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과 낙엽이 있는 풍경

Photo by Kim Dong Won
2006년 11월 11일 전북 김제의 금산사에서

처음엔 아마도 단풍나무의 키가 담보다 낮았을 겁니다.
몇년 동안 남너머를 궁금해 하며
단풍나무는 계속 키를 키웠겠지요.
지금은 단풍나무의 키가 담보다 훨씬 큽니다.
담이 아무리 발돋움을 해도 담장 안을 훤하게 내줄 수밖에 없지요.
어디 그뿐인가요.
가지를 팔처럼 뻗어 아예 담장 안으로 슬쩍 손을 넣기도 합니다.
담장의 눈앞을 가리고 장난을 치는 게지요.
안보이지롱.

처음엔 아마 담장도 그저 갓구워져 나온 기와의 검은색이 완연했을 겁니다.
반짝반짝 빛이야 났겠지만 그 색은 좀 도도했을 겁니다.
새것이란 다들 느낌이 그런 법이죠.
하지만 세월에 그을리면서
그 검은색을 볕에도 조금 내주고,
비가 내릴 때면 빗줄기에도 조금 내주었겠죠.
그런데 색이 바랜다는 것은 그리 슬픈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렇게 색이 바래면서 기와는 새식구를 얻었으니까요.
바로 녹빛 이끼가 그 새식구죠.
이끼는 기와 가까이 귀를 기울이면
작고 가는 푸른 숨소리가 날 것 같은 느낌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그렇다면 혹시 이끼는 검은색으로 막혔던 기와에게 와서
기와의 푸른 숨이 되어준 것은 아닐까요.

담장 위로 저녁빛이 곱습니다.
원래 빛이 저리 고운 건가요.
아마 그렇지 않을 겁니다.
빛은 투명해서 저 홀로 있으면
어느 누구의 시선도 붙잡기 어렵죠.
빛이 투명으로 저 홀로 있을 때는
빛은 잘 보이지 않고 그냥 텅빈 공간의 공허감이 보일 뿐이죠.
하지만 단풍잎 사이로 슬쩍 녹아들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단풍의 고운빛을 나누어 가지면
그 투명이 갑자기 곱고 눈부신 색으로 충만해집니다.
그럼 그 빛이 잎과 잎 사이를 가득채우며 부서지게 되죠.
어때요, 단풍잎 사이의 저녁빛은 정말 곱지 않나요.

비올 때 빗줄기가 모여 미끄럼을 타고 내려가던 담장의 물매는
단풍이 들고 낙엽이 날리는 계절이 오면
떨어진 낙엽의 임시 거처가 되기도 합니다.
한두 잎이 아니더군요.
가까이 가면 낙엽들의 얘기가 들릴 것도 같았어요.
“너는 어디서 왔어.”
“나는 요사채 뒷편의 은행나무에서 왔지.
아래에서 세번째 줄기에 있었는데
어느 날 지나는 바람이 잡아끌길레
못이기는 척 그냥 따라나서고 말았지.”
“나는 바로 요 위 단풍 나무에서 내려왔어.
나는 바람에는 끄떡이 없었는데
어느 날 서쪽 하늘로 넘어가는 저녁빛이 너무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워
그걸 정신없이 바라보다가 그만 깜빡 정신을 잃고 말았지 뭐니.”
그 얘기에만 귀를 기울여도 몇 시간이 아쉬울 것만 같습니다.

곳곳에서 가을이
단풍과 낙엽이 있는 풍경을 수놓으며 지나가고 있습니다.
오늘 나는 잠깐 그 풍경을 스케치하며 가을을 보내고 있습니다.

Photo by Kim Dong Won
2006년 11월 11일 전북 김제의 금산사에서

4 thoughts on “단풍과 낙엽이 있는 풍경

  1. 동원님 안녕하세요^^*
    금산사 수려하군요.
    단풍의 빛깔 아름답고 고와요.
    낙엽도 이제 제몫을 다해가는듯 하고,
    은행잎들이 우수수 떨어지고 있네요.~!!

    꼭, 내마음처럼…….ㅎㅎ

  2. 10월보다 오히려 더 가을이 한창인 요즘이에요.
    거리 나가보니까 가로수들이 너무 이뻤어요.^^
    아니? 이제 가을 시작인가봐?? 하면서 행복했었다는.ㅋㅋ

    1. 정말이지 금산사갈 때 차창으로 보니까 단풍든 가을산이 너무 예쁘더라구요. 요즘 남쪽으로 내려가면 오히려 가을 분위기 맘껏 즐길 수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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