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덮인 겨울강

Photo by Kim Dong Won
2009년 12월 30일 경기도 두물머리에서

겨울이 오자 강은
얼음막을 한겹 덮고
수면밑으로 몸을 숨겼다.
더 이상 강을 찾을 수 없게
눈은 얼음 위를 하얗게 덮어
속을 가렸다.
바람이 배를 붙잡고
강의 행방을 물었으나
배는 알려주지 않았다.
배의 주변으로
약간의 물이 찰랑거려
의심을 샀으나
그 정도의 물로
강을 짐작하기는 어려웠다.
바람이 내 앞을 지나가다
잠시 멈추었으나
나도 모른 척했다.
강의 눈은 한번 덮이고 나면
어지간해선 걷히지 않았다.
겨울 동안 강은
오랜 숙면을 취했다.

6 thoughts on “눈덮인 겨울강

  1. 배는 떠나 왔으나, 돌아갈 수가 없다.

    사공은, 진작에 불 켜진 창을 향해 길 떠났었고

    바람은 눈을 날려 강을 덮었다.

    그 위에 다시 눈 내리고 간간이 비 뿌려

    세월의 강은 깊어만 간다.

    짧아져 가는 여일.

    사랑했던 기억마저 희미해지려할 때,

    그래도 잊혀지지 않는 이름 하나 있어

    떠나온 배는,

    눈 녹을 봄날을 기다리며 불 켜진 창을 응시하고 있다.

    사랑에 정박된 여인처럼.

  2. 얼어붙고 눈 덮인 겨울 강물에 갇힌 배를 바람이 방문했었나 봅니다.
    겨울, 바람, 얼음, 불빛 같은 두 글자 단어와
    강, 눈, 배, 나 같은 한 글자 단어만 사용해 풍경을 그리는 묘미가 느껴집니다.

    1. 댓글이 더 재미나네요.
      최근에 읽은 소설 속에서 이제 막 글자를 배워 책을 읽고 글쓰기를 하는 아이가 책 속의 글자를 털어내 글자들이 흩어지고 그렇게 흩어진 글자 속에서 글자들을 골라 문장을 엮어가는 장면이 있었는데 그 장면이 생각납니다.
      두물머리 강변에 서서 찬바람이 스칠 때 그 바람 속에서 겨울이란 단어를 잽싸게 잡아내고 하얗게 덮인 강변 풍경에서 눈이란 단어를 골라낸 듯한 느낌이 들어요. 마치 그렇게 수집한 단어로 두물머리 강변에서 문장 하나를 엮은 느낌이 드니까 신비롭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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