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영월의 문산리는
동강의 래프팅이 시작되는 곳의 하나이다.
때문에 편도 1차로의 길을 따라 산속 깊숙이 들어가야 하는 산골 마을이지만
여름 한철엔 차들이 끊이질 않는다.
7월 16일 오후, 갑자기 고개를 든 고향 생각의 강력한 자장 앞에서
버스에 몸을 싣고 영월로 내려갔다가 나도 난생 처음으로
문산리에 들리게 되었다.
사람들이 모두 래프팅과
며칠간의 빗줄기로 더욱 풍성해진 강물의 시원함을 즐기는데 분주했지만
나는 강가의 밭에서 익어가고 있는 옥수수에 더 눈길이 갔다.
강원도 옥수수의 맛이야
입에 올릴 필요도 없이 널리 알려진 것이라
더 말할 것도 없지만
옥수수는 맛 뿐만 아니라
다양한 헤어 스타일로 나의 눈길을 끌어당기고 있었다.
그 헤어 스타일에 주목하며
옥수수밭을 여기저기 기웃거렸다.
덧붙여 밝혀두어야 할 이름이 하나 있는데 엄기탁이다.
내 고향 친구이며, 영월에 살고 있다.
급하게 내려간 친구에게 아무 말없이 토요일 오후의 황금같은 시간을 할애해 주었으며,
나를 차에 싣고 문산리로 데려다주고
서울가는 막차에 늦지 않게
다시 시외버스 터미널로 데려다 주었다.
고맙다, 친구야.
나, 옥수수는 원산지가 멕시코나 열대 아메리카.
몸은 한국화되어 이제 맛은 강원도의 맛이 되었는데
머리만은 여전히 금발이 대부분이네요.
표준 생머리 스타일.
나는 그냥 있는 그대로, 적당히 길이만 관리하면서 기르는게 좋더라.
그래도 날씬한 몸매에
엉덩이를 덮는 이 긴 머리칼이 더 매력적이지 않아?
나는 삼각파도 스타일이야.
세 방향으로 흩어놓는 거지.
세 방향은 너무 어지러워.
나는 한쪽으로 완전히 올인할거야.
폭탄 머리 스타일은 어때.
요즘은 이것도 스타일이야.
나는 염색으로 승부하겠어.
역시 사람들의 눈길을 끌어당기는 데는
빨강 머리보다 더 한 것이 없겠지.
염색은 좋지만 그렇게 일색으로 가는 것은 싫어.
나는 양쪽으로 갈색 브릿지를 넣어서
승부를 보겠어.
좀 예술성을 가미하는데 어떨까.
이건 분수형 스타일이야.
가꾸는데 공이 좀 들어가지.
아, 대충좀 하고 살아.
머리 하나 갖고 뭘 그렇게 복잡하게 그래.
자고 일어난 푸시시한 헝클어진 머리도
좀 사랑해 보라고.
그래도 가지런히 빗고,
또 묶어서 정리하면
얼마나 하루 인생이 깔끔하게 정리되는 기분이라고.
머리가 헝클어져 있으면 정신도 사나워.
옥수밭의 사진을 찍고 있는데
할아버지 한분이 다가오시더니 물었다.
“그건 찍어서 뭣하려고 그러누.”
나는 옥수수의 수염이 너무 다양해서 재미있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그럼 이것도 사진 작품이 되는 거냐며,
만약 그렇다면 그 작품을 가꾼 할아버지의 이름 석자는
밝혀주어야 하는게 아니냐고
은근히 자신이 그 옥수수밭의 헤어 전시회를 마련한 주인공임을 암시하셨다.
지당하신 말씀.
할아버지의 성함은 김종기이다.
옥수수 사진의 저작권은 내게 있지만
옥수수 자체의 저작권은 모두 김종기 할아버지에게 있다.
할아버지는 이제 일주일 정도면
옥수수가 모두 시장으로 나갈 거라고 말씀하셨다.
할아버지, 좋은 작품 찍게 해주셔셔 감사합니다.
7 thoughts on “옥수수의 헤어스타일 열전”
옥수수의 헤어스타일 잘 봤습니다.
옥수수밭 주인의 사진과 이름이 더 멋집니다.^^
아마도 강원도는 지금쯤 옥수수철이 아닐까 싶어요.
요즘은 교통이 너무 좋아지다 보니까 휴가철에는 강원도도 너무 번잡한 느낌도 듭니다.
그날 너무 고마웠어.
아이들 엄마한테
갑자기 니 시간 뺏은 거 미안하다고 전해줘.
이번에 내려가 보니 내 고향이 왜 그렇게 아름다운지
마음이 들뜰 정도였어.
가느골의 성황당이랑,
뱀산의 긴 자태,
돌어서의 물줄기,
지금도 맑게 솟고 있을 웃샘물의 물줄기,
그런게 자꾸 눈에 선하네.
한번 내려가서 고향을 모두 사진에 담아오고 싶어.
없는 길 헤쳐서
뒷동산에도 한번 올라가 보구 싶구.
근간에 한번 또 내려갈께.
이번 주에 내려가려고 마음 먹었는데
써야할 원고 때문에 마음이 좀 급하기도 하네.
어쨌거나 자주 얼굴 볼지도 몰라.
친구야–날세
지척에 옥수수 밭이건만 수염자락의 표현됨이 아주 상큼한
맛이구먼 –그래서 작가던가–
하옇튼 고향내음을 나보다 더 잘 맞고 있구먼–
그나저나 이름 석자 나왔네–^^^^^
일요일에 어머니 모시고 미탄 진탄나루터라는 마을을
갔다왔어–그곳도 래프팅 출발지로 어수선 하더구먼–
들어가는 잎새의 풍경이 아주 그만이야
물안개도 드리우고–플라잉 낚시로 송어잡이도 하고–
기회가 되면–그곳도 한번 가봄세—
더운 날씨 건강 조심하고 —
문곡37카페에도 올려주기 바란다–
건강하시고—다음번에 쇠주한잔 꼭—
은근히 사진을 찍어주길 바라는 눈치셨습니다.
이름까지 밝혀주신 걸 보면 그건 분명한 것 같습니다.
^^ 너무 재밌게 읽었어요.
저도 얼마전 친구가 택배로 옥수수를 보내줘서 쪄먹고있는데
강원도 옥수수는 아니지만 맛있게 먹고있답니다.
뉴슈가를 넣어서 쪄먹다가 어제는 흑설탕을 한번 넣어서 쪄봤는데 향이 아주 독특해지면서 옥수수의 색도 갈색이되더니 쫀득쫀득 넘 맛있는거에요.^^
할아버지가 참 멋지신 분이네요. 다른분들같음 사진찍히는거 싫어하실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