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를 싣고 온 말

Photo by Kim Dong Won

그녀는 “보고 싶어요”라고 했다. 그것은 환하게 빛나는 선명한 말이었다. 핸드폰 속의 문자로 날아왔기 때문이다. 말은 때로 엄청난 위력을 갖는다. 말이 존재를 실어나르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 경우 “보고 싶어요”라는 말은 그냥 말이 아니다. 그때의 말은 아무리 아득한 거리도 존재를 싣고 훌쩍 우리 곁으로 날아온다. 그런 의미에서 때로 말은 존재가 존재를 향하여 날아가는 웜홀 같은 것이다. 둘 사이의 거리는 아무 의미가 없다. 그냥 그것이 핸드폰의 문자이든, 목소리에 얹혀 전화로 전해진 말이든, 또 보내면 곧바로 수신이 되는 신속한 이메일이나 아니면 고전적으로 좀 더디게 우체부의 수고를 빌려 도착한 편지 속의 문구이든, 때로 말은 존재를 싣고 우리 곁으로 날아든다. 아마 그 순간 누군가 우리들의 체온을 측정했다면 분명 체온은 두 사람분의 체온으로 측정될 것이다.
간만에 존재를 싣고 말이 날아들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평소에는 한근밖에 되질 않아 뛰질 못하고 있던 가슴이었다. 역시 가슴의 무게는 가끔 두근이 되어야 한다. 두근이 된 가슴은 잠에 들면 세근이 된다. 그런 날의 밤엔 애처럼 새근새근 잠잘 수 있다.
나는 그녀에게 나오라고 했으나 정작 보고 싶다고 하면서도 그녀는 나오지 않았다. 왜 나오지 않은 것일까. 아마도 그녀는 말을 보내는 순간, 이미 내 곁에 가 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언어가 존재를 실어나르면 둘은 그때부터 굳이 같이 있을 필요가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 언어의 신비보다 몸으로 만나려 한다. 우리의 불행이다. 몸은 자주 몸만 남기고 언어의 신비를 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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