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사람들과 함께
가을의 양수리 길을 걸었다.
물소리길이라 이름이 붙여진 길이다.
길은 처음에는 가을에 맞추어 완연하게 색을 바꾼
논의 옆으로 흘러갔다.
그러다 산을 오르는 듯 숲으로 들어서서
사람들을 그 속으로 품고
산길이 되어 흘러가기도 했다.
그러나 길은 이내 동네로 다시 내려섰다.
산길을 내려온 길은
우리들을 냇가로 데려갔다.
얕은 시냇물이었다.
걷는 동안 시냇물의 물소리가 발목에 감겼다.
그렇게 걷다가 느티나무를 만났다.
우리는 모두 느티나무 밑에 자리를 잡고
사진 한 장을 찍었다.
사람들이 느티나무 밑에 자리를 잡았을 때
그들은 모두 느티나무의 뿌리가 되었다.
가을엔 느티나무 밑에서 모여 잠시 쉬는 것으로
우리 모두가 느티나무의 뿌리가 될 수 있다.
느티나무는 사시사철 그 자리를 지키는 것이
제 삶의 운명이었지만
가끔 그 밑에서 쉬며 뿌리가 되는 사람들을 만나면
그들의 발을 빌려 양수리의 동네길을 따라
가을을 걸어다녔다.
사람들 덕에 나무는
오랜만에 동네를 거닐 수 있었다.
하지만 사실 걸은 시간보다
가다 말고 자리를 잡고 앉아 떠든 시간이 더 많았다.
솔직히 그건 느티나무도 마찬가지였다.
느티나무도 지나는 바람을 붙들고
연신 잎을 놀리며 수다를 떨곤 했다.
우리는 가끔 모여 나무의 뿌리가 되었고
올 가을에는 양수리의 가을을 걷다
느티나무의 뿌리가 되었다.
가을을 걸으며 느티나무의 뿌리가 되어 보낸
가을날의 하루가 마냥 좋았다.
나무가 좀더 커다랗게 자란 느낌이었다.
여름에는 그 그늘 밑에서 쉴 수 있고,
가을에는 같이 걷다가 그 밑에서 쉬는 시간을 갖는 것만으로
가을에 물들 수 있는 나무였다.
사람들을 만나 그들이 뿌리가 되어 내준
나무 하나를 얻었다.
4 thoughts on “가을 걷기”
느티나무의 품이 얼마나 넓고 편하던지,
모두들 정말 편하고 자연스런 포즈를 취했네요.
걷는 즐거움에 쉬는 재미에 물소리까지
하늘이 열리는 날을 만끽했죠.
모여서 서거나 앉은 포즈 자체가 예술이더라구요.
날씨도 더할나위 없이 좋은 하루였어요.
그러고보니 단풍들 때는 아직 모이질 못한 것 같아요.
단풍철에 다시 한번 모여보던가 해야 겠습니다.
행복한 모습들이십니다.
대개의 모임이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걷기만 할 때가 많은데
이 모임은 오늘 가려던 구간을 가긴 갈 수 있을까 싶게 걸어요. ㅋㅋ
그 여유가 좋은 모임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