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가끔 내가 나무와 새의 중간쯤에 서 있다는 생각이 들어.
인간이란게 그 둘의 절묘한 균형점 같다는 거지.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이유는 사실 단순해.
나무는 내내 한 자리에 꼼짝없이 서 있고,
새는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데 반하여,
우리들 사람은 걸어다니고 있기 때문이지 뭐.
사람들은 대체로 붙박혀 있는 나무의 인생보다는
하늘을 훨훨 나는 새를 부러워하지만
나는 그 둘이 모두 서로를 꿈으로 삼고 있지 않을까 싶어.
사실 나무를 살펴보면 가지를 모두 날개처럼 펼쳐들고 있으니
그 모습에서 이미 날고싶은 꿈을 상상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야.
하지만 새들에게 난다는 것은 자유가 아니라 삶의 다른 이름일 거야.
그건 사실 먹을 것을 찾아 달리는 숨가뿐 뜀박질과 크게 다르지 않을 거야.
새들에게 날개짓이란 자유의 비상이 아니라
살기 위해 한시도 멈출 수 없는 삶의 고역 같은 것이지.
그렇게 보면 새들에겐 나무가 꿈일 것 같아.
한자리에 뿌리박혀 있지만
땅으로부터 물을 길어 올려 목을 축이고,
하늘의 햇볕으로 양식을 빚어내는 나무의 삶이란게 얼마나 큰 축복으로 보이겠어.
그렇게 햇볕과 물로 양식을 빚어내는 나무의 일과를 광합성이라고 한다더군.
우리나 새나 먹는 것은 맛진데
싸는 것은 영 고약하기만 한데
나무는 싸는 것도 전혀 그렇지 않다고 들었어.
누가 나무의 응가는 산소라고 말해주더군.
그럼 산소같은 여자 이영애는 나무들에겐 자신들의 응가같은 여자야.
갑자기 나무가 부러워지지 않어.
그러니 나무의 꿈이 하늘의 새로 향할 때,
새의 꿈은 땅의 나무로 향하고 있을 거야.
나는 가끔 내가 그 두 꿈이 만나는 중간쯤에 서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해.
난 나무처럼 붙박혀 있지도 않고,
또 새처럼 끊임없이 날개짓을 해야 추락을 면하는 고달픈 운명도 아니야.
나는 걷다가 서서 나무처럼 한 자리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며 시간을 보낼 때도 있고,
또 새처럼 빠르진 못하지만 여기저기 내가 가고 싶은대로 돌아다니곤 해.
생각해보니 난 숲에 갔을 때는 천천히 걷고,
철새가 날아갈 때는 나무처럼 서서 새들을 올려다 보는 것 같아.
그러니 내 안에 나무와 새의 꿈이 모두 있어.
좀더 화려한 말로 치장을 하자면
난 나무와 새의 꿈이 만나 적당히 절충해낸 그들 꿈의 결정체야.
특히 하염없이 걷다가 아무 곳에서나 서서 하늘 한번 올려다보고,
또 하염없이 걷고 또 걷고 그럴 때는 더더욱 그렇지.
그래서 말인데 난 가끔 시간을 내서
그냥 아무 생각없이 터덜터덜 끝간데 없이 걸어볼테야.
마치 꿈을 꾸듯.
7 thoughts on “나무와 새”
김동원님은 정말 행복해보이세요.
사랑하는 그녀와 자신을 꼭 닮은 딸아이.
그리고 적당히 긴장을 주는 일과
좋아 미치시는 취미가 있으시니까요.^^
제가 보기엔 가을소리님이 제일로 행복해 보이는데…
사랑하는 남편과 안고만 있어도 세상을 모두 안은 듯한 고 귀여운 품안의 아들, 그리고 적당한 여유가 있으니까요.
전 그녀를 사랑하지만 자꾸 눈이 돌아가서 그게 큰 일이예요.
안과에 가보던지 해야지, 원.
동원님/ 안과에 가보시죠.
가을소리님/ 행복한 연말되시고 새로운 한 해도 가을소리님의 행복한 한 해가 되시길 바랄게요. 새해는 지금보다 더욱더 아름다워지세요^^ 이 부분이 가장 부럽답니다~
^^
역쉬!! 감동의 포스트 입니다.
이련이..진정한 나무가 되어야 겠는데..자꾸만 새가 되고파합니다.
날고싶은 욕심에..많이 배우고 감니다.
^^
전 그냥 하루 죈종일 걷다가 쉬다가 하면서 사진 찍으러 돌아다닐 때가 가장 행복한 것 같아요.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산소같은 이영애보다 더 예쁜 이영애가 있는데…
그 이영애 때문에 그 이영애가 은퇴하게 생겼다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