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

Photo by Kim Dong Won
2006년 11월 25일 서울 상암동 월드컵 공원에서


세상의 모든 다리는 달리고 싶어한다.
육중한 몸의 하중을 받쳐들고 하루종일 가만히 서 있다고 하여
제자리를 지키는게 다리의 미덕이자 숙명이라고 생각했다면
그것은 큰 오산이다.
우리가 다리 위를 달려갈 때,
혹은 자동차가 다리 위를 달려갈 때,
사실 우리는 제자리를 뛰는 것이며,
실제로는 다리가 달리고 있다.
세상의 모든 다리는 그 위를 건너는 모든 것들을 싣고
하루종일 달리고 또 달린다.
그게 다리의 숙명이다.
다리는 그럴 수밖에 없다.
다리는 몸전체가 다리이기 때문이다.
몸전체가 다리인 것은 세상에 우리나라 다리밖에 없다.
우리나라 다리는 코도 없고, 눈도 없고, 귀도 없다.
우리나라 다리는 오직 다리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다리는 하루 종일 끝없이 달린다.
다리 건너편을 향하여.
그러니 우리는 다리를 건너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끊임없이 달리는 다리에 편승하는 것이다.
다리가 달리지 않으면 누구도 다리 건너편에 도달할 수 없다.
내 말이 거짓말같지만
우리는 종종 다리에 편승하여 다리의 건너편으로 가고 있다.
다음 번에 다리를 건널 때는 그냥 다리를 건너지 마시고,
다리 건너편을 향하여 달리는 다리 위에서
다리의 달리기에 묻어가는 그 재미를 꼭 한번 느껴보시라.
다리는 사람들에게 그 재미를 주는게 다리의 행복이자 즐거움이다.

Photo by Kim Dong Won
2006년 11월 25일 서울 상암동 월드컵 공원에서

4 thoughts on “다리

  1. ^^
    세상의 모든 다리는 그 위를 건너는 모든 것들을 싣고
    하루종일 달리고 또 달린다.
    그게 다리의 숙명이다.

    캬하~~동원님~~ 너므 멋있으신 글입니다.
    무심코 지나는 다리에 깊은 의미.
    역쉬!….님의 감성은..훌륭하옵니다.
    ^^

    1. 예전에 제가 아는 누군가가
      다리에 다리가 있는 것은 우리나라밖에 없을 거라는 얘기를 했었죠.
      그 얘기가 생각나서 그런 말이 떠오르게 되었죠.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