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고 있는 아파트가 8층의 높이를 갖고 있지만
그 8층 높이에서 보이는 바깥의 풍경은
거의 대부분 또다른 아파트나 연립,
아니면 온갖 건물들로 채워져 있다.
그렇지만 그 건물들 사이에
눈을 호사스럽게 만들어주는 풍경들이 간간이 끼어든다.
종종 베란다에 서서
그 풍경들에 시선을 얹어놓고 시간을 보낸다.
우성아파트의 은행나무도 그 풍경의 하나이다.
가을녘에는 더욱 볼만하다.
아파트의 맨꼭대기 층과 높이를 맞댄 메타세콰이아 나무도
은행나무의 가을 채색 사이에 자신만의 가을 채색을 보탠다.
하지만 올해는 눈의 호사를 누리기보다 아쉬움이 크다.
올봄에 가지치기를 하면서
호사스럽던 은행나무의 가을이
초라하게 주저 앉았기 때문이다.
넝쿨장미를 키울 때 똑같은 경험을 한 적이 있다.
가지를 거의 모두 밑둥까지 잘라서
이게 정말 옛날처럼 자랄까 의심스러웠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넝쿨장미는 놀랍게도 몇년 뒤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예외없이 빼앗는 화려함을 자랑했다.
올가을은 아쉬움 속에서 바라보고 있지만
우성아파트의 은행나무도 몇년 뒤
아마도 그때의 넝쿨장미처럼
다시 화려한 가을로 내 시선을 한참씩 빼앗곤 할 것이다.
서울에서 살다보니 가끔 사람들 손에 가지를 쳐내곤 하지만
자연은 또 스스로의 삶을 복원하며 살아남는다.
도시에선 사람이나 자연이나 삶이 힘겹지만
그래도 둘 모두 이곳에서 끈질지게 살아남고 있다.
그리고 무엇이 끈질기면 그것이 종종 우리들에게도 힘이 된다.
2 thoughts on “우성아파트의 은행나무”
은행나무가 아이스크림 녹아내리듯 왜소해져 버렸군요.
올가을은 저도 창밖으로 보이는 초등학교 운동장 나무들이 채색을 달리하는 걸
보는 재미가 쏠쏠했던 것 같아요.
그러고 보니 정말 빨아먹다 조금 남아있는 아이스바 느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