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같은 은행잎이지만
공원의 벤치에 내려앉은 노란 은행잎은 휴식이 됩니다.
그건 눈도 마찬가지죠.
사람들 발길이 뜸한 어느 겨울날
산속 휴양림의 벤치에 내려앉은 눈도 휴식이 됩니다.
물론 그건 의자가 휴식의 자리이기 때문에 그런 거겠죠.
사실 따지고 들면
땅에 떨어진 은행잎도 맨땅에 엉덩이 깔고 휴식을 취하는거 아니겠어요.
그거야 뭐, 맨땅에 떨어진 눈도 마찬가지일 거구요.
그렇지만 맨땅에 떨어진 은행잎이나 맨땅을 덮고 있는 눈에서
휴식의 느낌을 읽은 경우는 거의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거보면 느낌이란 참 중요한 거 같습니다.
의자란 그곳에 앉는 모든 것에게 휴식의 느낌을 줍니다.
맨땅에 앉아도 휴식은 휴식인데
의자가 주는 그 휴식의 느낌이 많이 부족합니다.
그렇지만 힘들고 지쳤을 때
맨땅에 털썩 주저앉아 즐기는 휴식만큼 달콤한게 또 있을까 싶어요.
휴식의 편안함이야 사실 추운 날 바깥의 차디찬 의자에선 찾기 어려울 거예요.
편안함으로 따지자면 날씨 쌀쌀한 겨울에는
따뜻한 방구석에서 댓자로 퍼져 한잠 잘 때가 최고지요.
나이 들면 자꾸만 그 편안함을 쫓아가게 됩니다.
느낌보다 휴식의 편안함 쪽으로 기울게 되는 거지요.
그러고 보면 휴식의 자리마다
느낌과 편안함의 균형이 서로 다른 셈입니다.
어떤 자리는 느낌이 좋고, 어떤 자리는 편안함이 주된 분위기입니다.
사람은 처음엔 느낌으로 오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오래 같이 살다보면
느낌의 사이라기 보다는 편안한 사이가 되어갑니다.
편안한 사이가 되면 자꾸만 느낌이 지워집니다.
누군들 예외가 되겠나 싶어요.
아마도 가장 이상적인 경우는
그 편안함 속에서 느낌을 길어올리는 경우가 아닌가 싶어요.
뭐 제게도 그런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가장 편안한 사람에게서 편안함과 느낌을 모두 보게 되는 경우 말예요.
하지만 그게 그리 자주는 아니예요.
처음 만났을 때야 매일매일 느낌이 왔었지요.
가장 편안한 사람에게서 매일매일 느낌을 얻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거야 보통 경지가 아니겠지요.
내게 그런 경지는 아직까지는 그저 아득하기만 합니다.
요즘의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 걸까를 생각하곤 합니다.
불편하고 힘든 건 자꾸 꺼리게 되고, 달콤하고 편안한 쪽으로 기울어집니다.
젊을 때는 안 그랬지요.
그때는 느낌이 이끌면 지옥이라도 뛰어들 태세였으니까요.
그렇다고 느낌에 대한 욕망을 아주 버린 것은 아닙니다.
종종 그 느낌에 대한 향수에 시달리곤 하거든요.
그러다 보니 자꾸만 느낌과 편안함 사이를 왔다갔다 하며 방황을 합니다.
한마디로 따뜻한 방구석에 댓자로 누워 낮잠을 퍼질러 자다가
갑자기 얼어죽기 딱좋은 강원도 산골짜기의 눈덮인 벤치를 찾아가는 거지요.
그리곤 그 앞에서 덜덜거리면서도
그래도 느낌이 좋다고 한참이나 시간을 보내다 오는 꼴이예요.
이 나이에 이게 뭔 짓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한 자리에서 느낌과 편안함을 모두 구하지 못하는 나는
느낌의 자리와 편안함의 자리를 왔다갔다 하며 살고 있습니다.
7 thoughts on “느낌의 자리, 편안함의 자리”
전 느낌이 좋은 사람은 편안하기도 하던데.^^
일단 첫 느낌이 별로였던 사람은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거리를 두게 되거든요.
부부의 경우는 살아가면서 사람이 변하고 아니 생활이 먼저이기 때문에
느낌을 줄 시간은 생각지도 못할때가 많아서 느낌을 버리고
편안함에만 의존하게 되는것같아요.
그러다보면 다른곳에서 좋은느낌을 갈구하겠죠.ㅋㅋ
가끔 요즘 세상이 너무 좋다 이런 생각이 들어요.
젊은 애들, 블로그에 자기들 좋아하는 얘기랑 살아가는 얘기 올린거 보면 참 재미나거든요. 그냥 아무 상관없는 사람인데도 참 재미난데 그게 실제 생활이 재미나다기 보다 그렇게 올리고 들여다보는게 재미난 것 같아요. 또 그렇게 하니까 삶이 쌓여나가는 것 같기도 하구요. 사실 실제 생활이야, 아무리 젊다고 해도 뭐 그리 재미나겠어요. 생활이란게 다 그런거지요, 뭐. 아마도 재미나 괴로움은 다 순간일 거예요. 그런데 젊은 애들은 그 순간들을 하나하나 차곡차곡 쌓아가는데 우린 그런게 없어서 다 흘러가 버린 것 같아요. 많이 아쉬운 부분이예요. 그러다 보니 지금이라도 느낌받는대로 기록하고 싶은 욕심이 강한 것 같아요.
에구, 돈이나 좀 벌 생각이나 해야 하는데…
느낌의 자리에만 있는 사람들은 편안함의 자리를 부러워하고…
편안함의 자리에만 있는 사람들은 느낌의 자리를 힐끗힐끗 부러워하고…
나는 요즘 편안한 그대와 같이 다니면서 느낌도 많이 건지고 있는 듯. 지난 번 양수리 나갔을 때의 물결과 배도 그렇고, 그대가 올린 사진에서 느낌을 받은 순천만의 갈대 이야기도 그렇고, 어제 예술의 전당 갔을 때의 빛도 그렇고.
그럼 그대는 느낌과 편안함, 두 가지를 다 가졌네.
욕심쟁이 같으니라구.
느낌의 자리는 세상 여자들에게 좀 나누어 주셔.
왜 그러셩~ (저팔계 버전)^^
난 내가 편안하면 상대에게도 편안한 자리를 내주고
내가 느낌이 되면 느낌이 되는 자리를 내주는 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어.
어쩌면 마음에는 느낌도, 편안함도 다 갖고 있는데
어느 날은 느낌을, 어느 날은 편안함을 꺼내는 건 아닐까…
느낌이란 사실은 불편한데도
오히려 그걸 행복으로 느끼게 만들어주는 마취제 같은 것이지.
아주 안좋은 거야.
편안한게 좋은 거지.
근데 인생이란게 편안한게 다가 아니라는데 문제가 있는 거지.
인생, 그게 쉬운 듯 하면서도 쉽지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