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에 금이 갔다.
눈길을 끌만한 것은 없다. 단순한 현상의 설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각 하나가 벽의 금에 우리의 눈길을 붙잡아 둘 수 있다. 누가 금을 낸 것인가를 덧붙이면서 금을 낸 장본인을 세월이라고 생각하면 표현은 약간 바뀔 수 있다.
세월이 흐르면서 벽에 금이 갔다.
이렇게 생각을 바꾸면 그때부터 금과 함께 세월도 보인다. 그렇지만 세월이 흐르는 것도 현상이고 벽에 금이 가는 것도 현상이어서 변화는 그렇게 크질 않다. 이쯤에서 나는 현상을 지우고 세월을 주어로 내세워본다.
세월이 벽에 금을 냈다.
세월은 이제 이 벽에 금을 낸 확실한 장본인이 된다. 그러나 벽과 좀더 재미나게 놀려면 여기서 좀더 나가야 한다. 나는 그 방법으로 이제 세월에게 어떤 동작을 부여해본다. 내가 최종적으로 벽앞의 금 앞에서 노는 것은 그리하여 다음과 같이 완성된다.
벽의 안쪽이 궁금한 세월이
벽에 금을 냈다.
세월이 본 것은
가는 실금의 틈으로 새어나온
벽의 세월이었다.
세월은 제가 금을 그어놓고
저를 보았다.
내가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이렇게 논다.
2 thoughts on “벽의 세월”
갈라져 뻗은 금만큼이나 다양하게 놀 수 있는 새 놀이를 즐기셨군요.^^
제가 무엇을 갖고도 잘 놀지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