을 데리고 촛불집회에 참가했다.
아빠의 핸드폰으로 촛불을 찍던 그 어린이이다.
아버지는 딸을 번쩍 들어
아빠의 힘으로 딸의 키를
아빠의 머리 위까지 키워준다.
그러자 앞의 세상이 모두 보인다.
아빠의 어깨 위에서 딸이 본 것은
민주 세상을 위해 촛불을 밝힌
수많은 사람들의 꿈이었을 것이다.
사실은 이 댁은 아빠와 딸만 나온 것이 아니라
그 옆에 예쁜 아내와 또다른 딸이 함께 동행하고 있었다.
민주 세상은 아직 우리 모두의 곁에 와있진 못했지만
적어도 이 댁의 가족들에겐 벌써 와 있었다.
9월 7일의 촛불집회는
모두가 함께 「광야에서」를 부르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세 사람이 어깨를 걸고 노래를 부른다.
우리는 모두 어깨를 걸고
공정한 선거가 보장되는 민주주의 세상으로 함께 갈 것이다.
돌아오는 길에 종로의 한 맥주집에 들러
그녀와 함께 맥주를 한잔 했다.
직접 담근 맥주라 맥주맛이 아주 진하고 풍부하다.
촛불을 든 사람들의 열망도
서서히 발효되어 가고 있는 것이리라.
그리고 어느 날 그 맛을 모두가 함께 나눌 날이 오리라.
이번 주의 촛불집회는 토요일이 아니라 금요일에 있다.
9월 13일 금요일에 시청앞의 넓은 서울광장에서 모인다.
4 thoughts on “촛불 단상, 2013년 9월 7일 토요일 서울 청계광장”
주일이라 그런지 여러 대목에서 아-멘 하고 싶었습니다.^^
촛불 풍경이 무겁거나 진지하지만 않고, 유쾌해 보이는 장면들도 있어 보기 좋습니다.
믿음을 보태주시니 촛불이 더욱 든든하게 빛을 밝힐 듯 싶습니다.
이 날은 향린교회인가 하는 곳에서 나와 마지막 합창을 선물했어요.
상록수와 광야에서를 불러주었습니다.
모두의 합창이 되었죠.
집회가 축제처럼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파에스타가 되었네요.
그럼요.어떻게 오늘날 까지 이룩한 권리들인지요.
권력으로 부터 민주주의는 꼭 지켜야할 소준한 가치거든요.
이렇게 모일 권리를 되찾은 것도 사실 그리 오래된 게 아닌 거 같아요.
기회가 될 때마다 집회의 권리를 누려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