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과 고드름

Photo by Kim Dong Won
2005년 12월 15일 충남 장항에서


눈의 자리가 따로 있을 리가 있나요.
눈이 내리면 나뭇가지 위에도 내리고,
거리에도 내리고, 심지어 지나는 사람들의 어깨 위에도 내립니다.
하지만 역시 지붕 만한 자리가 있을까 싶어요.
지붕은 경사를 가지면서도 미끄러지지 않을만큼 적당히 평탄해서
일단 그곳에 내려앉으면 금방 자리가 안정이 됩니다.
나뭇가지는 좀 아슬아슬한 스릴은 있는데
바람이 심하게 흔들면 영 자리를 지키기가 어렵습니다.
역시 자리가 좋기로는 지붕이지요.
거리로 내려앉은 눈이
금방 사람들 발걸음에 밟히고 찻바퀴에 차이면서
제 모습 온데간데 없이 잃고 망가져 버리는데 반하여
지붕의 눈은 그냥 처음 그곳에 내리던 그때의 그 모습 그대로이죠.
지붕은 너무 안락해서 햇볕이 조금이라도 눈부시다 싶으면
금방 따뜻하게 온기가 올라와요.
그럼 눈은 저도 모르게 스르르 잠이 들어 버리죠.
볕이 따뜻한 날, 눈의 잠은 달콤하기 이를데 없어요.
얼마나 달콤한지 그 꿈속으로 녹아버릴 정도예요.
눈이 꿈 속으로 녹아들면
그 꿈은 속이 다 비치는 투명이 되어버려요.
그렇게 달콤한 꿈 속으로 녹아들다
저녁이 햇볕을 거두어갈 때쯤
갑자기 쌀쌀한 냉기가 처마끝을 훑고 지나가면
그때쯤 눈은 퍼뜩 잠에서 깨어나고 말죠.
그럼 처마끝에 눈의 투명한 꿈이 주렁주렁 열려있죠.
깨어서도 저의 달콤한 꿈을 볼 수 있는 건
아마 지붕의 눈 뿐일 거예요.
그 꿈이 창가로 자리하면
아마 창문 안에서 두런두런 들려오는 집안 사람들의 얘기가,
혹은 그게 절의 선방이라면 스님들의 얘기가,
그 투명한 꿈에 고스란히 담길 걸요.
역시 눈의 자리로는 지붕만한게 없어요.
투명한 눈의 꿈을 걸어둘 수 있는 건 그곳밖에 없으니까요.
올겨울에도 어디선가 눈의 투명한 꿈이 주렁주렁 열릴 것을 생각하면
이 겨울도 그런대로 견딜만 할 것 같아요.

Photo by Kim Dong Won
2005년 2월 18일 강원도 백담사에서

6 thoughts on “눈과 고드름

  1. 이제 곧 500페이지가 되겠군요.
    우선 미리 축하합니다.
    하루 하루 일상의 글과 사진을
    정말 에너지 넘치게 담아 낸 ,
    동원님의 열정에 찬사와 감사함을 보냅니다.

    님 덕택에 고단한 삶의 많은 위로와 잔잔한 기쁨을 주었지요.
    뭔가 이쯤에서 그동안의 노고에 보답해야 할 것 같은데..

    진표아빠!
    지난번 술자리때, 호기있게 외쳤던거 기억나?
    왜,월드컵 상암구장 컨벤션홀 예약해서
    축하연 갖자구 한거.
    알아보니까, 조그만 방 하나에(한 20명) 2000 정도 든데,
    어떡할꺼야?

  2. 글 쓰시면 미리 12로 예약을 해두시는것인지?^^
    지금 익산에도 눈이 내리고 있어요.
    시누이님이 좀전에 다녀가셔서 아직 잠들지 않길 잘했네요.
    펑펑은 아니지만 눈이 내린다는것 만으로도 충분히 좋아죽을거같거든요.ㅋㅋ
    통통이님 꼭 안고 따뜻한 겨울밤 되세요^^

    1. 그래서 통통이가 신데렐라 블로그라고 불러요.
      12시만 되면 내용이 바뀐다고…
      그냥 하루에 하나씩만 올리려고 12시에 예약해놓죠.
      미리미리 써놓곤 하는 경우가 있거든요.
      일 때문에 스트레스 받을 때마다 요거 쓰면서 스트레스 해소하죠.

      빨리 일 끝내고 사진 좀 찍으러 갔으면 좋겠어요.
      너무 옛날 사진만 울궈먹는 거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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