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 내려오는 길 3 – 수렴동 대피소에서 백담사까지

대청봉에서 백담사로 내려가는 길은
대체로 평탄하긴 하지만 지루할 정도로 길다.
그러나 그 긴 길의 지루함을 때로는 계곡이 달래주고,
또 때로는 숲의 나무가 즐겁게 해준다.
오늘은 수렴동 대피소에서 백담사까지 마지막 부분을 간다.

Photo by Kim Dong Won

수렴동 대피소에서 라면으로 점심을 먹었다.
찬밥도 한 공기 곁들였다.
대피소 바로 앞의 계곡에서 보면
저만치 산을 오르거나 내려오는 사람들이 보인다.
미리 와 있는 사람이 “여기가 수렴동 대피소야”하고 소리치면
그곳까지 다 들린다.
수렴동 대피소까지 왔다면 거의 다 내려온 셈이다.
걸음이 빠른 사람은 여기서 백담사까지 두 시간 정도가면 된다.
우리는 세 시간이 걸렸다.

Photo by Kim Dong Won

그녀는 이런 길이라면
하루종일이라도 걷겠다고 했다.
길이 평탄한데다가 가을엔 단풍이 고운 길이다.
겨울에 눈이 내렸을 때도 걸으면 좋은 길이다.
보통은 눈이 오면 못들어가게 하는데
초입에서 사진만 찍고 오겠다고 하면서 들어온 적이 있었다.

Photo by Kim Dong Won

숲의 한가운데로 흐르고 있는 이 길은
나무로 만들어져 있다.
이 길을 빠져나가면 영시암을 만나게 된다.
백담사로 내려가는 길 가운데서 가장 아름다운 길이다.
둘이서 함께 사진 한장 찍었다.

Photo by Kim Dong Won

가을엔 색으로 가득차는 길.
내려가다 자꾸 걸음을 멈추게 된다.
그냥 숲의 한가운데 잠시 묻혀있고 싶도록 만드는 길이다.

Photo by Kim Dong Won

숲은 나무들의 보금자리이다.
한번 자리를 잡으면 나무는 그 보금자리를 떠나는 법이 없다.
나무는 언제든지 날아오를 듯한 모습으로
나뭇가지를 날개처럼 펼치고 있지만
절대로 숲을 버리고 다른 곳으로 날아가는 법이 없다.
가을이 되면 나무의 날개는 색색으로 화려하게 물든다.
우리는 모두 화려한 날개로 높이 날고 싶어하지만
나무는 마치 날려는 듯 그 화려한 날개를 펼쳐둘 뿐,
실제로는 결국 모든 잎을 오히려 땅으로 되돌려준다.
마음은 하늘을 날더라도
몸은 지상을 따뜻하게 덮여주는 것이
가장 높이 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Photo by Kim Dong Won

가지끝에서 벌레가 먹다 남긴 나뭇잎 하나가
바람에 몸을 흔들고 있었다.
사실은 벌레가 먹다 남긴게 아니라
나뭇잎이 지나는 벌레에게 한조각씩 나누어 준 것인지도 모른다.

Photo by Kim Dong Won

원래 단풍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법이라는데
그냥 눈으로 보기에는 단풍이 산으로 우르르 몰려가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Photo by Kim Dong Won

산으로 몰려가고 있는 단풍은
사실은 산밑의 계곡 아래쪽에서부터
산으로 우르르 몰려가고 있었다.

Photo by Kim Dong Won

저 멀리 계곡의 건너편에선
노란 단풍이 눈사태처럼 쏟아진다.

Photo by Kim Dong Won

산을 오른다는 것은,
특히 설악산을 오른다는 것은
다른 여행과 달리 완전히 온몸으로 하는 여행이다.
그래서 설악산을 올랐다가 내려오면
설악의 느낌이 온몸에 속속들이 밴다.
그 느낌은 백담사를 눈앞에 두고
마지막 숲길을 벗어날 때까지 계속된다.
백담사로 가는 마지막 숲길은
마치 설악산 산행의 여운같은 길이다.

4 thoughts on “설악산 내려오는 길 3 – 수렴동 대피소에서 백담사까지

    1. 혼자가는 자유로움도 좋은데요, 뭘.
      나는 작년에는 혼자갔었어요.
      둘이 가니까 좋긴 하더만.
      빨리 좋은 사람 만들어요. 바이크 다시 개조해서 둘이 타고 다니면 되잖아요.

    1. 길, 정말 예쁘죠.
      내려오다가 너무 예뻐서 둘이 숲속에 한참 동안 앉아 있다가 왔어요.
      내일 이 시간엔 단풍만 모아서 보여드릴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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