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때마다 하는 일이 있다.
칼가는 일이다.
올해도 예외없이 칼가는 일은 내 몫이 되었다.
그녀는 칼이 잘들면 부엌일이 훨씬 수월해진다고 했다.
칼을 갈아주고 나니
그녀가 밖에 나가서 놀다와도 된다고 했다.
아마도 근래에 보여준 내 모습 때문일 것이다.
근래에 들어 높이에 대책없이 약해졌다.
올해의 어느 무덥던 여름날에
함께 장모님 산소로 길을 나선 적이 있었다.
동네 산의 중턱쯤에 자리한 산소로 올라가다
얼마 올라가지도 못하고
그만 사면의 길에 드러눕고 말았었다.
그때 이후로 건강에 대한 잔소리가 부쩍 늘었다.
칼갈아 준 것으로 올해 추석에 내가 할 일은 다 한 것이니
어디 산이라도 다녀오라고 했다.
옳커니하고 집을 나서 간만에 도봉산으로 걸음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조금 높이가 있는 길을 걸으면
가슴에 대한 압박이 커져서
종종 손으로 가슴을 문지르며 진정을 시켜야 했는데
도봉산 초입부터 전혀 손을 가슴에 올릴 일이 없었다.
간만에 와본 도봉산 초입의 풍경도
눈에 익은 익숙함으로 나를 반겨주었다.
계곡의 물소리가 좋아 눈을 자주 계곡 쪽으로 주며
산길을 올랐다 내려왔다.
그렇게 많이 오르진 않았다.
물줄기 소리가 귓전에 가득한 곳까지만 올랐다
물소리가 숨을 죽일 때쯤 걸음을 다시 산아래로 돌렸다.
여름의 끝무렵을 마감하고 있는 계곡은 여전히 푸르러
아직 가을의 기미는 감지하기 어려웠다.
한창 꽃필 때 말할 수 없이 풍경이 좋은 구간이다.
몸은 우이암 정도까지 욕심을 내려고 했지만
집으로 가야할 시간을 계산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돌아오는 길에 그녀와 딸을 불러내 천호역에서 만나고
함께 한강변으로 나갔다.
그리고 치킨집에 전화를 걸어 치맥을 시켰다.
술자리를 펼쳐놓은 한강변에선 저녁이 하루를 마감하고 있었다.
저녁 노을이 하늘에 빛깔 고운 휘장을 걸어주었다.
강의 마음도 잠시 붉게 물들어 저녁 노을에 흔들리고 있었다.
강의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강에 물결이 일었다.
맥주가 뱃속으로 넘어간 뒤 취기를 북돋워주자 말이 많아졌다.
그래도 딸과 그녀가 끊지 않고 들어주었다.
혼자 올랐던 추석 하루전의 도봉산길이
셋이 한강변에서 함께 보낸 저녁으로 마무리되었다.
셋이 만든 또 하나의 추억이었다.
2 thoughts on “도봉산과 한강”
칼 갈아주면 나오는 도봉산 티켓이라니, 그거 서로 밑지지 않는 거랜데요.^^
도봉산 계곡 작은 폭포며, 넓직한 소며, 시원한 게 보기 좋습니다.
여름이 물러간듯 하더니, 아직 살아 있네요.
올해는 산을 너무 홀대한 듯하여 삼각대 둘러메고 도봉산을 몇 번 찾으며 가을을 마감할까 생각 중입니다. 물론 계곡에서만 놀다가 오려구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