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에 가면 항상
그곳의 산을 첫 행선지로 삼곤 했다.
때문에 제주에 가선 한라산에 올랐고,
울릉도에 가선 성인봉에 올랐었다.
자주 걸음할 수 없는 곳이 섬이었기 때문이다.
산은 마치 섬의 중심처럼 여겨졌고,
섬이 바다에 떠서 흔들리지 않는 것도
산이 중심을 잘 잡아주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하곤 했다.
그 때문에 섬의 중심으로 오르고 싶었다.
그러면 세상 풍파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나도
중심을 잘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울릉도에서 막 여장을 풀고
성인봉으로 가는 산길의 초입에 섰을 때
멀리 아래로 도동항의 마을이 보였다.
그다지 크지 않은 섬에
사람들이 살만한 곳도 그렇게 넉넉하진 않았다보다.
참 빼곡히도 들어서서 살고 있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하지만 마을을 내려다보는 산중턱의 감나무는 여유롭다.
하긴 감나무를 심은 사람도
나무가 자라 감이 달리기 시작하고
그리하여 그 나무에서 가을이 한동안 붉게 익은 감에
머물다 갈 수 있게 되었을 때
나무 하나로 가을에 내준 자리가
한결 그의 삶에 여유가 되었을 것이다.
때로 내 자리를 넓고 크게 가지면서 여유가 오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에 내준 자리가 마음의 여유를 더 크게 넓혀준다.
빼곡하게 모여서 비좁게 살고 있었지만
그래도 가을에게 내줄 자리는 있었다.
울릉도의 가을이 그 때문에 여유로웠다.
2 thoughts on “가을의 자리”
다른 데선 쉽게 보기 어려운 풍경이 한 장면에 모여든 것 같습니다.
도동항의 멋진 산봉우리들 사이에 자리 잡은 마을은 강물이 흐르는 듯하고,
산중턱의 감나무들과 들꽃이며, 섬을 감싼듯한 구름들 모두에게 시선이 가네요.
창고처럼 보이는 건물의 아름다운 슬레이트 컬러 지붕 조각들마저도요.
불현듯 이런 델 여행해 보고 싶어지게 만드시네요.^^
울릉도는 한달 동안 여기저기 걸어다니며 빠짐없이 보고 싶더라구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