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집힌 세상 속에서

사람들이 온통 입만 열면 돈이다. 모두가 스스럼없이 ‘부자되세요’를 외치고 그것은 한순간의 유행 어구가 아니라 이 나라 최고의 덕담으로 자리를 굳힐 태세이다. 월드컵이나 올림픽처럼 일시적 흥분이 아니라 일년내내 사시사철 계속되고 있는 이 열풍의 힘은 어디에서 연유하는 것일까? 이 나라 사람들을 모두 돈을 향한 욕망으로 내모는 이 힘의 연원은 어디인 것일까?
사회주의의 종주국이 그 깃발을 내린 지 이미 오래이지만 나는 여전히 마르크스에게서 이 현상에 대한 가장 설득력있는 설명을 듣는다. 마르크스의 <파리 초고>를 읽어가다 보면 우리는 권력과 마찬가지로 돈이 “전복의 힘”, 즉 세상을 뒤집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돈을 숭배한다는 그의 얘기를 듣게 된다. 즉 돈은 모든 가치와 관계를 정반대로 뒤집을 수 있는 전복의 힘을 갖고 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돈은… 충성을 불충으로, 사랑을 미움으로, 미움을 사랑으로, 선을 악으로, 악을 선으로, 종을 주인으로, 주인을 종으로, 바보를 총명한 자로, 총명한 자를 바보로 뒤바꾼다.”
바로 그 전복의 힘이 사람들로 하여금 돈에 대한 욕망을 부추기고 있는 것이 아닐까. 사랑을 잃은 자는 꿈꿀 것이다. 상대방의 증오를 일거에 사랑으로 바꾸어 놓을 기적같은 전복을. 하지만 무엇으로? 이 시대는 그것의 답이 돈이라고 외친다. 그런 시대 속에선 사랑은 돈이 떨어지면 오래지 않아 미움으로 바뀐다. 불가능이 가능으로 바뀌고 가능이 불가능의 벽에 부딪치는 그 전복의 기로에서 바로 방향타를 쥐고 세상사를 뒤흔들고 있는 것이 돈이라고 마르크스는 일러주고 있다.
물론 조금만 생각하면 우리는 그 생각이 얼토당토함을 알 수 있다. 그냥 서점에서 시집 한권을 살 수 있는 작은 돈만 있으면 그것은 쉽게 깨달을 수 있다(한때는 시집 한권이 맥주 500cc 한잔 값에도 못미친 시절이 있었다. 술한잔 먹을 돈이 있는 사람이라면 시집 한권도 사볼 수 없을 정도로 가난한 사람은 아니었던 셈이었다). 시집을 사는 순간, 그 시집은 나의 것이 되고 말지만 그러나 그 속의 시는 나의 것이 되기를 완강하게 거부한다. 그런 점에서 돈으로 되지 않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데 구절이 난해한 시 한편을 읽는 것보다 더 효과적인 것은 없다.
돈으로 세상은 뒤집히고 있지만 그러나 한편으로 돈으로도 세상은 뒤집히지 않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점점 더 시를 멀리하고 있다는 소문이 자주 들려온다. 이 뒤집힌 세상에서 뒤집히지 않고 있는 그 작은 영역이 점점 더 축소되고 위협받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나는 이 뒤집힌 세상에서 또다른 전복, 그러니까 자본이 뒤집어 놓은 천한 삶의 세태를 야유와 풍자로 조롱하며 시와 함께 살아갈 수 있을까. 오늘도 세상의 전복을 꿈꾸는 그 두 가지의 힘, 바로 돈과 예술의 두 힘이 내 삶 속에서 힘겨루기를 계속하고 있다.
–서울 시립대 신문, 2002년 5월 30일자

2 thoughts on “뒤집힌 세상 속에서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