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냇물에서 놀 때면
나는 종종 물을 베고 누워
물결이 미는대로 둥둥 떠가는 부유의 시간을 즐기곤 했다.
어릴 때의 우리에겐 수영이란 말은 없었고, 대신 헤엄이란 말이 있었으며,
또 배영이란 말은 없었고, 송장헤엄이란 말이 있었다.
배영과 송장헤엄의 다른 점이라면
배영이 손을 들었다 놓았다 하면서
끊임없이 수영하는 사람이 죽지 않았다는 신호를 보내는 반면
송장헤엄은 팔을 물속에서 은밀하게 놀리며 절대로 물밖으로 내놓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그렇듯 송장헤엄을 칠 때면 우리는 시체놀이의 즐거움에 더욱 충실했다.
그러나 비록 그런 헤엄을 치고 놀긴 했지만
우리는 한번도 송장이나 시체라는 말의 음습한 분위기에 휘말린 적이 없었다.
그건 개헤엄을 치고 놀 때, 전혀 개가 된 듯한 느낌이 들지 않았던 것과 똑같았다.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수영은 운동이지만,
우리에게 그때의 헤엄은 운동이 아니라 놀이였다.
우리는 놀 때는 제 멋대로 즐겁게 놀았다.
그리고 가끔 나는 그 헤엄에서 속도를 제거해 버리곤 했다.
그 순간부터 나는 물을 베고 누워 물위로 둥둥 떠돈다.
물결이 미는 대로 이쪽으로, 때로는 저쪽으로 기울어지며 둥둥 떠내려 간다.
멀리 하늘 위로는 구름이 떠간다.
그럼 물은 하늘이 되고 나는 구름이 되었다.
멀리 아래쪽 바다 위로 배 한 척이 떠 있다.
숨을 몰아쉬며 바다를 헤쳐가다가
갑자기 속도를 버리고 물결을 따라 부유하기 시작한다.
그 배를 내려다 보고 있노라면
어릴 적 냇물의 내가 그 바다에 누워있었다.
바다는 하늘이 되고, 배는 구름이 되었다.
내가 딛고 선 높다란 언덕이 하늘이었고,
또 내가 서 있는 산꼭대기 암자의 앞마당이 하늘이었다.
그 하늘에서 오늘 나는 구름이었다.
나는 하늘을 둥둥 떠돌고 있었다.
일상은 놀이가 아니라서 끊임없이 헤엄쳐야 한다.
그것도 물살을 거슬러 헤엄쳐야 한다.
그렇게 헤엄치다 보면 자꾸 지친다.
속도를 버리고, 물결을 거슬러 오르는 수영의 몸짓을 버리고,
그냥 물을 베고 누워 둥둥 떠돌고 싶다.
바다로 가고 싶고,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산으로 가고 싶다.
가서 구름으로 둥둥 떠돌고 싶다.
9 thoughts on “부유”
저 바다에 누워~ 외로운 물새될까.. 왜 이 노래가 생각나냐…
부유하는 저 기분 아주 끝내줄 것 같군.
올 여름에는 보트에 누워서라도 해봐야지.
난 얼굴만 내놓고 몇시간이고 물에 둥둥 떠 있을 수 있지롱.
그런데 그러다 파도치면서 물이 덮치면 물을 꼴깍 다 먹는다.
가끔 유람선 타면 배가 바다 한가운데서 시동 끄고 둥둥 떠 있을 때가 많다.
배타면 다 좋은데 바다에 뛰어들고 싶은 충동 때문에 그게 좀 골치거리다.
저도 그렇게 물을 즐기며 둥둥 떠내려가고 싶었는데 실패하고 말았네요.^^
지금도 가끔 무릎이 아픈거보면 그때 그만두기는 잘한거같아요.
골다공증이라도 없나 검사하러 가야할듯.ㅋㅋ
새해 첫날이랑 잘 보내셨죠?^^
요 밑에 두분이 주고받은 댓글들 보면서 참 재밌었어요.^^
올려주신 사진보고 안면도 바다 구경하고 왔어요.
저도 자주 찾던 곳이라 옛생각이 많이 나더군요.
저희도 좀 다투고, 같이 한강변에 나가서 시간도 좀 보내고, 그리고 지금은 또 많이 좋아져서 서로 낄낄대며 지내고 있어요.
여행은 잘 다녀오셨지요^^
우리도 몇년전에 우리 딸이랑 셋이서 거제도의 위도랑 남쪽을
연말과 연시를 끼워서 다녀온 적이 있었는데 무척 사람들이 많더군요.
여행사를 통해서 다녀온 여행이었는데 어찌나 새벽 일찍 밥을 먹으라고 하는지… 그래도 그때도 참 좋았어요.
가족여행은 많이 하면 할수록 좋은 거 같아요.
신나게만 보내려고 맘먹었었는데 안면도 꽃지해수욕장에 도착하자마자 팬션을 못찾아서 티격태격.ㅡㅡ;;
남편이 그 팬션을 예약했는데 전화번호를 따오지 않았어요.
근데 왜 저한테 화를 내냐구요. 아..정말 살면 살수록 힘들어요.^^
결국 이정표를 찾아내 팬션에 짐을 풀어놓고 나왔는데
화가 풀리지 않는거에요. 왜 제게 화풀이했는지.
그런가운데서 바다보러 나가자는데 따라가긴했지만 바닷가에 나가고 싶은 마음이 안들더라구요.
전 차에 있겠다하고 아이들이랑 남편만 나가서 사진찍고하는데 그때 해가 지기 시작.^^
그 아름다움에 화가 풀리고 차밖으로 나가서 실컷 보고오는 남편에게 “카메라줘~찍어야겠어”했답니다. ㅋㅋ
ㅋㅋㅋ.
언제 그녀랑 백담사 갈 때가 생각나요.
그날 빨리 출발안한다고 제가 쭝얼쭝얼 계속 잔소리를 해서 그녀가 화가 머리 끝까지 난 적이 있었거든요.
너무 늦게 가면 사진도 제대로 찍지 못하고 돌아오게 되니까 늦게 출발하는게 화가 나서 툴툴거렸는데 그녀는 그 때문에 화가 난 거였죠. 운전해서 모시고 다니는 성의도 생각해주지 않으니까요. 그런데 강원도에 들어서서 눈풍경이 펼쳐지자 그녀가 그만 화가 난 것을 잠시 까먹을 뻔 했다고 하더라구요.
나중에 돌아와서 하는 얘기가 “야,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서 내가 너한테 그냥 말 걸뻔 했어. 그거 참느라고 애 먹었다” 라고 하더라구요.
그게 먼 일도 아니구, 작년 일이네요.
한번 그러고 나면 조심하게 되는 것 같아요.
다음에 갈 때 좀 늦어도 늦는대로 사진찍지 뭐, 하게 되는 거죠. 사진에 죽고 살 것도 아니고.
그때 정말로 눈발이 싹~~ 휘날리는데 싸운 것도 잊어버리고
넘 멋지다, 멋져~ 그런 말이 나오려는거예요. 참 내 원…
정말로 화가 다 풀리더라구요^^
정말 희한하게도 자연의 아름다움앞에선 화난것이 풀려버리는데 거부할수가 없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