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2월 17일, 강원도에 눈소식이 있었습니다.
그때 강원도 내촌의 도관리에도 눈이 내렸습니다.
마을이 하얗게 덮였지요.
어느 집 밭의 한쪽 가장자리를 따라 늘어선 밤나무에도 눈이 내렸고,
마을회관 앞에 쌓아놓은 통나무 위에도 눈이 내렸습니다.
눈이 내리자 밤나무는 하얀 밤나무가 되었고,
통나무도 하얀 통나무가 되었습니다.
겨울 한 철, 눈이 내리면 밤나무는 흰색을 얻습니다.
그건 통나무도 마찬가지구요.
그건 밤나무나 통나무에 흰색 페인트를 칠해서 얻는 흰색과는 좀 의미가 다릅니다.
흰색 페인트는 색깔은 눈과 비슷하지만
사실은 흰색만 남기고 밤나무와 통나무는 지워버립니다.
멀쩡하게 있는 밤나무와 통나무가 지워지는 거지요.
자기 존재가 지워진다는 것은 얼마나 큰 허망함인지요.
흰색 페인트는 밤나무와 통나무를 지워버리고 그 자리를 온통 독차지합니다.
나중에 세월에 밀려 페인트의 색이 벗겨질 때 그 자리가 흉한 것은
그 자리가 자신을 모두 지워야 했던 밤나무와 통나무의 상처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상처는 금방 회복이 되질 않습니다.
하지만 눈은 좀 달라요.
눈은 세상을 온통 흰색으로 뒤덮는 것 같지만
밤나무에 내리면 하얀 밤나무가 되고,
통나무에 몸을 눕히면 하얀 통나무가 되지요.
밤나무가 눈이 되고, 또 통나무가 눈이 되는게 아니라
사실은 눈이 밤나무가 되고, 또 눈이 통나무가 됩니다.
그게 눈오는 날의 가장 큰 매력이죠.
난 눈오는 날, 눈이 눈사람이 되는 건 보았어도,
사람이 눈이 되는 건 아직 본 적이 없습니다.
눈은 그렇게 세상을 온통 뒤덮어 제 세상을 만드는 것 같지만
세상의 어느 하나 건드리는 법이 없지요.
눈이 내리면 우리도 모두 눈이 되고 싶어집니다.
서로를 지우고 내 색으로 덧칠을 하려던 욕망을 버리고
비록 내 색으로 그대에게 가지만 있는 그대로의 그대가 되고 싶어집니다.
아마 그날 나의 색이 흰색이라면
그대에게 간 나는 흰색의 그대가 될 것이고,
나의 색이 붉은 색이라면 붉은 그대가 될 것 같군요.
눈오는 날 시간이 나면,
또 강원도 깊숙한 곳으로 달려가
하얀 나무가 되고 하얀 밭이 된 눈세상에서 한참 동안 머물다 오고 싶군요.
4 thoughts on “눈과 나무”
난 저 사진을 왜 찍나 했네^^
별 것 아닌 것에도 카메라를 들이미는 것 같은데 글이 받쳐주니 사진도 살고 글도 사네.
세상 모든 것들이 얘기를 간직한 셈이지.
그 얘기에 귀를 기울이는게 내 즐거움이지.
말많은 것들의 얘기보다 말하지 않는 것들의 얘기가 더 낫다네.
당신보다 말많은 사람을 본 적이 없는뎅~~
내 말이야 내 말이 아니라 사실은 말없는 것들의 말이지.
내 말은 눈의 말이자, 나무의 말이고, 또 꽃의 말이라네.
난 내 말은 별로 없다네. 목장 주인도 아닌데 내 말이 있간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