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안성호의 선물

Photo by Kim Dong Won
2013년 10월 6일 경기도 퇴촌에서

일요일의 오전 시간을 컴퓨터 고치는 일에 모두 보냈다. 한동안 쳐박아두고 쓰지 않던 컴퓨터였다. 아이맥이 한 대 생긴 뒤로 모든 작업은 새로 생긴 아이맥으로 옮겨졌다. 아이맥이 생길 때쯤 그동안 써오던 컴퓨터가 이상하게 말썽을 부리기 시작하여 새로운 아이맥으로 갈아탈 때는 이전의 컴퓨터에 대한 미련이 별로 없었다. 컴퓨터는 손을 뻗으면 언제든 켤 수 있는 자리에 그대로 놓여 있었지만 스위치에 손이 가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렇지만 사실 멀쩡한 컴퓨터였다. 마음 한구석에 고쳐서 쓸 수 있는 상태로는 해두어야 하는데 하는 마음이 갚아야할 빚처럼 뭉쳐져 있었다. 그 뭉친 마음 때문에 방안에서 버려져 있는 컴퓨터를 볼 때마다 마음이 무거워지곤 했다.
그녀의 조카가 사용하던 노트북이 망가졌다며 손봐줄 수 있냐고 들고 왔다. 살펴보니 배터리를 갈아야 한다는 것 이외에는 아주 사양이 좋은 노트북이었다. 남의 컴퓨터는 봐달라고 들고와도 사실 책임의식이 없다. 해보다가 안되면 안되더라하면서 그냥 돌려주면 된다. 그런 마음 편한 심사 때문에 컴퓨터를 들여다 볼 때 마음의 무게가 가볍다. 그 컴퓨터에 운영체제를 깔고 몇 가지 필요한 프로그램을 까는 작업이 무난하게 마무리되었다. 내 컴퓨터에도 같은 운영체제를 깔면 된다. 오늘은 내 컴퓨터도 쓸 수 있도록 고쳐놓자는 생각이 들었다.
운영체제를 까는 일은 쉬웠다. 문제는 속에 있는 내장 하드 하나를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여분으로 달아놓은 작업물 저장용 하드였다. 그 하드를 꺼내 외장 케이스에 넣어보았다. 연결하니 잘 인식이 되었다. 내용물을 옮기고 새로 포맷을 한 뒤에 컴퓨터 속에 집어 넣어 다시 연결해 보았다. 역시 안된다. 안되는 정도가 아니고 이미 설치되어 있던 컴퓨터 속 내장 하드의 시스템도 인식을 하지 못한다. 다시 빼내니 컴퓨터는 멀쩡하게 시동이 된다.
어디가 잘못되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그냥 내장 하드는 시스템이 깔린 내장 하드 하나만 쓰기로 하고 여분의 내장 하드는 케이스를 하나 사서 외장으로 쓰기로 마음의 정리를 했다.
새로 운영체제를 설치한 컴퓨터는 윈도 머신이다. 사실 이 컴퓨터에서만 되는 일이 있다. 예를 들자면 블루레이 디스크를 돌릴 수 있는 드라이브는 이 컴퓨터에만 장착되어 있다. 아이맥은 블루레이를 기본으로 갖추고 있지 못하다. 한동안 그게 불편했었는데 이제는 필요하면 이 컴퓨터를 켜서 블루레이 드라이브를 사용할 수 있다. 모든 것들이 만족할만한 속도로 잘 돌아갔다.
컴퓨터는 잘 고쳐졌다.
일을 잘 끝내면 뿌듯한 법이다. 하지만 컴퓨터는 잘 고쳐져도 고치는데 바친 시간을 허무하게 만든다. 세상에는 일을 잘 끝내고 나서도 허무함을 앓게 되는 일이 있다. 내게 컴퓨터 고치는 일은, 일이 잘 마무리되어도, 그 뒤끝에서 항상 허무함을 몰고 오는 일이었다.
허무한 일은 마음을 채워주지 않는다. 마음이 비면 그 빈마음을 채워야 한다. 그럴 때면 요즘은 카메라를 둘러메고 어디든 나서는 것이 나의 버릇이었다.
이번에는 퇴촌에 사는 소설가 안성호에게 문자를 넣었다. 거기 가을 풍경 볼만해. 내가 물었다. 안성호는 오후에 오면 커피 한사발 대접하겠다고 했다. 소설가는 커피를 잔수로 세지 않고 그것을 담을 용기로 특정했다. 한잔이라고 하면 세상의 모든 잔들이 그 다양한 용기에도 불구하고 수치 속에 일괄적으로 편입된다. 붉은 색이 유난히 눈에 들어오는 컵에 담겨있었도 그것은 불타는 한잔이 아니라 그냥 익명의 한잔이 될 뿐이다. 어떤 무늬도 용납하지 하지 않고 뽀얀 흰빛으로 몸을 만들고 그 안에 커피를 담아내도 그것 역시 익명의 한잔일 뿐이다. 그러나 안성호는 그 익명의 한잔을 뿌리치고 내게 커피 한 사발을 대접하겠다고 했다. 나는 그릇이 구체화된 그 동네로 커피를 마시러 가야 겠다고 생각했다.
우리 동네엔 그의 동네로 단 한번에 가는 버스가 있다. 13-2번이다. 버스는 그의 동네에서 동서울 강변 터미널까지 다닌다. 자주 오질 않는다. 1시간에 한대 정도가 다니는 것 같다. 그 한시간은 내게 백만년으로 과장이 되곤 했다. 우성 아파트 앞에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건너편으로 그 버스가 지나간다. 설마 저 버스가 강변 터미널 갔다가 돌아오는 건 아니겠지. 그러나 그 설마의 예상은 그대로 적중이 되었다. 정류장의 여기저기에 은행나무의 은행이 떨어져 있었다. 나는 그 은행이 자극하는 꼬리꼬리한 냄새를 달리 피할 수도 없는 처지에서 꽤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13-2번은 버스에 몸을 싣고 있으면 버스가 하남을 벗어날 때쯤 창으로 보이는 풍경에서 도시 풍경을 걷어낸다. 그 창에 산이 담기고 벼가 익어가고 있는 가을의 논도 담긴다. 도시의 길가는 거의 어느 곳이나 장사하는 곳들의 간판이 점유한다. 그 간판들도 사라진다. 퇴촌에 이르면 팔당댐에 발길이 막혀 거대한 호수를 이루고 그곳에서 서성거리고 있는 물을 만난다. 가끔 이 버스를 타고 나가 적당한 곳에 내린 뒤 걷다가 오곤 했었다.
퇴촌에서 안성호를 만났다. 그는 새로 산 차를 몰고 나왔다. 토요타였다. 토요일에만 타는 차야하고 물어볼까 하다가 그만 두었다. 천진암 쪽으로 들어가 마담이 미인이라는 어느 찻집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찻집으로 들어가다 말고 잠시 얘기를 나누며 낄낄거렸다.

안: 여기 계곡이 아주 좋아요.
나: 여름도 다 지났는데 무슨 개고기야.
안: 아니 그게 아니고 계곡이요.
나: 그래 개고기.
안: 아니, 만나자마자 저한테 왜 이러세요.
나: ㅋㅋㅋ
안: ㅋㅋㅋ

찻집에는 미인은 없고 수염이 덥수룩한 털보 아저씨만 보였다. 커피는 젊은 처자가 가져다주었다. 사장이냐고 물었더니 이 찻집 주인의 며느리라고 했다. 안성호는 내게 커피맛을 물었다. 나는 내가 가끔 들르는 클라라의 커피라고 있는데 거기만은 못하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난 사실 커피는 별로 안좋아해라고 덧붙였다. 안성호는 커피를 안좋아하는 사람의 판단을 어떻게 믿냐고 했다. 나는 커피도 안좋아하는 사람도 설득할 정도면 그게 정말 좋은 맛이 아니겠냐고 했다. 안성호는 언제 한번 들러봐야 겠다고 했다.
안성호는 세 권의 소설을 쓴 작가이다. 소설집 『때론 아내의 방에 나와 닮은 도둑이 든다』와 장편소설『마리, 사육사, 그리고 신부』를 랜덤하우스 중앙에서 펴냈고, 소설집 『누가 말렝을 죽였는가』를 문학과지성사에서 냈다. 나는 그의 소설책 세 권을 모두 갖고 있다. 그 중에서 내가 읽은 것은 『누가 말렝을 죽였는가』 하나이다. 나머지도 읽어볼 생각이지만 언제가 될지는 알 수가 없다. 『말렝』을 읽고 난 뒤 그와의 심리적 거리가 훨씬 가까워졌다.
그는 소설가이지만 동시에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시인이기도 하다. 아직 시집은 내지 않았다. 그의 소설집 『말렝』을 읽을 때 나는 어떤 시 한 편이 가루로 분쇄되어 소설의 사이사이로 뿌려져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내가 특히 인상깊게 읽은 소설은 『말렝』에 수록된 「자작나무 숲」이었다.
그 소설은 소설 속의 내가 “죽은 지 10년이 지”난 시점에서 시작된다. 10년이란 마음에 애틋하게 담았던 사람도 지워질 수 있는 오랜 세월이다. 요즘처럼 변화가 빠른 세상에서 10년의 세월은 변화의 보폭으로 치자면 그 옛날의 100년 세월에 버금갈 수도 있다. 그러니 10년 정도의 세월이면 어떤 죽음도 깨끗이 잊혀질 가능성이 높다. 이미, 그것도 죽은 지 10년이 흘렀다면 그의 죽음으로 이야기를 시작하기는 매우 어렵다. 그 정도라면 있던 이야기도 잊혀질 세월이다. 그런데 그의 소설은 “무덤은 비바람에 무너지고 잡풀이 무성하게 자라 흔적조차 남지 않”은 그 시점에서 시작이 된다. 소설의 전반부를 채우고 있는 것은 죽은 사람이 자연으로 돌아가 자작나무가 되는 과정이다. 그 과정이 아주 세밀하고 섬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그것은 죽은 사람이 죽어서 잊혀지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 되어 살아나는 과정이기도 했다. 안성호는 죽은 사람을 망각의 늪으로 밀어넣는 우리들의 10년 세월을, 그가 자연으로 돌아가게 하면서도 오히려 잊혀지지 않고 우리 앞에 숲으로 설 수 있게끔 살려낸다.
찻집에서 한참 동안 얘기하다 헤어졌다. 그가 사는 동네, 퇴촌을 돌아보며 이것저것 사진을 찍었다. 찍을게 많은 동네였다. 금간 벽이 눈길을 끌어당겼다. 벽은 완고하지만 금은 그 완고함에 슬쩍 틈을 들이민다. 죽음도 완고하다. 한번 죽으면 절대로 그 죽음의 벽을 타넘어 다시 벽의 바깥으로 나올 수가 없다. 죽음의 벽은 갈라지지도 않는다. 그렇지만 그런 것일까. 혹시 죽음도 오랜 세월, 벽에 난 금처럼 죽음의 벽에 슬쩍 틈을 들이밀고 그 벽을 넘어 다시 우리의 세상으로 돌아나오는 것이 아닐까. 다만 다시 나올 때는 우리의 원래 형상을 버리고 자작나무의 형태로 돌아나오기도 하는 것은 아닐까.
동네를 돌다 버스 한 정류장을 터덜터덜 걸었다. 저녁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가 마련해준 저녁 선물을 하나 받았다.
산그림자를 물속에 담근 뒤 바람으로 약간 뒤흔들어 물결 문양을 새겨넣고 하늘에 구름을 쏘아올려 만든 저녁 풍경이었다. 안성호는 퇴촌에 산지 5년이 되었다고 했다. 생전에 양평에 있는 서종면의 서후리 숲속에서 살던 시절, 시인 오규원은 지병으로 몸의 거동이 불편해졌을 때, 그래도 “마음이 자주 숲 속으로 혼자 가서 걸어다니다” 온다고 했었다. 아마도 10년쯤 살다보면 몸을 집에 묶어두고도 마음을 내보내 저녁 풍경 속을 걸어다닐 수 있는가 보다. 그리고 그 풍경을 거닐다 산의 그림자를 물로 내리고, 바람을 불러 물결 문양을 부탁하는 일도 가능해지는가 보다. 10년은 살아야 그리 될 듯한 느낌이다. 5년만에 그리된 것은 그가 소설가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시인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선물이 상당히 괜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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