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드의 시대를 시작하다

Photo by Kim Dong Won

근래에 잠깐 맥북을 써볼 기회가 생겼다. 맥북을 처음 구경한 것은 아니었다. 딸의 컴퓨터가 맥북이어서 종종 접할 수 있었고 일본에 갔을 때는 딸의 컴퓨터로 그곳에서 일도 했었다. 13인치 기종이어서 처음에는 그 좁은 화면에서 어떻게 일을 하나 싶었지만 13인치 화면을 셋으로 나누어서 27인치 모니터 두 대에 펼쳐놓고 하던 일을 작은 화면 하나에서도 얼마든지 할 수가 있었다. 그때 문득 나도 여행을 자주 하게 되면 나중에 13인치 맥북을 하나 구입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의외로 맥북에 잘 적응을 못했다. 사람들이 가장 불편해 하는 것은 맥북의 트랙 패드였다. 맥북에서 마우스 기능을 하는 부분이다. 그런데 맥북에서 나를 가장 매료시킨 것은 사람들이 불편해하는 이 트랙 패드였다.
트랙 패드에는 클릭이란 기능이 없다. 있긴 있는데 패드를 꾹꾹 눌러서 클릭을 했다가는 손가락 마디에 관절염이 걸릴 듯한 느낌이 든다. 그만큼 힘이 드는 느낌이란 뜻이다.
트랙 패드는 클릭을 탭으로 대치해놓고 있다. 가볍게 톡치면 클릭이 되는 기능이다. 처음 맥북을 구입했을 때 트랙 패드에선 클릭을 하여 눌러준 상태를 만들려면 탭을 한 뒤 곧바로 패드 위로 손가락을 내려놓아야 했었다. 그러니까 두 번 연속으로 탭을 하면서 손을 떼면 더블 클릭이 되고 두 번째 탭을 할 때 손가락을 떼지 않고 같은 위치로 내려놓으면 클릭을 해서 계속 누르고 있는 상태가 된다. 마우스에선 드랙을 할 때 이렇게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동작에서 잘 적응을 못했다. 딸과 나는 이 동작을 아주 능숙하게 해내곤 했다.
그런데 이 탭을 하여 눌러주는 동작이 어렵기는 어려웠나 보다. 사실 이 동작을 취할 때 내 손가락이 참 섬세하다는 느낌이 들기는 했었다. 이번에 새로운 맥북을 써보니 이 동작이 바뀌어 있었다. 이제는 같은 동작을 세 손가락으로 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드랙을 하려면 트랙 패드에선 세 손가락을 쓰면 된다. 세 손가락 드랙은 예전처럼 섬세한 손가락 동작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많이 편리해진 느낌이었다.
맥북을 써보니 애플의 트랙 패드인 매직 패드를 하나 사고 싶었다. 지금 쓰고 있는 매직 마우스가 너무 무겁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써보니 편리한 점이 많아 결국 마이티 마우스로 돌아가질 못하고 계속 매직 마우스를 쓰게 되었다. 마우스는 기능의 편리함이 무게의 불편함을 이긴 상태였다. 맥북의 키보드 감각도 매우 좋아서 오타가 거의 나질 않았다. 그래서 그동안 배터리 문제 때문에 쓰지 않고 있던 애플의 무선 키보드도 다시 쓰기 시작했다. 입력 도구들이 모두 무선 기기로 바뀌었지만 여전히 마우스는 마우스였다. 그런데 페이스북의 친구분 중에 어떤 분이 고맙게도 자신에게 안쓰는 매직 패드가 있는데 보내주겠다고 했다. 이런 고마울데가. 착불로 보내달라고 했는데 우송료도 모두 본인이 부담해서 보내주었다.
이렇게 하여 마우스 시대를 끝내고 패드의 시대로 진입하게 되었다. 처음 패드를 썼을 때가 기억난다. 마치 세상이 모두 내 손안에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마우스와 달리 손가락으로 모든 것이 처리되기 때문이다. 어떤 기기를 움직이기보다 손가락으로 가리키면 세상이 내 뜻대로 되는 듯한 느낌이랄까. 이제 매직 패드에선 두 손가락을 벌리면 마치 아이폰에서처럼 화면이 확대되고 손가락을 모으면 화면이 축소된다. 나이 먹으면서 시력이 많이 떨어진 내겐 종종 필요한 기능이다. 원래는 키보드의 키 하나를 누르고 +나 -를 동시에 눌러야 이용할 수 있었던 기능이다. 그 기능이 손가락 끝에서 모두 되니 세상이 내 손안에 있는 느낌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선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사실상 맥북은 선이 전혀 없다. 이제 데스크탑에서도 선이 사라진다. 선이 사라졌는데도 어디서나 접속이 되는 시대이며, 손에 잡은 것이 하나도 없는데도 모든 것이 손에 잡히는 시대이다. 귀신이 곡할 세상이나 귀신들도 놀랐는지 귀신의 울음소리마저 들리지 않는 시대이다.

Photo by Kim Dong Won

2 thoughts on “패드의 시대를 시작하다

  1. 올드 맥북을 쓰고 있는 저도 트랙 패드 달린 걸 쓰라면 헤맬 것 같은데요.
    13인치 에어를 살까 말까 두세 해째 생각만 왔다리 갔다리 하고 있습니다.

    1. 본격적으로 써보니 프로그램에 따라 어떤 기능은 반응을 하지 않네요. 세 손가락 드랙이 편리하긴 한데 마우스처럼 익숙하진 않구요. 매직 마우스보다 월등하다고는 할 수 없는 것 같아요. 대신 마우스처럼 움직이질 않아도 되니까 그건 편리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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