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은 나무의 손짓이다 – 내설악의 단풍

생각해보니 산 가운데서 내가 가장 자주 찾아간 곳이 설악산이 아닐까 싶다.
아무 때나 가볍게 나설 수 있는 서울 근교의 산을 제외하면
두 번 이상 찾아간 곳이 거의 없다.
하지만 그에 비하면 설악산은
그곳에 갔던 회수를 헤아리자면
다섯 손가락을 모두 꼽아야 한다.
올해 갔을 때는 처음으로 대청에서 백담사로 내려왔다.
내려오며 만난 단풍이 무척 고왔다.

Photo by Kim Dong Won

아마도 이어령이지 않았나 싶은데
언젠가 누군가 나뭇잎을 가리켜
나뭇잎이 나무를 가리고 있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러니까 그에게 나뭇잎은 나무의 은폐였다.
그러나 그건 사실이 아니다.
나뭇잎은 나무를 가리고 있는 은폐의 베일같은 것이 아니라
나무의 자기 표현이다.
나무는 나뭇잎을 통하여 자기를 표현한다.
가을엔 그 표현이 갖가지 색으로 나타나
노랗거나 혹은 빨갛거나 하다.

Photo by Kim Dong Won

계곡을 바로 옆으로 둔 단풍은
계곡의 물속으로 풍덩 뛰어든다.
왜냐구?
붉게 익은 뜨거운 몸좀 식히려구.

Photo by Kim Dong Won

단풍이 들면
훤한 대낮인데도 하늘이 붉게 물든다.

Photo by Kim Dong Won

노란 단풍은 그 곁을 지나노라면
나뭇잎이 마치 재잘재잘 떠들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Photo by Kim Dong Won

단풍은 그냥 곱게 물이든 나뭇잎이 아니라
사실은 나무의 손짓이다.

Photo by Kim Dong Won

가을이 오면
나무는 나뭇잎을 물들여
우리들을 손짓한다.
때로는 노랗게, 때로는 붉은 손짓으로.

Photo by Kim Dong Won

단풍이 나무의 손짓이 아니라면
가을마다 그 많은 사람들이
단풍을 보러 그렇게 산을 찾을리가 없다.
사람들도 나무의 손짓을 마다하지 못하는게 틀림없다.

Photo by Kim Dong Won

초록의 나뭇잎은
우리를 부르는 나무의 손짓이라기보다
봄이 오고, 여름이 왔음을 알려주는 일종의 수신호이다.
그래서 봄이나 여름엔 산에 가도
어지간해선 사람들이 나무를 쳐다보지 않는다.
그러다 가을엔 모든 나뭇잎이 우리를 부르는 손짓이 된다.
만약 가을에 아직도 초록으로 남아있는 나뭇잎이 있다면
그건 아직 여름 더위가 쥐꼬리만큼 남아있음을 알려주는 수신호이다.

Photo by Kim Dong Won

지나가다 단풍이 아주 가까이 있어
쉽게 그 손을 잡을 수 있을 정도라면
손금도 한번 봐주시라.
단풍잎의 손금을 봐주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냥 이렇게 말하면 된다.
음, 손금을 보니 가을마다 그리움을 많이 타는 운명이군.
하루종일 손짓하여 그리운 이를 부르게 될 운명이야.

Photo by Kim Dong Won

그러나 나무는 그 운명을 마다않는다.
우우우, 모든 손을 일제히 펼쳐
빨갛게 불꽃처럼 날리도록 손을 흔든다.
그리운 이가 오기 전엔 그리운 이를 부르는 손짓이지만
그리운 이가 왔을 때는 그건 그리운 이를 반갑게 맞는 환호의 손짓이다.

Photo by Kim Dong Won

그러니 가을엔 단풍을 보러가야 한다.
가서 우리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붉고 노랗게 물든 단풍을 바라보며
우리는 단풍에 물들어야 한다.

Photo by Kim Dong Won

갈잎에 저녁빛이 들자
갈잎의 단풍이 투명해진다.
나뭇잎이 원래 물을 머금고 있고,
아직도 그 물이 엷게 남아있을 터이니
투명해야 마땅하다.

Photo by Kim Dong Won

가을엔 꼭 하루 시간을 내서
산으로 단풍을 보러 가야 한다.
단풍은 머리맡에서만 손을 흔들어 우리를 반기는 것이 아니라
때로 그 몸을 낮추어
우리의 발밑으로 주단을 깔려할지도 모른다.
그러니 가을에 꼭 단풍을 보러
어디론가 산으로 나서야 한다.

4 thoughts on “단풍은 나무의 손짓이다 – 내설악의 단풍

  1. 그런데,,,단풍씨로헬리콥터 프러펠러 누가 만들었어요
    전 잘 모르겠네요…
    가르쳐 주세요…………………..

    1. 단풍씨를 다리와 같이 높은 곳에서 날리면 헬리콥터 프로펠러처럼 돌아가요. 그게 바로 단풍씨 헬리콥터랍니다.
      그거 만든 건 단풍나무예요.

  2. 사진보다 자꾸 글에 더 눈이 가네^^
    같이 간 사람도, 같은 풍경을 본 사람도, 같은 곳에서 사진을 찍은 사람도,
    당신같은 생각을 떠올리진 않는데…

    백담사쪽 단풍 참 곱더라.
    아마도 한용운의 시가 남아있는 곳이라 그리운 이를 더 많이 부르나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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