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집에 붙박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 전 뉴스의 말미에 전하는 날씨 소식에
강원도에 대설주의보가 내릴지도 모른다는 얘기가 곁들여져 있었다.
일해야 하는데 하면서 마음을 눌러두려 했지만
눈소식이 이끈 자장 앞에서 자꾸만 그 마음이 흔들렸다.
12월 9일 아침, 슬그머니 그녀의 마음을 함께 흔들었다.
“강원도에 안갈래?”
그녀도 일이 있는데 하는 눈치였지만
눈앞에서 마음이 흔들리기는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우리는 아침을 먹고는 길을 나섰다.
차가 팔당을 지나 양평으로 향하고 있을 때,
양수리부터 길이 막혔다.
앞에서 사고가 난 것이었다.
멀리 한강의 잔물결 위로
구름을 뚫고 내려온 햇볕이 반짝반짝 부서지고 있었다.
서울 근방은 아무리 둘러보아도 눈올 날씨는 아니었다.
그녀가 은근한 걱정을 털어놓았다.
“강원도에 눈이 오고 있을까?”
내가 대답했다.
“강원도는 좀 달라.
서울떠나 두 시간쯤 강원도 쪽으로 달리면
그때부터 세상이 히끗히끗해지기 시작한다니까.”
보통은 홍천 정도부터 눈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눈이 내렸다 싶은 풍경은
인제에 도착해서야 볼 수 있었다.
인제의 산들은 죄다 눈을 뒤집어 쓰고 있었다.
백담사 쪽으로 들어갈까,
더 북쪽으로 갈까 망설이게 만드는 애매모호한 날씨였다.
그렇지만 인제를 지나면서
길옆으로 보는 풍경도 이제는 눈풍경이었다.
이 정도만으로도 눈에 대한 갈증은 충분히 해갈시킬 수 있었다.
난 진부령으로 가자고 했다.
진부령이 가장 북쪽에 있는 고개니까
그곳에 가장 눈이 많을 것 같았다.
눈은 쌓여있었지만 아울러 녹고 있었다.
나는 투덜거렸다.
“아니, 눈꽃펜션인데 왜 펜션만 있고 눈꽃은 없는 거야.”
그러나 얇게 지붕을 덮고 있는 눈을 보면
어떻게 색을 칠한들 저런 빛을 낼 수 있을까 싶었다.
진부령의 어느 창고 위에선
단지들이 모두 눈을 뒤집어쓰고
눈이 녹아내리는 초겨울의 푸근한 어느 하루를 즐기고 있었다.
진부령에서 발길을 돌려
다시 미시령으로 내려가다 일단 점심을 먹었다.
식당 바로 앞쪽의 산 위에서
구름이 갈라지면서 푸른 하늘이 나타난다.
사람들은 왜 그렇게 바다에서만 홍해의 기적을 찾는 거야.
흐렸다 개었다 하는 날이면
항상 하늘에 홍해의 기적이 있는데.
우린 미시령으로 갔다.
아래쪽은 눈이 녹고 있었지만
멀리 산꼭대기로는 온통 눈이 하얗다.
금방 한겹 뿌리고 지나간 것이 분명한 풍경이다.
산꼭대기 위쪽을 안개가 슬쩍 가리며 지나간다.
눈이 없을 때는 확연하게 보였을 안개가
오늘은 눈의 흰빛에 묻혀 버렸다.
눈밭으로 들어서자 차가 기우뚱한다.
내가 “야호, 신난다”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녀가 말했다.
“너는 남편으로선 꽝이야.
연인으로선 만점인데 말이야.
이런 데 들어서면 남편들은 위험하다고 걱정하는게 먼저야.”
그러거나 말거나 이미 눈에 마음을 뺏긴 나는 그저 좋기만 했다.
우리는 차를 아래쪽의 주차장에 세워두고
미시령 옛길을 따라 터덜터덜 걸어올라가기 시작했다.
눈이 그대로 덮여 있는 온통 하얀 길이었다.
그 길에서 눈사람을 만났다.
“야, 한쪽은 너처럼 털보다야.”
그녀가 한마디 했다.
조금 올라가자 이제 길에 사람이 다닌 흔적이 하나도 없었다.
매번 차를 몰고 오르던 길을
오늘은 발밑으로 눈을 하얗게 밟아가며 걸어서 오른다.
마치 처음 그 길을 가는 느낌이었다.
아마도 벌써 눈이 여러 번 내렸나 보다.
길옆엔 그동안 눈을 치우면서 생긴 눈덩이 위로
다시 눈이 덮여 올망졸망한 눈의 바위가 되고,
그 눈의 바위가 앞서거니 뒷서거니 흐르고 있었다.
내 걸음을 따라 그녀가 따라온다.
눈길에선 그녀가 먼저가거나 내가 먼저가도
항상 함께 가는 셈이다.
발길을 따라가다 나중에 돌아보면
둘이 어느새 나란히 오고 있는게 눈길이다.
마주보이는 산에서 나무들이 눈을 뒤집어 쓰고
그 무게로 나뭇가지들이 팔을 낮게 늘어뜨리고 있었다.
눈으로만 장식을 한 크리스마스 트리이다.
눈으로만 장식을 했어도 그 어느 트리보다 아름답다.
멀리 높은 산봉우리 하나가 보인다.
온통 하얗다.
온통 하야니 오늘은 저 산의 정상도 백두, 그러니까 흰머리이다.
눈오는 날엔 모든 산이 흰머리산이 된다.
미시령 정상까지 올라가진 않았다.
올라가서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속초를 보고 싶기도 했지만
중간쯤에서 발길을 돌렸다.
겨울엔 날이 금방 어두워져서 항상 조심해야 한다.
내려오니 하루 해가 산 위에 몸을 걸치고
여정을 마감하고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홍천의 화로구이 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지글지글 고기를 굽는 숯불의 따뜻함에
몸도, 마음도 함께 녹았다.
숯불은 볼 때는 주황색이었는데
사진으로 찍었더니 그 색은 안나오고
보라빛이 돌았다.
집에 돌아오니 밤 여덟 시였다.
둘이 포도주 한 잔 나누어 마시고 잤다.
17 thoughts on “겨울산은 모두 흰머리산을 꿈꾼다 – 미시령에 다녀오며”
흰눈이 곱게 쌓인 눈을보니 마음이 맑아지네요.
언제든 마음 가는데로 여행하는 낭만적인 생활이 멋집니다^^…
원래는 둘다 일해야 하는데,
일도 안풀리고 해서, 에라, 모르겠다하고 내튄거죠, 뭐.
^^
눈덮인 겨울산도 장관인듯하네요^^
미시령… 겨울에 보니.. 또다른 멋이 느껴져요^^.
맘먹으면 확 떠날 수 있는..배짱, 넘 부럽고, 카메라가 부럽군요^^.
^^
대신 다른 걸 많이 포기해야 하는 걸요.
오디오는 3만원짜리 스피커와 20만원주고 산 컴퓨터 사운드 카드로 해결하고, 텔레비젼은 컴퓨터 모니터와 겸용으로 시청하고, 핸드폰은 절대로 새 거는 안사고, 옷은 소매가 너덜너덜하도록 입고, 혼자 여행할 때는 바케트 빵으로 점심떼우고…
카메라가 그게 보통 돈을 먹는게 아니어서…
온 사방에 눈을 뒤집어쓴 산들이라니 아아 사진으로만 봐도 감탄사가 절로 나옵니다. 여기는 김해라 아직 눈이 한번도 안왔거든요 흑. 김동원님 덕분에 하얀 세상 마음껏 보고가요~ 감사드립니다 ^ㅡ^)//
수동 트랙백이라는 말이 너무 재미나요.
저만 그런게 아니라 트랙백이 안된다는 얘기가 심심찮게 나오던데 고쳐지지가 않네요.
고맙습니다. 수동 트랙백이라는 획기적인 방법으로 트랙백을 걸어주셔서.
산에 올라가서 찍고 싶었는데 그건 포기했죠. 산에 올라가면 내려 오기 싫을 것 같아서…
태터앤프렌즈포럼에 문의해보니 태터의 트랙백 추적 플러그인 때문이라고 하네요. 혹시 이를 사용하고 계신지요?
트랙백 스팸을 막으려고 그걸 사용중인데 그걸 꺼도 안되는 경우가 있더라구요. 그게 문제인 것 같다는 생각은 오래 전부터 했었는데 그 문제만은 아닌 것 같아요. 그걸 풀어놓으면 5분도 안되 트랙백 스팸이 날아들어요.
이유를 모르겠어요. 심지어 모든 플러그인을 다 끄고 해봤는데도 안될 때는 안되요.
되는 경우는 새로 깔면 되는 것 같아요.
업그레이드를 하고 며칠 동안은 되더라구요.
그래서 새로 덮어씌우고 한번 실험해볼까 생각 중이예요.
Photo Ring #32 Let it snow
http://prproject.tistory.com/entry/Photo-Ring-32-Let-it-snow
수동으로 걸고 갑니다 😉
화로색…신기하네요!! ^^
그게 원래는 주황색이예요.
원래 빛이 훨씬 따뜻하게 보이죠.
화이트밸런스라는 걸 잘 맞추어야 하는데 아직 그거 맞추는 것에 서툴러서…
저 화로가 참 신비하더라.
저 화로를 끼고 저녁을 먹고나면 피곤이 싹 풀려서 서울까지 한달음에 올 수 있는 것 같어. 미시령까지 길도 좋아져서 아주 가뿐하게 다녀올 수 있겠더라.
눈사진 찍으러 대관령으로 다녀오자.
아무래도 그 카메라를 넘봐야겠당~~~
어제 사진 괜찮게 찍었더라.
저번보다는 확실히 낫더군.
그 참 이 카메라는 감각있는 사람은 누구나 금방 사진을 잘찍게 해주는 거 같아. 사진을 카메라 기술 위주로 찍는 사람이 있고, 또 감각 위주로 찍는 사람이 있는 거 같아. 우리는 기술파가 아니라 감각파라고나 할까.
어제 미리 배워서 갔잖어.
그런데 안경이라 내 얼굴에 카메라를 밀착시키고 찍는게 힘들더라구.
아주 폼이 안나^^
사진찍을 때는 콘택트 렌즈를 껴.
겨울은 사람과 사람사이를 더 따뜻하게 감싸주는듯해서 매력적이에요^^
저 눈덮인 산에서 왜 따뜻함이 느껴지나몰라요.ㅋㅋ
그녀가 눈을 한움큼 집어서 혓바닥을 대보더니
“눈이 정말 차긴 차네”라고 하더라구요.
이번에는 발목 정도가 빠지는 곳이었는데
다음에는 무릎 정도가 빠지는 곳에 가서 그냥 퍽 자빠져 보려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