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본다는 것

Photo by Kim Dong Won
2004년 8월 14일
서울 인사동에서 있었던 화가 이상열 선생님 전시회에서

한 여자가 그림을 보고 있다. 그림을 본다는 것은 무엇일까. 왜 가끔 그림은 눈앞에서 보고 있는데도 그림에 대해 알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것일까.
그림은 시각적 세상이다. 그리고 시각은 인간의 감각 중에서 가장 발달한 감각이다. 만약에 우리가 보는 대상이 텍스트라면 우리는 그 텍스트를 머릿 속에서 상상의 힘으로 시각화하여 텍스트에 대한 이해로 나가는 과정을 밟겠지만 대상 자체가 시각적 대상이면 그러한 상상의 과정이 필요가 없다. 그림은 눈앞에서 빤히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왜 그림은 원활한 감상이 힘들 때가 종종 생기는 것일까.
그것은 우리가 그림을 해석해야 하기 때문이다. 보고 좋으면 그만 아니냐는 얘기도 있지만 그런 경우에도 눈앞의 그림이 좋은 이유, 다시 말하여 아무 이유없이 그냥 좋다고 해도, 좋다는 그 단순한 판단조차도 가장 소극적인 해석의 한 양태로 볼 수 있다.
사실 이러한 해석의 행위는 그림을 볼 때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일상 생활 속에서 단순히 대상을 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해석한다. 신호등은 대표적인 예이다. 우리는 빨간 신호등을 빨간색의 불빛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건너지 마시오로 해석한다. 우리는 그러한 해석에 전혀 어려움이 없다. 그래서 빨간 신호등 앞에선 기다리며, 최소한 무단 횡단을 할 때도 차가 오는지 미리 살핀다. 빨간 신호등을 단순히 빨간색의 불빛으로 보질 않고 건너지 마시오로 해석을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리들이 교통 신호 체계라는, 그 빨간색 불빛의 의미를 해석할 수 있는 어떤 체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 체계를 전혀 모르는 사람에겐 거리의 빨간 신호등이 갖는 의미는 곧바로 불가사의에 가까워질 것이다.
그림은 불행히도 해석의 체계를 갖고 있질 않다. 왜냐하면 세상에 대한 현실적 해석이라는 그 틀의 구속을 벗어나 또다른 세상을 보여주고 싶었던 자유의 꿈이 그림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그림 앞에 서면 우리는 그 그림을 해석의 과정을 통하여 우리의 마음에 받아들일 수 있는 해석의 체계를 세워야 한다. 예술 작품에서 대해선 각자 나름대로 감상하면 된다는 얘기를 하지만 그 얘기는 곧 해석의 체계를 각자가 알아서 세워야 한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예술은 각자 마음대로 감상해도 된다고 하지만, 그 얘기는 해석의 체계를 갖지 못하면 그림을 눈앞에서 보고도 이게 도대체 뭐지 싶어진다는 얘기도 된다. 마음대로 해석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뜻이다.
각자 나름대로 예술을 즐겨도 된다고 하는데도 내 마음대로 해석이 되지 않는 것은 그림을 마주했을 때 그 그림을 내 세상으로 끌여들여 해석할 수 있는 체계가 내게서 곧바로 구축이 되지는 않는다는 뜻이 된다. 딱히 방법은 없다. 대개는 자주 보면 어느 정도 그 체계가 구축이 되기 시작한다. 예술의 향유가 한방에 이루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림의 세상에선 그림을 읽는 것도 예술 행위이다. 그림의 해석이란 어찌보면 그림이 탄생하면서 갖게 된 자유의 세상에 대한 탐구 비슷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자유의 세상이기 때문에 어떤 해석으로도 그 세상을 규제하진 못한다. 내가 찾아주는 자유, 그것이 그림을 보는 우리의 해석일 수 있다. 더 많은 해석을 가지면서 그림이 점점 더 자유로워지는 것일 수 있다.

4 thoughts on “그림을 본다는 것

  1. 듣고 보니 사람도 눈앞에서 보고 있는데도 알 수가 없다는 점에서 그림과 닮았네요. 사람이 그림같은 건지 그림이 사람 같은 것인지. 오역에 의해 사랑이 태어나기도 하고 미워하기도 하고요. 이 곳 글터는 글터장님의 흥미로운 시선(해석)이 많아서 즐겁습니다.

    1. 기호학에선 세상을 모두 기호로 보기도 하더라구요. 시가 세상에 대한 가장 자유로운 해석의 한 유형이 아닐까 싶을 때가 많았어요. 어떻게 보면 시를 쓴다는 것이 세상의 처음으로 돌아가는 행위가 아닌가 싶기도 했구요.

  2. 기호학 서장을 읽는 것 같은데요.^^
    그러고보니 화가의 그림 세계와 관(람)객의 사유 세계만큼 엇박자를 내는 경우도
    그리 많지 않네요.

    1. 예술은 볼 때마다 새로 시작한다는 느낌이 많이 들더라구요. 그러니까 예술에는 끊임없는 시작만 있을 뿐 반복되는 되풀이 같은 것은 없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옛날 사진보다 생각하나 정리해본 것이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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