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대체로 무엇엔가 마음을 실어
상대에게 건네주어야 할 때
그냥 세상의 흔한 습관을 따르곤 한다.
그 흔한 습관으로 장미 다발이나 값이 좀 나가는 보석류가 있다.
마음을 건네는 모습이야
언제보아도 흐뭇하긴 하지만
때로 가장 흔한 것,
그러니까 사막에선 모래,
장마철엔 빗방울,
숲속에선 나무나 그 잎사귀,
부엌에선 그 자질구레한 접시나 세간살이들에
마음을 담는게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 자신이 담아 건네는 사랑의 마음이 여기저기 지천이 되지 않을까.
하지만 그런 걸로 어떻게?
그래서 오늘은 그런 생각의 끝에서 빗방울에 마음을 담아 사랑 연서를 썼다.
휴가철이네요.
당신은 지금
강원도 어느 산골의 계곡으로
며칠간 여행을 갔을지도 모르겠어요.
외지에서의 아침은 늘상 일찍 눈이 뜨이곤 하죠.
그 이른 아침이 당신의 발길을 바깥으로 이끌었다면
아마도 근처의 논에서
이제 제법 이삭이 완연한 벼가 익어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을 거예요.
그리고 그 볏잎의 잎사귀 사이사이에서
별처럼 빛나는 무수한 작은 알갱이들을 함께 보았겠죠.
그건 이슬이예요.
이름도 참 곱죠.
그런데 사실을 알려드리자면
그건 당신이 잠든 밤에
바깥을 서성이며,
당신의 아침을 기다리던 내 마음이 영근겁니다.
하지만 당신의 나는 역시 빗방울이죠.
어느 비오는 흐린 날,
흐린 연못의 연잎 위에
별처럼 반짝이는 빗방울이 지천이거든
항상 당신의 마음이 흐릴 때
그 속을 한가득 메워줄 나의 사랑이라 생각하세요.
후두둑 거리는 빗소리를 들을 때면
누군가의 잰 발걸음 같지는 않으세요.
쏟아질 듯 몰려나온 빗방울은
당신에게 갈 때
나도 모르게 점점 빨라지는
내 마음의 걸음걸이입니다.
종종 좁은 가슴에 다 담을 수 없어
내 마음은 넘쳐나곤 합니다.
하지만 멀리서 오는 당신의 눈엔
그 넘쳐난 마음이 가장 먼저 보이겠지요.
그렇게 보면 넘쳐난 마음은
당신을 보고 싶어 뛰쳐나간
내 마음의 성급함이기도 합니다.
당신 앞에 서면
나는 제 속을 다드러내고 맙니다.
때로 나는 속도 없다고 느낄 때도 많습니다.
하지만 당신 앞에만 서면
나는 언제나 숨길 것 하나 없는 알몸이 되고 맙니다.
이건 또 뭐냐구요?
세상 모든 빗방울에 마음의 꼬리표를 붙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래도 이건 제 마음입니다.
그러니
비오는 날,
당신이 그냥 무심히 바라보는 빗방울에도
내 마음이 담긴 겁니다.
보통은 흐린 날
구름으로 장막을 치고
당신을 만나러 갑니다만
때로 당신이 못견디게 보고 싶을 때면
호랑이를 불러 급하게 시집 장가를 보낸 뒤,
여우비를 타고 쨍한 햇볕 속에서 당신을 만나러 갑니다.
작은 빗방울 한두 개가
당신의 마음을 모두 채운 듯한 느낌이 들 때가 있지 않던가요.
만약 그렇다면
그건
미약하고 작지만 당신을 가득채우고 싶은 나의 마음입니다.
이제 내가 누군지 아시겠는지요.
어느 여름날
우산도 없이
빗줄기를 모두 뒤집어 썼다면
당신이 온통 뒤집어쓴 그 빗방울이 바로 납니다.
2 thoughts on “빗방울로 엮은 사랑 연서 여덟번째”
고마워요.
더위는 견딜만 하신가요.
오늘 여기 서울은 무지 덥군요.
빗방울의 투명함이 시원하고 누구에게나 가슴한켠에 간직할법한 감성을 그대로 풀어 쓴것이 가려운데 긁어주는것처럼 시원해요.^^
좋은글들 정말 감사히 읽고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