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Photo by Kim Dong Won
2006년 11월 29일 양수리에서

난 커피를 별로 좋아하질 않는다.
다른 뜻은 없고, 커피를 먹으면 그날밤 잠이 오질 않아서이다.
그렇다고 내가 커피 자체를 싫어하는 건 아니다.
나도 커피의 향과 맛은 좋아하는 편이다.
그녀는 커피를 즐겨 마시곤 했는데 요즘은 양을 줄였다.
커피를 마시면 위산이 과다하게 분비되어 속이 쓰리면서부터이다.
그러나 팔당의 한강변으로 나가거나
어디 가깝거나 먼 곳으로 나가 산을 올랐을 때면
그녀는 어김없이 커피를 한잔 마신다.
“이런 데선 커피를 한잔 마셔 주어야 한다니까.”
그리고 내게도 내민다.
“너도 한잔 마셔봐. 커피맛이 그만이야.”
그럼 나는 그녀의 커피에서 한모금만 얻어내
그냥 혀를 골고루 축일 정도로만 맛을 본다.
그 정도면 맛을 느끼기엔 충분하다.
그녀의 말대로 그때 마시는 커피는 그 맛이 남다르다.
왜 그런 거지?
다 같은 커피인데.
혹시 그녀는 가을에 양수리로 나갔을 때는
붉게, 혹은 노랗게 물든 단풍의 정취를
그 커피 속에 녹여서 마시는게 아닐까.
혹시 그녀는 설악산에 올랐을 때는
뺨을 훑고 가는 맑고 투명한 산꼭대기의 바람을
그 커피 속에 녹여서 마시는게 아닐까.
오호, 그녀의 커피는 그런 건가.
내가 사진을 찍거나 글을 엮어 그곳의 느낌을 담을 때,
그녀는 그곳의 느낌을 커피 속에 녹여 몸에 담는 것인가.
그녀의 커피 속엔 가을이, 봄이 녹아들고,
또 그녀의 커피 속엔 설악산이, 검단산이 녹아
결국은 그녀의 온몸으로 퍼지게 되는 건가.
알고 보면 그녀는 커피를 마시는게 아니고,
계절을, 산을, 강의 느낌을 녹여 그 느낌을 마시는 것인가.
생각해 보면 그럴 것도 같다.
우리들 누구에게나
사랑하는 사람과 눈을 맞추고 커피를 마시고 있을 때,
그 커피에 서로의 사랑이 녹아들었던 기억이 있지 않을까.
그녀는 이제 그 커피 속에
사랑뿐만이 아니라 무엇이든 녹여서 마실 수 있음을 알게 되었음이 분명하다.
그리고 그렇게 커피 속에 녹여마시는 계절과 강과 산이
아주 남다르다는 것도 잘 알고 있음이 분명하다.
사랑을 녹여마셨던 그 커피 속에 이제 그녀는 가을엔 고운 가을 단풍을,
겨울엔 하얗게 눈내린 풍경을,
그리고 또 월악산 송계계곡에선 맑고 투명한 물소리를 녹여 마신다.
그렇게 한 잔의 커피를 마셨을 때 그녀는,
이제 그냥 그녀가 아니라 가을이고, 겨울이고, 또 계곡의 물소리이다.
그녀가 커피를 마시는 것은
단순히 커피의 향과 맛으로 혀를 축이기 위함이 아니라
커피 속에 가을과 겨울, 산과 계곡, 바다와 강을 녹이고,
그리하여 계절이 되고, 또 물과 파도가 되기 위해서이다.

Photo by Kim Dong Won
2006년 11월 29일 양수리에서

2 thoughts on “커피

  1. 난 커피를 참 좋아했는데… 커피 못먹으니까 요즘 낙이 없어.
    에스프레소가 먹구멍을 타고 넘어갈 때 싸~한 그 맛이 정말 좋은데…
    나두 커미 마시고 싶다~
    내가 에스프레소 너무 좋아해서 예전에 에스프레소 집에서 끓여먹으라고
    당신이 거금들여서 예쁜 주전자도 사다준 것도 있는데…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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