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의 도시를 쏘다니며 빛을 구경하다

보통 여행갔다 돌아올 때면 항상 바깥은 캄캄한 어둠이다.
그래서 돌아오는 길엔 항상 어둠이 나의 길동무이다.
그러나 차창에 계속 묻어오던 그 어둠도
서울에 들어서면 더 이상 나를 따라오지 못한다.
그냥 먼발치에 서서 시커멓게 나를 바라보며
오는 길에 내내 함께하며 잠시간의 정들었던 마음을 접고
나를 이 도시로 돌려보낸다.
서울은 한밤중에도 환한 빛의 도시라서
어둠이 나를 따라붙지 못한다.
12월 23일 밤늦은 시간에
빛들이 그 눈빛을 반짝반짝 빛내고 있는 서울의 여기저기를 쏘다녔다.

Photo by Kim Dong Won
2006년 12월 23일 올림픽 공원 남문 앞에서

자전거는 달린다.
모든 자전거는 페달의 힘으로 달리지만
때로 빛의 힘으로 달리는 자전거도 있다.
빛의 자전거는 바퀴살에 매달린 빛이 교대로 눈을 감았다 떴다 하면
그때마다 바퀴살이 빙글빙글 돌아간다.
물론 달리기만 할 뿐 어디로 가진 못한다.
한밤 내내 달려도 여전히 그 자리이다.
그러니 도시의 빛이 굴려가는 자전거에게
어디를 데려다 달라는 부탁은 금물이다.

Photo by Kim Dong Won
2006년 12월 23일 올림픽 공원 남문 앞에서 길 건너편의 건물을 올려다보며

높은 건물, 넓은 창에 사람의 윤곽이 비친다.
두 사람이다.
느낌으로는 부부로 와닿는다.
그들이 아래쪽을 내려다 보고 있다.
보통은 날이 어두워지면 빛은 달이나 별의 것이 되고,
그래서 대개 밤엔 그 빛이 있는 곳으로 시선을 돌려 하늘을 올려다 보게 되지만
도시에선 밤이 되면 빛들이 모조리 지상으로 낮게 머문다.
그래서 도시에선 밤에 하늘을 올려다보지 않고
지상을 내려다 보는게 더 볼 것이 많고 화려하다.
그럴 때마다 높은 곳에서 지상을 내려다보는 사람들은
마치 자신들이 별이 된 느낌이지 않을까.
전망이 트이는 높은 곳에 살고 싶은 욕망은
아마 그런데서 생기는 것인지도 모른다.

Photo by Kim Dong Won
2006년 12월 23일 올림픽 공원에서

도시의 밤에 겨울 은하수는 하늘 한가운데가 아니라
나무 줄기를 타고 흐른다.
하늘의 은하수는 저 혼자 깨어 밤하늘을 밝히지만
나무줄기를 타고 흐르는 도시의 은하수는
나무의 잠을 밤새 설치게 만든다고 들었다.
우리가 즐기는 도시의 은하수는 알고보면 나무의 불면이다.

Photo by Kim Dong Won
2006년 12월 23일 올림픽 공원 평화의 문에서

부디 2007년에는 모든 인류에게 평화가 있기를.

Photo by Kim Dong Won
2006년 12월 23일 서울 을지로 입구에서

별과 눈이 내리는 밤이다.
그것도 반짝반짝 내린다.

Photo by Kim Dong Won
2006년 12월 23일 서울 을지로 입구에서

눈이 반짝반짝 내리면
어둠 속에서 빛이 댕그렁 댕그렁 종을 울려
눈소식을 세상에 알린다.
아무리 울려도 그 소리는 누구의 귀에도 들리지 않는다.

Photo by Kim Dong Won
2006년 12월 23일 서울 을지로 입구에서

건물의 한 귀퉁이가
밤새도록 사람들의 행복한 새해를 빌고 있다.
그러니 밤새도록 빌어준 그 성의를 봐서라도
부디 새해에는 모두 행복하시라.

Photo by Kim Dong Won
2006년 12월 23일 서울 청계천에서

빛의 성채는 벽돌로 쌓은 성채와 달리
구멍이 숭숭 뚫려있다.
들어갈 순 없어도 사이사이로 시선은 얼마든지 들이밀 수 있다.
빛의 성채는 그러므로 몸이 드나드는 성이 아니라
시선이 드나드는 성이다.

Photo by Kim Dong Won
2006년 12월 23일 서울 청계천에서

나는 눈만 뭉칠 수 있는 것인지 알았는데
누군가가 빛을 둥글게 둥글게 뭉쳐놓았다.

Photo by Kim Dong Won
2006년 12월 23일 서울 청계천에서


원래 나무도 밤에는 잠을 청하지만
빛으로 빚어놓은 나무는 야행성이라 오히려 밤에 눈뜬다.
빛의 나무는 어둠을 먹고 살이 오르기 때문에
한밤에 오히려 그 줄기가 더 화려하고 풍성하다.
하지만 한낮엔 그저 앙상할 뿐이다.

Photo by Kim Dong Won
2006년 12월 23일 서울 청계천에서


빛의 성채는 너무 가까이 가지 않는 것이 좋다.
멀리선 그저 빛이지만
가까이 가면 그 골격과 핏줄이 눈에 선하게 잡히기 때문이다.
그 어지러운 선과 뼈대를 보고 나면
화려했던 빛의 유혹에 실망할지도 모른다.

Photo by Kim Dong Won
2006년 12월 23일 서울 시청 앞에서

당신이 오는 어둠 속의 걸음을 염려하여
청사초롱을 걸어놓던 시대는 가버렸다.
그렇다고 대문 앞에 아무 것도 걸어놓지 않는 것이 허전하다면
이제는 빛으로 무엇인가를 빚어서 걸어놓으면 된다.
빛으로는 눈도 빚을 수 있고, 달도, 별도, 또 나무도 빚어낼 수 있다.
기다리는 사람이 오는 길목에 밤새 환하게 밝혀 놓을 수 있다.
간혹 그의 걸음이 너무 늦어 화가 날 때는
신경질이 치밀어 오르는 그 순간에 맞추어
확 꺼버리는 것도 가능하다.
청사초롱은 문앞에 내걸고 거두어 들이기가 어렵지만
빛으로 빚은 눈과 별은 스위치 하나 올리고 내리는 것으로 얼마든지 켜고 끄며
그와 동시에 우리의 마음을 열었다 닫았다 할 수 있다.

4 thoughts on “한밤중의 도시를 쏘다니며 빛을 구경하다

  1. 이스트맨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며 소원성취하길 기원합니다^^
    내년에도 재미있고 감동적이며 아름다운 사진 많이 보여주세요~

    1. 올해는 얼굴을 세 번 보았네요.
      인사동에서 한 번, 홍대입구에서 두 번. 특히 인사동에서 보았을 때는 옻빛에 대한 얘기 때문에 검은 색에도 깊이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좋은 기억이 있어요.
      새해에도, 자유롭게 살면서 그 자유를 보는 것만으로도 답답한 우리들의 삶에 시원한 바람의 호흡이 될 수 있도록 살아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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