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북을 통해 본 세상 풍경 —이서화의 시 「바람의 집」

시인 이서화는 그의 시 「바람의 집」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독특한 창구를 보여준다. 그 창구는 사북이다. 강원도에 있는 지리적 공간으로서의 그 사북이 아니다. 시의 말미에 덧붙여놓은 주석에 따르면 사북은 “접었다 폈다 하는 부채의 아랫머리나 가위다리의 교차된 곳에 박아 돌쩌귀처럼 쓰이는 물건을 이르는 말”이다. 어떻게 그것을 통해 세상을 보는 것이 가능한 것일까. 그런 점에서 이 시는 놀랍다.
시는 “사북이라는 말, 접힌 것들이 조용히 쉬고 있는 곳”이라는 구절로 시작된다. 사북은 말하자면 부채나 가위의 휴식처인 셈이다. 사북은 원래는 부채와 가위에 있는 것이지만 시인이 이를 세상보는 창구로 삼자 사북이 나비로 옮겨간다. 시인은 나비에 대해 “접린의 힘을 가진 나비는 날갯짓 횟수가 정해져 있다고 한다 그 몸을 열어보면 다 풀어진 사북이 들어 있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접린의 힘”이란 날개를 접었다 펴는 힘을 가리킬 것이다. 나비는 수없이 날개를 접고 펴며 살아간다. 시인의 눈엔 이제 날개를 접고 펴는 나비의 몸이 곧 사북이다. 하도 펴고 접어서 결국 나비의 몸속에선 사북이 풀어지고 만다.
사북이 세상보는 창구가 되면 가위의 기원도 바뀐다. 시인은 그 기원을 이렇게 짐작하고 있다.

맨 처음 가위는 풀들이 겹치는 모양에서 본을 따왔을 것이고
가윗날 지나간 옷감은 그래서 펄럭일 줄 안다.
—이서화, 「바람의 집」(『모든시』, 2019년 겨울호) 부분

가위에 잘린 옷감이 펄럭이는 것은 바람 때문이 아니라 가위의 기원이 된 풀들의 시절을 기억해내기 때문이다. 가위는 옷감을 자를 때 그 풀들의 기억을 환기시킨다. 나무들은 풀들처럼 그렇게 “쉬이 맞물리지 않는”다. 시인은 그래서 “나무들에서 헐렁한 가위소리가 난다”고 한다. 여름에 접이식 부채를 펼쳐 더위를 식히는 것은 더위를 “종이로 찢”는 일이다. 이때 부채를 젖기만 하면 계속 바람이 이는 것은 바로 바람이 “모두 사북으로 몰려가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사북은 바람의 집이다.
시인은 계절도 사북으로 설명한다. 그 설명에 의하면 “계절에도 키가 있다면 여름에 모두 자랄 것이고 바람을 거둬들이는 즈음을 사북이라 부르면” 된다. 사북이 바람이 자고 일어나는 바람의 집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 시에서 가장 놀라운 부분은 사북이 소리로 전환이 되는 부분이다. 사북은 처음에는 부채와 가위의 아랫부분이나 가운데 위치하여 접히고 펴는 움직임의 축을 이루어주는 부분이었으나 이 사북이 나비의 몸으로 옮겨간다. 그리고는 부채가 일으키는 바람의 집이 되고 드디어는 태풍이 모두 지나간 계절에서도 그 자리를 찾기에 이른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사북은 눈이 내리는 날 “눈 밟는 소리에 몰려가”서 “사북사북” 눈 위를 걷는다. 어떤 사람들은 이건 좀 말이 안되지 않냐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인은 눈 위를 “걸어간 발자국은 양날의 흔적이다 흰 전지(全紙) 한 장을 가르며 지나가는 가윗날의 흔적”이라며 그 소리가 사북에서 왔음을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발자국이 왼발과 오른발의 두 개이기 때문에 “양날의 흔적”이라고 했을 것이다. 또 우리는 시인의 눈엔 눈내린 흰 세상이 가윗날에 잘리고 있는 종이로 보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눈길을 걷는다는 것은 우리의 오른발과 왼발을 가위의 양날로 삼아 하얀 종이를 자르며 지나가는 행위이다. 사북이라는 창을 통해 보면 세상이 그렇게 보인다.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온다. 그러면 봄바람이 분다. 시인에게 그 바람은 겨울에 눈 위에 찍혔던 “화선지 모양의 걸음 문양에 한동안/매운바람소리가 들어”가 쉬다가 날이 “따뜻해지면 그 발자국을 신고” 길을 떠나 우리에게 오는 것이다. 사북을 통해 세상을 보면 그렇게 봄의 바람도 남다르다. 아니면 여름날 우리들이 부치는 부채의 바람이 겨울에 누군가 눈밭에 남겨놓은 발자국에서 시작된 것인지도 모른다. 부채의 사람이 시원할 수밖에 없다. 눈밭의 발자국에 대한 기억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시는 전혀 다른 곳에서 바람의 기원을 찾아낸다. 놀라운 시의 세상이다.

부채의 사북
가위의 사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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