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선물

Photo by Kim Dong Won
2015년 11월 5일 우리 집에서
 

귤따러 간다고 제주에 갔던 그녀가 올라왔다. 제주의 아는 이가 한 번 내려오라고 부르자 서울에서 일거리가 뜸해진 그녀가 제주에 가서 일을 해보겠다고 내려간 것이었다. 열흘 동안 내려가 있었다. 올라오며 내 선물이라고 제주의 소주, 한라산을 챙겨왔다. 처음에는 한라산을 가져온다고 하여 기분이 좋았으나 탁자 위에 풀어놓은 걸 보니, 이게 마시라고 가져온 건지, 아님 먹고 죽으라고 가져온 건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양은 한꺼번에 마시면 먹고 죽기에 충분해 보였다. 그래도 뭐, 이 정도면 어쩌다 마신 뒤끝에서 죽는다고 해도 황동규식 표현을 빌려 썩 괜찮은 죽음이 되리라 싶었다. 그 자리에서 한병을 땄다. 술과 함께 제주에 아는 사람 없으면 맛볼 수 없는 더덕 장아찌가 탁자 위로 나와 안주로 구색을 맞추어 주었다. 구석의 페트병에 담긴 것은 제주의 처자가 형부에게 가져다주라며 챙겨준 더덕주이다. 한 제주의 처자가 그녀를 언니 언니 하고 부르면서 졸지에 나를 형부삼은 덕에 나는 제주에 처제를 갖게 되었다. 당분간 난 취해서 세월을 보낼 것이다.

2 thoughts on “그녀의 선물

  1. 얼추 집을 비우신 하루 당 한 병 꼴이네요.
    귤 한 박스 가져온 것보다 훠얼씬 신나는 선물이었겠습니다.^^

    1. 낚시로 직접 잡은 생선 몇 가지하며 안주 종류도 올라왔는데 이게 안주가 너무 좋아서 술이 취하지 않는다는 흠이 있더라구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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