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오늘 그녀를 만날 계획이라면
내가 추천하노니
종로쯤으로 약속 장소를 잡아보시라.
도심의 한가운데, 북적대는 사람들로 아주 혼잡한 곳을 고르고,
그곳으로 그녀를 불러내라.
굳이 딱 꼬집어 장소까지 집어주자면
종각역과 구멍을 뚫어 서로의 속을 훤히 들여다보며 붙어있는 반디앤루니스 서점이
만남을 약속하기에 아주 좋은 장소이다.
약속 시간이 일곱시라면 조금 더 일찍 그곳에 도착하는 것이 좋다.
보통은 약속을 하고 그 자리로 나가면
우리들은 항상 만날 사람을 찾아 그곳을 두리번거린다.
하지만 당신은 그러지 말라.
일단 머리 속에서 그녀와의 만남을 잊어버리라.
어차피 약속 장소가 그곳이라면
당신이 그녀와의 만남을 잊어버려도 그녀가 당신을 찾아낼 것이다.
당신은 그녀를 찾는대신
그곳을 지나쳐 가거나 그곳에 앉아있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훑어보라.
좀 놀랍지 않은가.
그 많은 사람들 가운데 당신이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
그-렇-게 사-람-들-이 많-은-데-도.
순간 당신은 외톨이가 된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혹시나 내가 아는 사람은 아닐까,
고개를 숙이고 무엇인가를 들여보고 있는 사람의 머리를 살짝 들어올려
정말 내가 모르는 사람일까 확인해보고 싶기까지 하다.
당신은 통로 쪽으로 고개를 돌려본다.
계단 위에서 한 여자가 웃고 있다.
여자의 시선은 당신을 향하고 있다.
내가 아는 여자인가… 마음이 앞뒤도 재지않고 그 여자를 반긴다.
그리고 여자의 얼굴에 초점을 맞추고 기억을 더듬어
인연의 작은 조각이라도 찾아보려는 순간,
당신으로 향하는가 싶었던 여자의 시선은
당신의 옆으로 튕겨나가 뒤쪽으로 지나친다.
돌아보면 어김없이 당신의 뒤쪽에 그녀의 남자가 서 있다.
그녀는 당신이 아는 여자가 아니다.
당신은 더욱 고립된다.
그러나 다급해지더라도
아무 여자나 붙들고 혹시, 저 모르시나요? 하고
애처롭게 물어보며 매달려선 안된다.
그러다간 당신은 십중팔구 경찰서 신세를 지거나
그 옆의 남자 친구에게 얻어맞는
큰 화를 입게 될 것이다.
어쩔 수가 없다.
그냥 그 고립의 운명에 매몰되어 묻히는 수밖에.
그렇게 고립되다 보면 이제 그곳은 무인도에 다름없다.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되는 도심의 한가운데서
당신은 무인도로 유폐된다.
분명히 그많은 사람들의 한가운데 서 있는데
아무도 모르는 익명의 존재,
그래서 분명히 있으면서도 흔적도 없이 깨끗이 지워져 있는 존재,
그것이 바로 도심 속의 당신이다.
사태가 아주 심각해지면 당신은 팔을 높이 쳐들고,
“나, 여기에 이렇게 있다니까요”하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를지도 모른다.
그 정도까지 가면 완전히 미친 사람 취급을 당하겠지만
그러나 걱정하지 마시라.
그때쯤 당신의 그녀가 나타난다.
그녀는 그냥 그녀가 아니라 ‘당신이 아는 그녀’이다.
오, 당신이 아는 그녀가 거기에 있다.
천만다행으로 여기시라.
이제 당신은 살았다.
순식간에 당신은 무인도로 유폐된 운명에서
종로의 많은 연인들 중 하나로 돌아온다.
부디 잊지 마시라.
당신을 구한 것은 당신이 아는 그녀이다.
4 thoughts on “당신이 아는 그녀”
저렇게 부드러운 색상은 어찌 연출하는지?
아..요즘은 DSLR갖고 싶어죽겠어요.
비자금이라도 챙겨서 질러버릴까.ㅋㅋ
뭘 비자금까지야.
사실 좋은 똑딱이 카메라보다 보급용 DSLR이 더 싸요.
니콘의 경우 D40이라는 보급용 기종이 있죠. 요기에 50mm f1.8 기본 렌즈를 끼우면 60만원 정도에 장만할 수 있을 거예요. 다만 줌렌즈로 찍다가 이 단렌즈로 찍으면 처음엔 무척 답답하다는…
캐논의 경우엔 좀 비싼데 400D가 가장 저렴하구요, 그거랑 50mm f1.8 렌즈 장만하면 100만원 정도 들어요.
좌우지간 DSLR은 똑딱이 카메라보다는 사진이 훨씬 더 잘 나와요.
그리고 저 위의 사진은 카메라가 좋아서 잘나온 점도 있지만 역시 많은 부분(거의 90퍼센트)을 뽀샵에 의존한 거예요.
간단하게 설명을 드리자면 원본 사진 그대로 쓴 것이 아니라
원본 사진에서 red 채널만 떼어내 레이어로 복사하고 그거 blur를 왕창 준 뒤에 레이어 모드를 Luminosity로 바꾸고, opacity 조정하여 적당히 뭉개고, 레이어 매스크 추가하여 눈과 입술만 선명하게 드러내고, 아래쪽 원본 사진 Desaturate하여 흑백으로 변환하고, 이어 맨 위쪽에 레이어 하나 더 넣어서 Photo filter 적용하여 주황색 필터로 적당하게 효과를 준 거예요. 간단하게 설명한다고 했는데…
가을소리님도 시간날 때마다 뽀샵 기술을 익혀 보심이…
글은 참 좋은데 사진은 좀 그렇다…
많은 사람들 중에 파뭍힌 그런 사진이어야 하는데…
나도 원래 그런 사진을 찍자고 했다우.
근데 시간이 없어서 그 사진을 찍지 못했다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