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 내려오는 길 2 – 봉정암에서 수렴동 대피소까지

설악산은 올라가는 길도 여럿이지만
내려가는 길도 여럿이다.
빨리 올라가고, 빨리 내려가기로는 역시 오색이다.
하지만 그 길은 재미가 없다.
우리는 백담사 쪽을 하산길로 택했으며,
봉정암에선 오세암쪽의 길을 버리고
곧장 백담사쪽으로 방향을 틀어 수렴동 대피소로 내려갔다.
봉정암에서 오세암쪽으로 가는 길은 다시 올라가는 길이다.
그곳으로 가면 풍경이 좋다고 알려져 있지만
흐린 날씨를 핑계로 삼아 발길을 곧장 백담사 쪽으로 돌렸다.
사실은 아픈 다리가 실제 이유였다.

Photo by Kim Dong Won

산에 가면 내려가는 사람들이 있고,
또 올라오는 사람들이 있다.
내려가는 사람은 여유롭다.
올라오는 사람에게 한마디 건넨다.
이제 봉정암에 다 왔어요, 힘내요.

Photo by Kim Dong Won

바위가 바위를 업고,
또 바위가 바위를 업고,
그러면서 바위를 이룬다.
바위는 그냥 커다란 돌덩이가 아니라
업고 업히면서 바위의 오랜 삶이 쌓여간다는 것을 보여준다.
바위와 달리 아이는 크면서 우리의 등을 떠난다.
등에 업었던 아이를 떠나보내면 크게 허전할 것 같다.
바위는 그 허전함이 견딜 수 없이 크다는 것을 아는지
거의 평생동안 등에 없은 바위를 내려놓는 법이 없다.
사람이 그래도 그 허전함을 견디는 것을 보면
바위보다 더 단단하고 굳은 구석이 있나 보다.

Photo by Kim Dong Won

나무의 결이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자랄 때 내내 바람과 춤추면서 자란게 틀림없다.

Photo by Kim Dong Won

봉정암에서 백담사로 향하는 바로 아래쪽 길은
길이 매우 가파르고 험하다.
그 길을 내려오면 그때부터 계곡의 물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비가 오면 급한 물살이 쓸고갈 그 계곡의 한가운데
누군가 돌탑을 쌓아놓고 갔다.
만약 비오는 날 물살이 탑을 넘어뜨리면
사흘 뒤쯤 탑을 쌓은 이는 한강으로 나가 물길을 타고 내려온
자신의 희망을 다시 보려 했던 것일까.
내년 여름 비오고 한강물이 불어나는 날이 오면
나도 한강물에 나가 백담사에서부터 물길을 타고 내려온 사람들의 희망이
어떻게 그 먼길을 왔는지 한번 눈여겨 살펴볼 생각이다.

Photo by Kim Dong Won

바위산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바위가 온통 물처럼 흘러내리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물이 산을 내려가면서
바위의 여기저기에 가파른 길을 낸 것이 틀림없다.
우리에겐 전혀 길이 없는 바위산인데
빗방울에게 바위산은 무수한 길로 덮여있다.
바위산에서 그렇게 길이 쏟아지고 있었다.

Photo by Kim Dong Won

바람이 없으면 산은 고적하다.
그러나 계곡으로 들어서면서
그때부터 물흐르는 소리가 졸졸거리며 나기 시작했다.
그 소리가 반가웠다.

Photo by Kim Dong Won

물도 쉬었다 가고,
그때면 우리도 잠시 걸음을 접고
휴식을 취했다.

Photo by Kim Dong Won

엇, 너는 어쩌다 그렇게 뱅그르르 돌게 되었니.
— 그게요, 제가 봄에 분명히 위를 향하여 자라고 있었는데
눈앞에 노란 꽃이 있는게 아니겠어요.
그래서 방향을 옆으로 틀었죠.
그렇게 자라다 보니 가을엔 또 노란 단풍이 있더라구요.
그래서 또 옆으로 방향을 틀게 되었죠.
어떻게 된게 제 주변엔 온통 노란꽃에 노란 단풍 뿐이었어요.
저는 우리같은 칡덩쿨도 꽃과 단풍을 자연의 신호등 삼아
잘 지켜야 한다고 보거든요.
그걸 잘 지켰더니 이렇게 한바퀴를 돌게 되었지 뭐예요.

Photo by Kim Dong Won

저 정도의 높이와 가파른 경사라면
우리에겐 내려가는 길이 아득하기만 할 것이다.
계곡을 내려오는 물도 그렇게 아득했을까.
졸졸거리는 소리로 미루어
즐겁고 경쾌하게 바위와 바위 사이를 건너뛰며
그 길을 내려오고 있는게 틀림없었다.

Photo by Kim Dong Won

계곡을 내려간 물은 푸른 투명이 된다.
저렇게 가파른 길을 내려가게 되면
누구나 파랗게 질릴 수밖에.

Photo by Kim Dong Won

그래도 물은 괜찮은 편.
저런 절벽을 올라가야 했더라면
정말 흘러내리는 물의 몇배에 달하는 땀을 쏟아야 했을 걸.

우리는 계곡의 물을 따라 내려가며
물이 완만한 경사를 따라 걸음을 늦출 때면
그때마다 신발을 벗고 물에 발을 담그었다.
넣자마자 발이 얼얼할 정도로 차가웠지만
그렇게 발을 식히면서 내려올 수 있다는 것이
백담사로 내려가는 길의 매력 중 하나이다.

봉정암에서 수렴동 대피소까지는 3시간 정도 걸렸다.

2 thoughts on “설악산 내려오는 길 2 – 봉정암에서 수렴동 대피소까지

  1. 제겐 산을 오르는 저분들이 왜 전사같다는 느낌이 들까요.^^
    그냥 저처럼 닐리리야~♪하면서 나무나 바위 꽃같은거 다 만져보고
    한적하게 올라가는걸 즐기는 사람에겐 저분들이 정말 전사들 같아요.^^
    아..저 계곡에서 내려오는 물 마시면 힘이 마구 마구 솟아날것같은..^^

    1. 사실 닐리리야 하면서 가볍게 걸을 수 있는 구간도 많아요. 그러다 중간중간 정말 가파른 구간이 나타나곤 하죠. 계속 저렇게 가파르면 큰일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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