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여자랑 제천으로 여행을 떠났다 왔다. 셋이 함께 떠난 여행은 간만의 일이다. 광복절 다음 날인 8월 16일의 일이었다. 출발하여 중부고속도로로 들어서자 간간히 빗발이 뿌렸다. 제천까지의 길은 고향 가는 길이기도 하여 대부분은 네비에 의존하지 않고 그냥 가는데 이번에는 그냥 네비에 의존하여 갔다. 최종 행선지는 제천 시내에 있는 메가박스 영화관이었지만 일찍가서 청풍문화재단지를 돌아보기로 했기 때문이다. 영동고속도로로 들어선 차는 내가 그동안 알던 길과는 다른 길로 방향을 바꾸었다. 막힐 때 이용하는 길이었다. 그러나 차는 막힐 때 이용하던 인터체인지를 지나치더니 충주 근방까지 내려가 길을 바꿔탔다. 생전 처음타는 평택-제천간 고속도로가 있었다. 집에서 미리 길을 탐색해보면 자꾸 이천에서 중부내륙을 타라고 하여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새로 생긴 고속도로 때문이었다. 두 시간이 안걸려 목적지에 도착했다.
광복 70주년이라고 16일까지 청풍문화재단지의 입장이 무료였다. 예상치 못한 횡재같았다. 문화재 단지를 돌아다닌 시간보다 앉을 데만 나타나면 앉아서 수다를 떤 시간이 더 많은 듯하다. 여전히 그녀와 나는 의견이 잘 맞질 않아 투닥거렸다. 딸은 둘의 사이에서 두 사람이 변함없이 의견이 잘 맞질 않는데도 함께 오래 살고 있는 것이 신기하다며 웃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둘의 의견은 잘 맞질 않는데 딸과는 의견이 잘 맞았다. 가령 내가 여기까지 왔는데 산꼭대기에 있는 정자까지 가보자고 하면 그녀가 애가 굽이 높은 신발을 신고 와서 힘들다며 나혼자 갔다 오라고 제동을 걸었다. 그래서 내가 그러면 나도 여기서 함께 놀지 뭐라고 하면 딸이 계단이 잘되어 있어서 올라가도 될 것 같으니 가보자고 했고, 그러면 갑자기 다 함께 산꼭대기 정자로 가보자는 쪽으로 분위기가 확 바뀌는 식이었다. 딸은 어떤 때는 아버지 견해 쪽으로 무게를 실어주고, 어떤 때는 엄마의 견해에 무게를 실어주었다. 딸에게는 일방적으로 한쪽 견해를 편들지 않고 균형을 잘 잡아주는 능력이 있었다.
그녀가 황당한 주장을 펼쳐서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인가 싶은 순간도 있었다. 내가 처음 와본 곳이라고 했더니 한번도 와보지 않은 곳의 내 행적을 너무 구체적으로 말하여 황당했다. 내가 듣다가 도대체 어느 놈이랑 왔었냐고 했더니 화를 벌컥냈다. 속으로 누구랑 와도 그 놈이 나로 대치가 되는 구나 싶어서 그녀랑 다닌 놈들이 조금 불쌍하게 여겨지긴 했다. 그녀와 다닌 세상의 모든 놈들은 나의 그림자에 불과하다.
오후에는 제천 메가박스로 이동하여 영화를 보았다. 제천 음악영화제 출품작 중에 아는 감독의 작품이 있었기 때문이다. 자막에 내 이름도 나오는 영화였다. 영화보고 나선 의림지로 이동하여 그곳에서 저녁을 먹었다. 막걸리도 한잔 했다. 실망스럽게도 제천에서만 맛볼 수 있는 막걸리가 아니라 서울서도 맛볼 수 있는 막걸리였다.
올라오는 길의 고속도로는 다소 막혔다. 내려갈 때 두 시간이 안걸렸던 길이 올라올 때는 3시간 가량 걸렸다. 멀리 번개가 마구치더니 중부로 들어서자 엄청나게 빗발이 굵어졌다. 밤 10시쯤 집에 도착하니 서울은 비가 그쳐 있었다.
가족은 어디를 가는가는 중요하지 않은 듯하다. 그냥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으면 어디든 좋은 곳이 된다. 젊어서 그런지 셋 중에선 딸의 미모가 유난히 빛났다. 딸이 가져온 셀카봉으로 셋이 함께 사진을 찍었다. 카메라로 사진을 찍을 때는 카메라가 움직이는데 셀카봉으로 찍을 때는 사람이 살살 움직여 화면 속에서 자리를 잡았다. 여행의 또다른 재미였다.
2 thoughts on “두 여자와 함께 간 제천 여행”
세 분 다 좋아보입니다.
가족여행이 주는 빛나는 순간들을 자주 누리시길 응원합니다.
아이가 3주 정도 집에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아주 좋습니다. 월말에 돌아가니 이제 열흘 정도 남았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