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는 세상을 적신다

Photo by Kim Dong Won
2006년 9월 6일 전남 순천만 대대포구에서


만약 어느 해 여름 시간이 나신다면
순천만에 한번 가보십시오.
그곳에 가면 갈대밭이 아주 무성하고 넓습니다.
갈대밭 사이로 목책길이 있어
갈대를 지척에 두고 한가롭게 걸어볼 수 있습니다.
바람이 쏴쏴 갈대를 훑고 지나가면
아마도 그곳에 온 것을 환영하는 인사쯤되려니 여겨도 상관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순천만의 갈대밭에 갈 때는
꼭 비가 막 그친 다음에 가십시오.
아마도 분명 갈대의 초록빛이 훨씬 진하게 보일 겁니다.
비는 물빛을 가져 속이 훤히 내비치는 투명인 것 같지만
어찌된 일인지 지상에 내려와 세상을 적시면
세상 모든 것들의 색이 진한 빛으로 그 농도를 더합니다.
투명하기로 따지면 햇볕을 따라갈 것이 있을까 싶지만
햇볕은 비와는 좀 다릅니다.
따뜻하고 환한 햇볕 앞에선
세상 것들의 색이 이내 바래곤 하지요.
햇볕은 세상을 환히 비추면서
대신 세상 것들의 색을 한겹 벗겨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그러니 순천만에 갈 때는 맑은 날을 피하여
비가 막 그치고 난 후에 가보십시오.
그럼 아직 색을 한겹 내놓기 전,
원래의 농도대로 진한 초록빛을 그대로 간직한 갈대를 만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 사랑으로 젖었을 때도 아마 그런 진한 색깔일 겁니다.
그러니 살다가 등따숩고 배불러서 좋긴 한데
사랑이 바랜 듯한 아쉬움이 느껴질 때면
비가 내리는 여름날을 골라 순천만으로 가보세요.
그래요, 생각해보니 비가 그친 뒤가 아니라 비가 내릴 때가 더 좋겠어요.
물론 목책길을 따라 빗속을 걸어보아야 겠지요.
그럼 아마 두 사람의 사랑으로 서로에게 젖게 될 거예요.
물론 두 사람 사이가 아주 진해지겠지요.
진해 진 다음에 뭔 일이 벌어질지는 저는 책임을 못집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나쁜 일보다는 좋은 일이 벌어질 것 같습니다.
내 일러주는데 어느 해 여름, 비가 적당히 내리는 날을 골라
순천만에 한번 꼭 가보세요.

Photo by Kim Dong Won
2006년 9월 6일 전남 순천만 대대포구에서

21 thoughts on “비는 세상을 적신다

  1. 우포늪처럼 저기도 늪인가요?
    비온뒤의 안개낀 모습이 참 아름답네요.
    왜이리 안가본곳도 많고 가보고싶은곳 투성이인지.^^
    4월이나 10월에 한번 가서 갈대의 인사도 듣고
    마음을 정돈하고 싶어요. 40대에.
    왜 40대냐 가고싶음 언제라도 가면되지 하시겠지만
    제 생각에 40대가 되면 제가 좀더 성숙한 여자가 되고
    마음도 차분해질거같아서 저런곳과 잘 어울릴거라고
    그림이 그려지거든요.ㅋㅋ
    ab형은 원래 머릿속으로 모든 상황을 그려보는 습관이 있다네요.^^

    1. 늪이라기 보다는 뻘이예요.
      사진을 자세히 보면 사실은 물밑으로 약간 뻘이 보인답니다.
      아이구, 뭘 조급하게 생각하세요.
      저는 곧 50이 되는 걸요.
      앞으로 얼마든지 다닐 수 있으세요.

  2. ‘아직 색을 한겹 내놓기 전’
    그리고…비오면, 순천만의 ‘색’이 더욱 명료해진다는 거지요? ^^

    순천만은 정말 가보고 싶은 곳예요.
    동워니님은 이미 가 본 곳… (비온 뒤 언젠가는… 안느도 ^^)

    1. 전 벌써 두번이나 가봤죠.
      한번은 12월에, 한번은 여름에.
      다음엔 눈올 때나 꽃필 때 한번 가볼까 생각 중이예요.
      밤 열차를 타고, 밤새 달려서…

  3. 비온 뒤의 풍경은 저두 너무 좋아합니다.
    너무나 맑고 깨끗한 자연을 보면서 심신이 맑아지는 것 같습니다.
    순천만 갈대밭 풍경을 보니 마냥 그림을 그리고파 집니다.

    1. 요거 선생님께만 말씀드리는데 우리가 갔을 때 사실 순천만의 갈대밭이 넘진 선생님을 부르고 있었어요.
      선생님의 화폭으로 들어가고 싶어서…
      선생님 화폭으로 들어가는 호사를 누린 개나리가 세상에서 제일 부럽다고 했다니까요.

    1. partywave님 그러더라구요.
      주루님께 민폐를 끼치면 그냥 독일 구경이 아니라 건축물에 대한 자세한 얘기를 곁들이면서 그야말로 어디에서도 구할 수 없는 가이드의 안내를 받아가며 특별한 여행을 하게 된다고…

    2. 짧은 시간에 취향을 모르는 친구를 여기저기 데리고만 다녀서 미안했는데…별 얘기를 다 했네요.^^’ 단지 제가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알고 있는 동네였던 것일 뿐이었는데요.
      유럽에 오시게 되거든 미리 알려주세요. 독일에 대한 부분은 ‘꽉~’ 채워 일정 짜 드릴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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