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10월 28일 토요일) 가평의 유명산에 다녀왔다.
원래는 용문산으로 갈까 했었지만
진표네 가족과 함께 하는 산행이어서 산의 높이를 낮추었다.
여섯 살 진표와 초등학교 3학년인 하은이가 모두 정상에 올랐고,
여섯 시간이나 걸린 산행을 마친 뒤 뒤풀이 자리까지 즐겁게 놀았다.
일단 먼저 올라가는 길의 여정을 사람들을 중심으로 꾸며본다.
나무를 타고 올라가던 담쟁이 덩쿨이
조심조심 나뭇가지를 타고 가다가
발을 헛디뎌 어이쿠, 아래쪽으로 떨어졌다.
항상 나무나 벽에 붙어 살았는데
그 통에 허공을 붙잡고 가을을 나게 되었다.
바람에 흔들리며 보내는 그 가을도 나쁘지 않을 듯 싶다.
가을은 역시 색이 고운 계절이다.
단풍이 많이 진 상태였지만
곳곳에서 가을색이 우리에게 머리를 내밀고 있었다.
심지어 발밑에서까지.
조금 올라가다가 진표가 털썩 주저 앉더니 이렇게 말한다.
“엄마, 여기를 꼭대기라고 하면 안될까?”
진표는 그렇게 무수한 꼭대기를 오르면서 정상으로 갔다.
한번의 산행에서 그렇게 무수한 꼭대기를 오를 수 있는 건 진표밖에 없다.
두 여자.
어느 날 우연하게 만나
언니 동생하는 사이가 되었다.
우린 이 나무를 가리켜 ‘쪽쪽이 나무’로 명명했다.
자라면서 입을 두번 쪽쪽거리며 맞추었기 때문이다.
혼자 산을 오르면
그는 그냥 산을 오르는 한 명의 남자이다.
그러나 진표랑 함께 하면
그때부터 그는 아버지와 아들의 아버지가 된다.
아이는 그냥 자식이 아니라 아버지 속의 또다른 나이다.
그래서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산을 오르면
사람들은 그 둘에서 쉽게 닮은 꼴을 발견한다.
아이에게 아버지가 고스란히 담겨있곤 하기 때문이다.
이상하게 산에선 닮은 꼴이 걸음을 맞추어 산을 오르는 것을 보면
그것이 세상의 가장 큰 행복 중 하나로 느껴진다.
세상의 모든 부모들이 아이를 데리고 산에 가고 싶어하는 것은
그 행복감을 아이에게 주고 싶기 때문이다.
산을 오르는게 힘들어서 대부분의 아이들은 그걸 잘 느끼질 못한다.
아이가 그 행복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해주려면
정상을 오르는데 집착하지 말고
그냥 쉬며쉬며 함께 산을 가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그렇게 산에 올랐고, 진표는 행복해 했다.
산을 오르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힘든데도 즐겁다.
오, 이거 점점 장난이 아닌데.
이상하다 벌써 산꼭대기를 몇 개를 올라왔는데 산꼭대기가 계속이네.
저기는 정말이려나.
하은이: 아이고, 아줌마 너무 힘들어요.
우리 이렇게 좀 축져서 쉬어요.
통통이: 오호, 그거 좋은 방법인 걸.
그렇게 하면 산이 옆으로 기우뚱 눕혀져서
오르기가 훨씬 편해지는 군.
하은이와의 또다른 대화
하은이: 털보 아저씨, 정상까지 얼마나 남았어요.
나: 5분.
하은이: 어, 아까도 5분이라고 하셨잖아요.
나: 아저씨 시계는 항상 정상까지 5분이야.
어느 산이나 5분만 가면 정상이야.
5분만 가면 되니까 힘이 하나도 안들어.
우리들의 대화
나: 나무도 영어 공부를 하며 자란다.
그런데 Y자밖에 공부를 안해.
하은이: Y는 Why. 왜?
나: 아니, 그렇게 되는 거니.
그럼 숲속의 나무들이 온통 왜왜왜왜 거리고 있는 거니.
그게 하은이 쟤는 왜 저렇게 예쁜 거니 하고 묻고 있는 거니.
저 위가 정상.
사실은 저 정상의 반대편으로 올라왔는데
바로 아래쪽의 억새밭이 좋아서
일단 억새밭으로 내려와 자리를 잡고 휴식을 취했다.
나는 정상에 가면 억새밭이 있다고 큰 소리를 쳤는데
반대편의 정상 바로 밑엔 그냥 몇개 정도의 억새가 있었을 뿐이었다.
약간 뜨끔했지만 그래도 억새는 억새가 아니냐고 우겼는데
그나마 정상에 올라섰을 때 그 아래쪽에 넓은 억새밭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2 thoughts on “진표네랑 함께 한 유명산 산행 1 – 올라가는 길”
치..털보아저씨가 아니라 엉터리아저씨군. 안하던가요?^^
나누는 대화들도 재밌고 표정들도 어쩌면 저리 밝으신지.^^
당연하지, 그건 영어로 “It’s a carrot.” 이라는 것도 알려줬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