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세상에서 보낸 딸의 하루

아이를 키우면서 가장 힘든 측면의 하나는
그들의 경험 세계가 우리가 클 때와는 사뭇다르다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경험 세계를 정상적인 것으로 여기면서
(생각해 봤을 때 별 탈없이 컸으므로)
아이들의 새로운 경험 세계를
비정상적인 것으로 이단시하거나 백안시한다.
우리가 클 때는
만화는 읽고 낄낄대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었으나
요즘 아이들은 만화의 주인공을
그들의 몸을 빌어 세상으로 불러내려 한다.
그리고 그 재미에 빠진다.
오직 공부만이 정상이었던 우리의 성장 과정 때문에
그러한 세계는 매우 걱정스럽게 보인다.
내가 보기에
부모 노릇을 한다는 것은
그 걱정을 아이에 대한 믿음으로 전환하려는 노력에 다름 아니다.
많은 부모들이 고개를 갸웃거릴 것이다.
아니 걱정스런 상황을 어떻게 믿음으로 전환할 수가 있다는 거지? 라며.
그에 대한 예를 하나 들자면
세계적 검색 엔진 구글의 로고를 디자인하고 있는
한국인 황정목(데니스 황)씨를 들 수 있다.
그는 미국의 스탠포드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했지만
중학교까지의 학교는 한국에서 다녔다.
경기도 과천의 콩나무 시루같던
초등학교 교실 뒷자리에서
공책에 빽빽히 만화를 그리던
어린 시절의 그에 대해
어른들은 걱정을 많이 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그때 그렸던 개구리가
지금 구글의 로고에서 뛰어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걱정이 믿음으로 바뀔 수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
그러한 사례는 그 이외에도 무수히 많다.
오늘 걱정스런 자리에서
걱정을 믿음으로 뒤바꾸는 노력을 기울이며
힘들게 힘들게
부모 노릇을 하다가 들어왔다.

Photo by Kim Dong Won

몇번 코믹 월드란 행사에
만화 주인공의 분장으로 참가를 하더니
이번에는 부스를 내고
자신이 만든 물건을 팔겠다고 나섰다.
한 부스를 고1 언니와 나누어 썼다.
왼쪽의 반쪽이 딸애의 부분이다.

Photo by Kim Dong Won

딸은
코난이라는 탐정류의 만화를 좋아한다.
이걸 만드느라 밤을 세웠다.
자르고 부치는 작업은
애 엄마가 해야 했고
고리 끼우는 작업은 내가 도왔다.

Photo by Kim Dong Won

손님이 뜸한 사이엔
책을 읽는다.
물론 만화책이다.
만화책도 책이다.
책을 읽으며 식사까지 한다.
몸과 마음의 양식을 동시에 해결한다.

Photo by Kim Dong Won

저 애들은 도대체 누구일까.
나는 잘 모르지만
딸 아이한테는 친숙한 인물들이다.
마치 실존하는 인물이 아닐까 착각이 들 정도로.

Photo by Kim Dong Won

그래도 저걸 만들면서
그림 솜씨가 나날이 좋아지는 것 같다.
또 무엇보다
그동안 60만원을 주고 산 태블릿을 내내 썩혀두었는데
딸 아이가 그것을 가져다 유용하게 쓰고 있다.
내가 산 컴퓨터 주변기기 중에
몇가지 사장이 된 것이 있는데
태블릿은 딸 아이 덕택에
기사회생했다.

Photo by Kim Dong Won

종이컵이 진열장이 되다니.
종이컵 속에 담긴
버튼은 특히 수준이 아주 높다.
하나에 500원이지만
5천원에 두 개를 사주었다.
나는 딸 아이한테
좀 만화처럼 그리지
너무 예술성을 가미한 것 같다고 아부를 했다.

Photo by Kim Dong Won

그냥 지금처럼
지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았으면 좋겠다.

Photo by Kim Dong Won

눈매를 보고 있노라면
무서울 정도로
나를 닯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를 닯았다는 생각이 들면
더더욱 아이가 가고 싶은 길을 막고 싶지가 않다.
지금도 가끔
막힌 내 길에 답답한 나는
딸이 가난하게 살더라도
자기 길을 갔으면 좋겠다.

Photo by Kim Dong Won

다른 무엇보다 아이에게
자유를 주고 싶다.
자유를 주면
그 자유를 지 맘대로 주물러
아이가 가치있는 삶을 만들 것 같다.

Photo by Kim Dong Won

학교 등수는 계속 떨어진다.
최근에 알았는데
자유는 등수의 저 아래쪽에 있었다.
등수의 저 위쪽에도 자유가 있을까.

Photo by Kim Dong Won

별로 팔리는 것 같지는 않았는데
딸 아이는 다섯 개를 한꺼번에 사간 사람도 있었다고 말했다.

Photo by Kim Dong Won

요즘 아이들의 대부분이 그렇듯이
딸 아이도 핸드폰을 손에 잡으면
말이 아니라 문자로 소통한다.
나는 가끔 내가 말에 구속되어 있는데
딸 아이는 문자의 힘을 빌어
말의 구속을 뿌리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중학교 1학년초에 핸드폰을 장만해주었고
최근에 새 것으로 바꾸어 주었다.
딸 아이가 누리는 문자의 자유는
경제적으로도 얼마되지 않아
핸드폰 요금이 2만원을 넘기지 않는다.
자유는 때로 경제적으로도 매우 유리하다.

22 thoughts on “만화 세상에서 보낸 딸의 하루

  1. 애 키우면서 우리가 비로소 어른되는 거 같아.
    우리가 클 때와는 좀 다르게 키우고 싶어.
    시골서 자라서 그런지 도시에서 애를 키운다는 것이 애한테 미안하기도 하고.
    내 삶의 자양분은 어릴 적 문곡의 뒷동산과 그곳의 바람, 누워있으면 햇볕이 따뜻했던 봉분들, 뭐, 그런 것들이 아닌가 싶어.
    고향이 그립다.

  2. 모습이 조금은 변해졌는 걸
    성숙해 보이기도 하고
    하옇튼 글을 읽고 느끼는 점이 많구먼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이 고민해야 될 마음이지 뭐
    간단치는 않지만 고민도 안해보는 것은
    이유야 어떻튼 서글픈 세상 아닌가–

  3. 너무 멋집니다^^; 전 막 결혼한 입장이지만 지금의 내 모습으로 자식에게 죄가 될까하는 마음에 아이계획이 전혀 없지만 여기서 뭔가 많은걸 느낍니다. 아버님의 쎈스가 정말 멋져요~

  4. 만화라면 한 밤중에 달리는 자동차라도 실내등에 의지해
    읽어야 하는 조카녀석 생각이 납니다.
    언니랑 형부가 장사를 하다 보니 조카와 함께 해 줄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없어서 아이가 늘 마음에 걸리던 차에
    오라버님 글을 읽고 조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문지는 참 행복 할 것 같아요.
    좋은 아빠가 늘 옆에 함게 계시니 말에요.

    글 읽고 또 하나 배우고 돌아 갑니다.
    늘 좋은 나날 되시길 바라며….

  5. 안녕하세요. 링크를 타던 지인의 소개로 글을 보게 되었습니다. 85년생이라는 젊은 나이입니다만, 크게 가슴속에 와 닿는 것이 있었습니다. 저도 게임개발이라는 왠지 낯설은 직업으로 향하기 위해 전문적으로 공부를 하며, 아마추어 개발팀을 만들어 일 하고 있는 녀석입니다.
    이것을 위해 ‘게임 디자인 학과’라는 부모님들께는 정말 생소하고 듣는 어감으로는 하루 왠종일 게임하는 법 만을 배우는 듯한 곳에 들어가기 위해 부모님과 심하게 다투었던 (특히 아버지와) 기억이 다시 떠오르는군요.
    비록 지금은 동원 님 처럼 저의 부모님께서도 제가 반드시 나아가고 싶고, 하고 싶은 일이며, 성공 해 보이겠다고 다짐한 길을 걸어가시는 것을 지켜봐 주시고 계십니다.
    왠지 두서없는 글을 쓴 것 같네요. 마음에 찡- 하고 와 닿는 글을 보고도 그냥 지나칠 수 없어 글을 남깁니다.
    평안하시길….

    1. 지금 가고 있는 디에네님의 길을 응원해주고 싶어요.
      내가 학교다닐 때 항상 읊고 다닌 말이 하나 있죠.
      “젊은이는 실수를 하지 않는다. 그의 실수는 의지에 의한 것이며, 발견의 관문인 것이다. 인간이 걸어간 길을 답습하는 것은 안전은 할 망정 그 길에선 어떤 발견도 있을 수 없다.”
      꿋꿋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디에네님에게 분명 미래는 열리고 말거예요.

  6. 이번에도 남해로~~~남해 갔다 왔지~그 이름하야 안도!~~어찌나 멋진지~~바가지 요금도 없고~~조금 먼것이 흠이지만~~그래도 참을만해..막히진 않으니~~ㅎㅎ

  7. 속 좀 태웠겠군~~~하지만..하고 싶은게 있다는게 행복한 일이야~~~울 오빠가 조금씩 사람이 되가네…딸 덕분에~~ㅋㅋㅋ

  8. 은찬아빠(조동규)가 아름다운 여인의 사진을 보고 있길래 질투가 나서 저도 죽 둘러 보았답니다. 그랬더니 교회에서 인사만하고 잘 몰랐던 형제님의 멋진 홈이었군요. 예쁜딸과 아름다운 조기옥자매님, 그리고 멋진 사진과 글이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군요.

    1. 찾아주시니 큰 기쁨입니다. 아마도 조동규씨가 이곳을 찾는 이유는 자신의 아내가 가장 아름답다는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서 일거예요. 그것 만큼은 세상 어디에 가서도 자신할 수 있지 않겠어요. 뭐, 내 눈에는 내 아내이긴 하지만요. 남편과 함께 가끔 들러주세요.

  9. 딸분을 무척이나 아끼고 사랑하시는구나.. 글을 읽으면서 절절히 느꼈습니다. 딸분과 마찬가지로 저도 그림을 그리고 저곳에가서 팔거나 그곳을 돌아다니며 구경을 하는 그런 그림쟁이입니다. ‘딸의 입장’으로, 아버지의 생각을 엿보니. 저의 아버지도 저를 보면 이런 생각들을 하셨을까. 하고. 왠지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지네요. 😀

  10. 저는 이제 다섯살바기 아들을 키우고 있지만, 아버지로서의 김동원님의 따뜻한 마음을 잘 느껴지는 글이었습니다. 잘 읽고 배우고 갑니다.

  11. 정말 이쁘네요.^^
    며칠전 도서관 휴게실에서 커피를 마시며 빌린 책의 머릿말을 읽고있는데 옆자리 서너명의 아주머니들 얘기가 귀에 들어왔어요. 아이들을 만화에 빠지게 하면 안된다면서 그러면 집중력이 없어져 정작 책을 멀리하게 된다는 우려를 하더군요. 전 서점가서 아이들이 읽고 싶어하는책은 만화책이던 동화던 가리지않는 편이었거든요. 그분들 얘기에 정말 그럴까..생각해보다가 제 경우를 떠올려봤어요. 전 만화를 무지 좋아해서 결혼한뒤에도 비디오 빌리러 갔다가 만화를 빌려오는경우도 종종있을 정도지만 책도 무지 좋아하거든요.^^
    만화얘길 읽으니까 그때 일이 떠오르네요.^^

    1. 나는 글자로 된 책을 많이 읽어야
      상상력을 촉발할 수 있다는 견해에 대해서도 회의적이예요.
      스필버그의 경우 수많은 영화를 보면서
      자라났지만 그러한 시각적 경험이 그의 상상력을
      막았다는 생각은 전혀 안들거든요.
      만화도 마찬가지죠.
      우리 딸을 보니 만화를 읽다가
      일본어로 된 소설책을 읽기 시작하더라구요.
      그것도 일본어 사전을 뒤져가면서…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