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 내려오는 길 1 – 대청에서 봉정암까지

10월 17일 화요일, 그녀와 내가 눈을 뜬 곳은
설악산 정상에 있는 중청 휴게소였다.
하루전 우리는 예약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곳에 도착했지만
마침 날씨가 좋지 않은 관계로 예약 취소가 많아
휴게소 2층의 3층 한쪽을 완전히 독점하고 잘 수 있었다.
침상의 길이가 짧아 발이 벽에 닿았지만
복도에서 쭈구리고 앉아서 자는 신세가 되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었다.
모포도 남아돌아서 2천원을 주고 두 장을 더 얻을 수 있었다.
하나는 베개로 쓰고, 하나는 바닥에 두 겹으로 깔았다.
그런대로 잘만했다.
그리고 다음 날 새벽 5시 30분에 일어나 대청에 올랐다.

Photo by Kim Dong Won

대청에 도착한 시간은 새벽 6시.
손전등을 밝히고 올라갔다.
그녀가 증거를 남겨야 한다고 말하며
일단 대청봉 표석을 껴안고 사진부터 한장 찍었다.
아직도 졸립냐. 왜 눈은 감았냐.

Photo by Kim Dong Won

해는 6시 30분에 떴다.
일찍 올라온 덕분에 명당 자리에 터잡고
해가 뜨길 여유롭게 기다렸다.
명당 자리란 동쪽 하늘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고
커다란 바위가 바람을 막아주는 아늑한 곳을 말한다.
일출 직전, 해가 보낸 빛의 전령들이 구름을 붉은 색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자세히 보면 아래쪽으로는 산 봉우리가 보이고
그 위를 덮고 있는 구름도 보인다.
동쪽이 아니라 남쪽 하늘의 모습이다.

Photo by Kim Dong Won

대청봉에서 바라본 남쪽의 산맥과 구름의 바다.
엄청난 바람과 싸우며 찍었다.

Photo by Kim Dong Won

해뜬 뒤에 선명한 영상으로 다시 사진 한장을 찍었다.
이때의 시간이 7시경.
대청봉 정상에서 한 시간을 보낸 셈이다.
10분 정도 보낸 느낌이었는데
한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가 버렸다.

어디로 내려나가 고민하는데
백담사 쪽에서 올라온 사람들이
그곳의 단풍이 아주 곱다고 전해 주었다.
우리는 내려가는 길을 그곳으로 잡았다.

Photo by Kim Dong Won

어제는 오늘의 날씨를 5mm의 비가 올 것이라고 예보했었지만
어제보다는 날씨가 좋았다.
비는 없었고, 산과 산 사이에 구름이 내려앉아
운치있는 아침을 열고 있었다.
중청에서 바라본 외설악 쪽 풍경이다.

Photo by Kim Dong Won

우리가 하룻밤 신세를 졌던 중청 산장.
숙박비는 7천원, 담요 한장에 1천원.
중간쯤 보이는 갈래길에서 왼쪽으로 가면 한계령,
오른쪽으로 가면 소청이 된다.
어제 우리는 오른쪽 길을 반대로 거슬러 중청까지 왔던 셈이다.

Photo by Kim Dong Won

저 멀리 보이는 바위가
아마도 울산바위가 아닐까 싶다.
울산바위라고 보기에는 너무 가까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울산바위는 미시령을 올라갈 때 보이는 멋진 바위이다.
앞모습이 뒷모습보다 훨씬 멋지다.
그러니까 나는 미시령을 올라가며 마주하는 모습을
앞쪽으로 생각하고 있는 셈이다.

Photo by Kim Dong Won

소청으로 내려가는 길에 바라본 내설악 풍경.
가운데의 약간 희끗한 부분이 봉정암이 있는 곳이다.

Photo by Kim Dong Won

소청에서 바라본 한계령 방향의 풍경.
오늘의 풍경은 설악도 설악이지만
구름이 한몫하고 있다.

Photo by Kim Dong Won

아침 식탁의 풍경.
우리는 소청에서 라면에 햇반으로 아침 식사를 했다.
그때 바깥에 놓여있던 우리의 식탁 바로 앞으로 이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Photo by Kim Dong Won

봉정암으로 내려오는 길.
그녀는 내려오는 길에
마음씨 좋은 아주머니의 고마운 충고를 얻어들은 덕분에
산을 걸어서 내려오지 않고
기듯이 내려가는 안전한 방법을 터득했다.
아줌마에게 유용한 것은
역시 아줌마가 잘알고 있다.

Photo by Kim Dong Won

봉정암의 바위들.
바위는 바위들끼리 서로 얽히고 맞물려 바위가 된다.
사람도 사람과 얽히고 맞물리며 사람이 되는 걸까.
하긴 잘 얽혀서 사는 부부들 보면
저 바위들 못지 않게 든든하면서도 아름답기는 하더라.

Photo by Kim Dong Won

드디어 소청을 거쳐 봉정암에 도착했다.
이때의 시간이 9시 30분경.
소청에서 아침먹은 시간을 빼면 두 시간 정도 걸은 셈이다.
봉정암 사찰의 처마밑에서 올려다보니 바위들이 아득하다.
저 바위들이 있는 곳으로 올라가면
오세암을 거쳐 백담사로 내려가게 된다.
그렇게 하면 1시간이 더 소요된다.
우리는 봉정암에서 그냥 곧장 백담사로 내려가기로 했다.
봉정암 샘물에서 물을 잔뜩 채웠다.

10 thoughts on “설악산 내려오는 길 1 – 대청에서 봉정암까지

  1. 핑백: forestory
  2. 울산바위, 공룡능선, 비선대… 날씨만 좋았다면
    사진이 정말 좋을 거였는데 아쉽네.
    아… 난 올 가을 설악에도 한번 못가고…
    오늘도 비와서 못가구…
    이번주말에는 갈 수 있으려나…

    1. 대신 자주 가잖아. 난 언젠가 설악산에 내려갔는데 고모만 케이블카타고 설악산에 올라갔다 내려오고 나는 내내 호텔방에서 원고만 쓰다가 온 적도 있었어. 일은 어쩔 수가 없는 거 같아.

  3. 오늘도 그냥 눈팅하려다가 흔적남김니다.
    그냥보아도 너무행복했을것같은 여행 부럽고요 언제한번 같이해돋이보러가요.
    그런데 체력이 될래나모르겠네요….,ㅋㅋ

    1. 통통이도 갔는데 뭘.
      하루는 좀 무리인 것 같고, 중청 산장에서 자면 얼마든지 될 것 같아요. 아이들 데리고 온 가족도 있더라구요.

  4. 역시.. 사진도 예술이에요. 넘멋있네요.
    글은 말할 것도 없꼬,
    동원님.. 이렇게 여행을 즐기시고, 기록하시고 부러워 죽겠어요.~
    그런데, 좋은 곳 다 다니시고, 돈은 언제 버는지요..(이거 제 농담에요 ㅎㅎ)

    1. 음, 돈은 조금만 벌어요.
      아이 공부시키고(우리 아이가 학원을 안다니고 혼자서 공부를 하는 덕에 돈이 별로 들지를 않아요), 먹고, 놀러다닐 수 있을 만큼만. 남들의 절반 정도밖에 안되죠. 그래서 둘이 벌고 있어요. 둘이 벌어도 남들 혼자버는 것만큼도 못벌어요. 들어오는 일은 마다않는 편인데 그렇다고 일을 찾아나서지는 않는 편.
      그렇다고 짬나는 시간에 빈둥거리지는 않기 때문에 굶어죽지는 않을 것 같아요.

  5. 내가 대청봉에 오르다니… 정말 대단했어.
    하긴 앞서는 당신이 있었기에 믿고 따라간 것 같아.
    혼자였으면 어림도 없는 얘기지.
    산은 오르는 것도 힘들지만 내려오는 것은 더 힘들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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