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아버지 산소의 벌초는 혼자 다녀왔다.
집앞에서 하남으로 가는 모든 버스가
산소가 있는 천현동으로 가기 때문에 교통도 편하다.
그녀가 추석 끝나고 같이 가자고 했지만
올해는 혼자 다녀올테니
갔다 오는 동안 장봐서 추석 준비하라고 했다.
요즘은 몸이 높이에 많이 약해졌다.
길이 약간만 고도를 높이면 자꾸 가슴에 압박이 온다.
그 때문에 자꾸 평지로만 다니게 된다.
가슴을 좀 쓸어주어야 하긴 했지만
두어 번 쉬면서 산소까지 잘 올라갔다.
지난 해 그녀와 같이 벌초 갔을 때
산소를 제대로 찾질 못해
중간에 동생에게 연락하여 확인을 해야 했었다.
그 불상사를 없애기 위해
올해는 미리 산소 번호를 아이폰에 넣어갖고 갔다.
덕분에 산소는 올라가자마자 확인할 수 있었다.
매년 산소를 덮고 있는 풀이 다르다.
어느 해는 칡이 무성했었는데
칡은 뻗는 길을 차단했더니 요즘은 좀 잠잠하다.
올해는 작은 가시를 가진 풀이 많았다.
어릴 때 고향에서 많이 보던 풀이었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이름은 모르겠다.
묘의 크기가 작아 혼자서도 크게 힘들진 않았다.
여느 해와 달리 올해는 벌초하는 간간히
벌레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움직임이 느린 벌레들이었다.
자연이 약육강식의 치열한 경쟁 세상 같지만
느린 움직임으로 살아가는 벌레들을 보면
오히려 자연은 느린 것들도 얼마든지 살 수 있게 품어주는
다양한 공존의 세상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필요한 만큼만 소유를 취하는 것이
공존을 가능하게 해주는 자연의 미덕이 아닐까 싶다.
그에 비하면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는 느낌이다.
죽어서도 땅을 차지하고 누워 휴식을 취하고
한해에 한번씩 그곳에 뿌리내린 온갖 생명을 잘라내고 걷어낸다.
어느 해 내려갔던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는
오랜 세월의 무게 앞에서 서서히 무너지고 있었다.
고쳐야 겠다기 보다
그냥 이렇게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도 괜찮다 싶었다.
아버지 산소도 나와 동생들이 살아있는 동안,
죽음 뒤의 삶을 누리다가 자연으로 돌아갈 것이다.
달리 자연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애를 쓸 필요도 없어 보인다.
산소는 죽은 부모와 만나는
살아있는 현재의 공간이지만
그 공간의 향유는
바로 밑의 자식이 살아있을 때까지만
누리는 것이 좋겠다 싶었다.
우리 묘의 옆쪽으로도 묘가 두 개가 있는데
아직 벌초를 다녀가지 않아 풀이 무성했다.
아래와 위쪽으로도 풀에 묻힌 묘가 여렷 보였다.
후손들이 한마디 들을 풍경이지만
한편으로는 살아있을 때 얼마나 못했으면
죽어서도 이렇게 버려졌을까 싶기도 했다.
혼자 갔기 때문인지
올해는 벌초하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많이 들었다.
4 thoughts on “벌초, 그 전과 후 2014”
추석날 아침 묵상하기 딱 좋네요.^^
나무 아래서 쉬는 수목장도 괜찮겠다 싶습니다.
저도 수목장은 괜찮아 보이더라구요. 나무 한그루 심어도 좋구.. 기존의 나무 하나를 골라 그 밑에 자리를 펴두 좋구요. 다른 무엇보다 땅을 밀지 않아서 그게 좋더라구요. ^^
이제는 이것도 제 세대에서 마지막이지 싶더군요…
도시에선 대개가 화장인 것 같아요. 시골 고향에선 여전히 매장이구요. 1년에 한번인데도 쉽지 않다고 느껴지곤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