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때, 닷새 동안 경남의 통영에 놀러갔다 왔다.
통영에 도착하니 이미 날이 저물고 있었다.
가장 먼저 찾은 곳은
통영항 바로 옆의 동피랑이란 마을이었다.
동피랑에서 내려다보는 통영항의 야경은 볼만했다.
하지만 이곳이 처음인 나는 어딘가 어딘지 짐작할 수가 없다.
아마도 이곳이 고향인 사람들은
어둠 속에서도 불빛들의 위치를 정확히 짚어낼 것이다.
고향 사람들에게 불빛은
마치 길을 인도하는 별처럼 반짝일 것이다.
고향은 어둠도 한낮처럼 짚어낼 수 있는 곳이다.
통영이 고향이 아닌 내게
밤의 통영항은 불빛은 많았지만 어디가 어딘지 알 수가 없었다.
놀러가긴 했지만 마감해 주어야 할 일이 있어
놀지도 못하고 거의 내내 일을 해야 했다.
그렇지만 일하다가 잠시 쉬는 짬이 나면
바닷가를 거닐 수 있어서 좋았다.
바닷가를 거닐면 바다와 얘기를 나눌 수 있었고,
바람이 좀 심하게 분다 싶으면 바다의 신경이 곤두섰다.
바람이 무슨 얘기를 바다에게 건넨 것인지 궁금하기 짝이 없었다.
갈매기가 끼룩되며 둘의 얘기에 끼어들기도 했다.
일을 하고 있었지만 이곳에선 일도 참 사치스럽다 싶었다.
그렇게 통영에서 가끔 짬이 나는 시간을 바닷가에 내주며 시간을 보내다
닷새만에 다시 서울로 올라왔다.
올라오던 날, 도착하던 날 밤에 올랐던 동피랑 마을을 낮에 다시 찾았다.
통영항의 모습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닷새를 이곳에서 보냈다고
이제는 어디쯤 무엇이 있는 짚어낼 수 있게 되었다.
사진에선 보이지 않지만
왼쪽으로는 조각공원이 있고 더 왼쪽으로 가면 이순신 공원이 있다.
항구 바깥쪽의 물길을 따라 오른쪽으로 가면
충무교와 통영대교가 나온다.
건너편으로 보이는 가장 높은 산은 미륵산이다.
산꼭대기에 오르면 눈에 들어오는 풍경이 장관이라고 했다.
나는 오르지 못하고 그녀만 올랐다.
통영은 걸어서 돌아볼만한 곳이었다.
다음에는 일에 대한 부담없이 내려가
이곳저곳 갈곳을 정해놓지 않고 기웃거리고 싶다.
해풍에 말라가는 빨래가 자주 눈에 들어오는 곳이었다.
바닷바람에 말리면 빨래도 느낌이 달라질까 궁금했다.
영광의 바닷바람에 말리면
외국에서 들여온 조기도 맛이 다르다고 하지 않던가.
한 열흘 동안 있어도
여기저기 가볼 곳 천지인 곳이 통영이란 생각도 들었다.
사람들 성격이 불같은지
길거리에서 거칠게 싸우는 풍경도 한번 보았다.
그래도 서로 소리지르다가는 제 갈길을 갔다.
처음에는 금방이라도 서로를 잡아먹을 줄 알았다.
밤에 동피랑 마을에 올라
어느 곳도 짐작할 수 없이 도착했던 통영을
이제는 다시 밤에 올라도
불빛들을 별처럼 앞세우고
어디가 어디인지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어디나 살다보면 고향이란 말이 맞는 듯 싶다.
4 thoughts on “통영항의 낮과 밤”
오 선생님 야경과 주경의 대비가..아주 좋네요..~~^.^
원래 같은 곳에서 찍은 사진이 모으면 재미나잖아요.
평범한 풍경도 4계절을 찍어놓거나
비오는 날과 맑은 날, 이런 식으로 찍어놓으면
4컷 만화처럼 볼만해지는 것 같아요.
야경이 아름다운 항구군요. TV 여행프로들에서 야경이 아름답다며 세계적인
미항으로 꼽는 도시들에 비해 규모만 작지, 풍경은 손색 없어 보입니다.
닷새, 아니 이틀 만이라도 훌~쩍 다녀오라고 확그냥막그냥 불지르시네요.^^
그냥 걸어다니면 다 구경거리더라구요.
시장 풍경도 볼만하고.. 일만 없었으면 사진 엄청나게 찍었을 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