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눈송이로 세상에 날릴 때,
길바닥이나 논밭을 덮는 눈은 되지 않을 테야.
그렇지만 세상을 하얗게 덮는 데는 역시 길바닥이나 논밭 같은 곳이 최고지.
그런 곳을 넓게 덮어 하얗게 펼쳐놓아야 눈온 맛이 나거든.
또 그런 곳엔 나름대로 즐거움이 있기도 해.
길바닥에 내린 눈이라면 아마도 사람들이 밟고 지나가게 될거야.
그때면 사람들 무게를 고스란히 받아들여
가슴에 그들의 발자국 문양을 새겨주며 그들과 즐거운 한때를 보낼 수 있지.
이른바 발자국 놀이라고 하는 거야.
거의 눈밭에서만 즐길 수 있는 놀이지.
논밭에선 먹이를 찾아온 새들이 그 발자국 놀이의 주인이 될 거야.
하지만 난 길바닥이나 논밭으로 내리지 않겠어.
왠지 그런데 앉아 있으면 자세는 안정감이 있는데 그냥 퍼질러진 느낌이야.
그래서 난 바람을 요리조리 잘 타고 내려가
나뭇잎을 모두 떨어뜨린 앙상하고, 특히 가는 나뭇가지 위로 내려앉을 거야.
물론 균형잡기가 아주 어려울 거야.
하지만 줄타기를 하며 노는 사람도 있으니
나뭇가지에 자리를 잡는게 불가능한 일은 아니야.
착지가 좋지 않으면 뒤뚱거리다 떨어지기도 하겠지.
하지만 그러면 또다른 눈송이가 그 자리를 노리며 뒤를 이을 거야.
그리고 그렇게 한송이 두송이 내려앉다 보면
그 가는 나뭇가지의 윤곽을 따라 하얗게 눈이 쌓이고 말지.
놀라운 것은 그때부터야.
그렇게 눈송이가 가는 나뭇가지에 내려앉아 균형을 잡고 있으면
오들오들 떨면서 잔뜩 위축되어 있던 나뭇가지가
갑자기 허공으로 팔을 뻗으며 일제히 날아오르는 느낌이 든다는 거야.
나뭇가지가 허공을 향해 팔을 뻗고 비상의 자세를 취하면
그 순간 나뭇가지엔 팽팽하게 긴장이 들어가지.
수퍼맨을 생각해봐.
수퍼맨이 하늘을 날아오를 때도 곧게 뻗은 팔엔 팽팽한 긴장이 들어가 있잖아.
난 종종 줄타기의 즐거움이 바로 이런 게 아닌가 싶어.
발밑에 밟히는 바로 그 팽팽한 긴장감 말야.
길바닥이나 논밭에는 그 팽팽한 긴장감이 없어.
그런데 내려앉는다는 건 축 늘어진 줄 위에 내려앉는 것이나 진배없어.
내가 눈으로 날릴 때,
굳이 나뭇가지를 고집하는 것은
오들오들 떨던 나뭇가지가 내가 내려앉으면
추위를 훌훌 털어내고 팽팽하게 긴장을 세우기 때문이지.
줄을 일으켜 세우면서 그 긴장감을 즐길 수 있는 곳은
세상에 가느다란 나뭇가지 밖에 없어.
그래서 나는 세상에 눈으로 날릴 때 나뭇가지 위로 내려갈테야.
그곳에서 나뭇가지를 일으켜 허공으로 날아오르게 하고,
난 그 나뭇가지 위에서 팽팽한 긴장과 불안한 균형을 즐길 거야.
6 thoughts on “눈과 나뭇가지”
평범한 풍경도 동원님의 시각과 글로 풀이하면
오묘하고 신비로운 풍경이 되는군요—
금주 금.토.일 중에서
시간 맞추어서 뵈요^.^
금요일날 보려고 했더니 순일씨네가 시간이 잘 맞질 않아서 일요일로 맞추어 보려구요.
연락드릴께요.
옛날 어느 해 봄날 외토라진 고갯길을
시아버지와 며느리가 나귀 등에 짐을 싣고 사돈집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울창한 수목 밑 성황당이 자리잡은 산 마루턱에 이르렀을 때
시아버지는 나귀 등에 얹은 짚신꾸러미가 없어진 것을 발견하고
며느리보고 기다리라 하고 짚신을 찾으러 고개를 되돌아 왔으나 짚신은 없었다.
이상한 예감이든 시아버지는 며느리가 기다리는 곳으로 되돌아 왔으나 며느리는 없었다.
해 저문 골짜기를 향해 며느리를 불러 보았으나 며느리를 찾지 못하였다.
시아버지는 발길을 돌리려고 나귀 고삐를 잡아 당겼으나
이상하게도 나귀의 발굽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무리 당겨도 움직이자 않자 나귀를 두고 발길을 돌려 고갯길을 넘어왔다.
그 후 며느리는 산도적에게 혹은 맹수에게 잡혀 먹혔다는 말만 전해질 뿐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그 후 이 고개를 [며느리고개]라 불렀고
언제부터인가 혼사를 치르러가는 행렬이 이 고개 마루턱에 이르면
나귀의 발굽이 떨어지지 않거나 며느리가 갑자기 없어진다고 하여
혼사를 치를 때는 가깝더라도 이 고개를 넘지 않고 60리 길을 돌아 다녔다고 한다.
전 왜 이 전설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이 들까요?
며느리는 시집 살이가 너무 힘들고 지쳐 이때다하고 자유를 향해 도망쳤을 거 같다는.ㅋㅋ
그래도 나귀를 두고 간건 시아버지에 대한 죄송스런 마음이 아닐까하는..
만약 맹수나 산적이 나왔다면 나귀도 무사하진 않았을거같지않아요?^^
저는 며느리고개를 넘어가면 터널 반대쪽의 어디로 나올까가 궁금했는데 그냥 올라가다 말았어요.
근데 혹시 그렇다면 짚신 떨어뜨린 것도 며느리 아니었을까요.
^^
나뭇가지에 하얗게 얹힌 눈꽃들이 예쁩니다.
며느리고개라…음..
동원님..온가족모두
기쁨과 축복속에,
행복한 성탄절 보내시길 바람니다^^**
Merry Christmas ~~☆
^^
전설도 있는 고개라고 들었어요.
고개 밑으로 터널이 있어서 요즘은 고개로 안다니는데 눈이 온 관계로 고개로 갔지요.
즐거운 성탄 보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