굽이 높은 신발

Photo by Kim Dong Won
2013년 1월 12일 충남 태안의 만리포 해변에서

당신은 굽이 높은 신발을 신었다.
신발은 당신에게 높이를 주었으나
높이는 걸음걸이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뭍의 세상은 어디에서나 늘씬한 키를 원했다.
불안이 더해지는데도
당신은 키를 높일 수밖에 없었다.
그게 뭍의 삶이었다.
오늘 당신은 그 굽높은 신발을 그대로 신고
바닷가를 찾았다.
당신의 높이는
모래밭에서 깊이가 되었다.
당신이 바닷가를 걸어가는 동안,
모래밭은 당신의 높이를 작은 깊이로 품는다.
당신의 걸음은 여전히 불안하지만
그러나 바닷가의 당신은 걷는 것이 즐겁다.
당신은 깊이를 하나하나 찍으며
바닷가를 돌아다닌다.
당신이 찍어놓은 뒷굽의 깊이를 모두 다 모으면
당신은 아마 바다처럼 깊어질지도 모른다.
당신이 가끔 바다를 찾는 이유이다.
이상하게 당신은 바다를 왔다가면
한동안 굽높은 구두를 신고 불안하게 걸으면서도
평지를 걷는 편안한 느낌이었다.
바닷가의 모래가 내준 굽의 깊이는
당신이 불안하게 걸을 수밖에 없는
그 높이의 중화제이다.
중화제의 효과가 떨어질 때쯤
당신은 다시 바닷가를 찾아야 하리라.

2 thoughts on “굽이 높은 신발

  1. 높이와 깊이가 절묘하게 손을 잡았군요.
    백사장이 어찌나 고운지 처음엔 해변이 아니라 이집트나 마야 문물 출토된 걸
    전시한 전시장 벽면인 줄 알았지 뭡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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