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지면
나는 이제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참새가 된다.
어제 춘천에 내려갔다가
소양댐에서 6시 30분에 시외버스 터미널로 가는 시내 버스에 올랐다.
그러나 버스가 소양2교를 건널 때
나는 강의 아래쪽으로 펼쳐진 풍경에 끌려
그 다음 정류장에서 곧바로 내리고 말았다.
저녁 어둠과 안개, 밤, 그리고 여기에 도시의 불빛이 가세하여 그 채색을 달리하면
그때부터 풍경은 햇볕에 숨길 것 없이 모든 것을 다 드러내야 하는 한낮과 달리
그림이 되기 시작한다.
섬의 이름은 상중도.
이 섬의 아래쪽으로 하중도가 있고
그곳에 중도유원지가 있다.
소양강과 모진강이 이곳에서 합쳐지며
모진강의 방향으로 물길을 거슬러 오르면
고구마섬과 고슴도치섬이 있다.
의암호의 섬들에 오늘 안개와 저녁이 함께 밀려들고 있다.
다리는 어디로 가고 다리의 다리만 남았다.
다행히 두 다리가 남아 외롭지 않다.
다리는 왼쪽으로는 섬을 두고, 오른쪽으로는 뭍을 두었다.
그러나 저녁이 밀려들면
섬과 뭍은 모두 한배의 자식임을 확인이라도 하는 양
모두 물에 뜬 섬의 형상이 된다.
다리 왼쪽의 섬엔
시간이 흐르면서 저녁의 어둠이 점점 짙어진다.
섬의 어둠은 아늑하다.
다리 오른쪽의 뭍은
시간이 흐르면서 빛을 밝힌다.
빛은 여름이면 강으로 발을 뻗고
한낮의 더위를 식힌다.
강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한 섬과 뭍처럼
다리도 물결을 사이에 두고
서로를 마주한채 밤을 보낸다.
두 다리의 소원함이 안스럽다면
밤엔 그 둘을 얼마든지 하나로 묶어줄 수 있다.
약간 상류쪽으로 다리품을 팔아 자리를 옮기면
당신은 다리의 하나된 밤을 주선한
사랑의 메신저가 된다.
그 사랑의 품에서 잠시 다리를 쉬고 있는 새 한마리의 휴식이 따뜻해 보였다.
강은 밤이 되면
어둠의 깊이를 더하여 더욱 깊어진다.
깊은 강은 더욱 조용하다.
물풀들이 그 깊은 고요 위에서 오늘의 잠을 청한다.
이제 제법 불빛이 완연하다.
서울을 멀찌감치 벗어났기 때문인지
춘천의 의암호에선
어둠만큼이나 밤의 불빛도 푸근하다.
물빛을 제대로 보려면
밤이 조금 깊어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러면 잠깐 강이 제 속의 빛깔을 보여준다.
그 빛은 온통 푸른빛이다.
그러면 섬도 강의 빛에 물든다.
혹 뭍이 밤마다 불을 켜드는 것은
사실은 강의 그 푸르고 시린 빛을 밝히려 함이 아니었을까.
의암호의 밤이 깊어가면서
강의 푸른빛도 함께 짙어진다.
보트의 형상을 빌린 백조를 타고
사랑을 속삭였을 한낮의 연인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그들이 묻혀간 한낮의 투명한 물빛이
지금쯤 푸르게 일렁이고 있지 않을까.
그 속에서 그들의 사랑 또한 푸르게 일렁이고 있지 않을까.
8 thoughts on “춘천 의암호의 깊고 푸른 밤”
저는 실제로도 멋있던 데요.
버스가 소양2교라는 다리를 건널 때가 저녁 7시쯤이었는데
강의 풍경을 보는 순간 다음 정류장에서 내릴 때까지 눈을 뗄 수가 없었죠.
물론 매일 이렇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여지껏 사진을 찍어보면 풍경이란 것이 빛과 안개 등등이 만들어내는 것인지라 똑같은 곳에 똑같은 시간에 다시 가보아도 그때 그 풍경이 나오진 않더군요.
한마디로 사진찍던 날 재수가 좋았다고나 할까요.
춘천은 좋은 사진 찍을 데가 너무 많아요.
공지천변, 소양댐, 청평사 등등.
500mm만 있으면 소양강 옆에 죽치고 않아 날아가는 새들 찍어도 끝내줄 것 같더군요.
헉!! 종종 지날때마다 무심하게 보는 곳인데…. 사진으로 찍어놓으니 저리도 멋지군여!
에그… 정말 좋네요.
역시 사진은 잔기술이 아니라 보는 눈입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감성에~감성~
김동원님~!
어떻게 무엇을 해야만 가능한지?
넘 부럽습니다~
건강하시고 늘 행복하십시요~^^*;;
블로그에 담아가시는 것은 얼마든지 하셔도 됩니다.
오늘 각 신문 소식을 보다가
어쩨 김동원님 블로그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아름다은 사진~감동의 글~
고운 마음까지 담아봅니다~
9월 초하루 너무 좋은 글을 보니
올해 후반기에는
좋은 날 만 있을 것 같습니다~^*
너무 너무 감명있게 읽었습니다
늘 행복하십시요~^*
마음의글 사진 너무 감사합니다~^*;;
혹 저 블로그에 좋은글 담아도 되는지 물어 보고 갑니다~
남은 시간 즐거우세요~^*
어제 풍경은 좀 독특하더군요.
보통 저녁이나 밤풍경은 카메라 테크닉에 의해 멋진 사진이 나오는 경우가 많은데
어제는 그냥 보이는 그대로였어요.
실제로 밤의 강이 푸른 경우는 어제 처음 보았어요.
좀 놀랍더군요.
노을이 고운 풍경만 아름다운 줄 알았더니 저녁이 내리는 풍경도 참 그윽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