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들의 집단 비행

Photo by Kim Dong Won
2006년 10월 7일 남한산성에서

설악산 대청봉에 갔을 때였어.
그곳에 오르면 항상 지울 수 없는 기억을 하나 갖게 되지.
그건 바로 그곳의 바람이야.
온세상의 바람이 모두 그곳으로 모인 듯, 엄청나지.
혼자갔을 때는 그냥 눈을 감고 조용히 그 바람을 들이키다 왔어.
그럴 때면 바람을 들이킨다기 보다 바람으로 온통 나를 채우는 것 같았어.
그런데 그녀와 둘이 갔을 때는 좀더 적극적이 되어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지.
“팔을 벌려, 날개처럼. 그럼 하늘로 둥실 날아오를 거야!”
아마 내가 한걸음 한걸음을 쌓아가며 그곳으로 오른 높이를 생각하면
날개있는 것들도 내가 날아서 그곳으로 갔다고 생각할 거야.
그러니 내 말이 거짓말은 아니야.
팔을 날개처럼 펼치면 우린 그 바람을 타고 이미 그 높이를 날고 있는 거지.
우린 새가 아니라 날개짓은 서투르잖아.
그러니 우리가 날기 위해선 강한 바람이 필요해.
대청봉엔 항상 그런 바람이 있지.
그래서 대청봉에 가면 그곳의 바람이 기억에 강하게 새겨지게 돼.
우리는 그곳에서 날개를 펼치고 하늘을 날았어.
그런 닭살짓은 사실은 혼자 갔을 때는 겸연쩍어서 어림도 없어.
하지만 둘이 가면 용기가 생기지.
셋넷이 가면 더더욱 아무렇지도 않게 그런 짓을 할 수가 있어.
난 가끔 꽃들에게서도 비슷한 환상을 보곤 해.
꽃 한송이가 홀로 바람에 흔들리고 있을 때는
그저 바람을 호흡하며 다소곳이 앉아있는 것 같은데
꽃송이들이 한데 우르르 몰려있으면
모두 날개를 펴고 하늘로 날아오르는 것만 같아.
하긴 내 식으로 말하면 꽃들도 제 높이만큼 날고 있는 셈이지.
간혹 그 높이는 매우 높아서 내 허리춤을 넘어서기도 해.
작은 꽃들에겐 그게 얼마나 아득한 높이겠어.
그러고 보면 나나 꽃이나
우리의 발목을 땅에 묶어둔 지상의 중력을 답답해할 필요가 없어.
바람이 부는 날, 팔을 펼치거나 꽃잎을 펴는 것으로 우리도 날 수가 있으니까.
간혹 내 눈엔
꽃들이 꽃잎을 날개처럼 펼치고
빙글빙글 돌면서 하늘을 날고 있어.

Photo by Kim Dong Won
2006년 10월 14일 성북동 간송미술관에서

5 thoughts on “꽃들의 집단 비행

  1. 아,꽃 넘 예뽀라,
    요즘,가을숲에 갈대가 흔들리는 모습 참 좋던데,
    계절지난 꽃을 보는느낌도 좋구요.
    저 아직 설악산 못가본걸요.~!!

  2. 바람에 실려 날아볼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지.
    꿈에선 그런적이 많았는데.^^
    높은 산 꼭대기에서 팔을 파닥파닥 날개짓하며 뛰어 내리는거에요.
    물론 꿈이라 다치거나 하진 않는데 매번 새끼 새의 날개짓처럼 어정쩡한 몸놀림이죠.ㅋㅋ

    1. 패러글라이딩이라고, 저는 낙하산 타기라고 부르는, 바람타고 나는 레포츠가 있기는 있죠.
      유명산에 갔더니 그곳이 바로 패러글라이딩하는 곳이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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