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만큼 고개가 많은 곳이 있을까 싶다.
맨위부터 굵직한 것들만 꼽아보면,
진부령, 미시령, 한계령, 구룡령, 진고개, 대관령이 있다.
동해에 자주 가다 보니 안넘어 본 고개가 없다.
하지만 동해와 상관없이 강원도 내륙에 자리잡고 있는
운두령이나 곰배령과 같은 고개들까지 손에 꼽기 시작하면
정말이지 강원도는 고개와 고개로 이루어진 곳이라고 해도
그다지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1월 30일, 한계령과 구룡령 사이에 있으며,
현리와 양양을 연결해주는 조침령을 넘어 동해에 갔다 왔다.
이제 강원도 길은 왠만큼 섭렵했다 싶었는데
이번 길은 처음 가본 길이었다.
가는데는 여섯 시간이 걸렸다.
물론 내내 달린 것은 아니었다.
올 때는 내내 달렸다.
속초에서 미시령 터널로 빠져나와 인제를 거친 뒤 서울로 왔다.
서울까지 세 시간 걸렸다.
갑자기 강원도에 간 것은
눈이 온다는 날씨 예보 때문이었다.
일어나면 많은 눈이 쌓여있을 줄 알았는데
아침에 창문을 열어보니 하늘이 가는 비를 뿌리고 있었다.
망설이다 길을 나섰는데 거의 눈구경하긴 힘들 것 같았다.
아직 점심을 먹기엔 어중간한 시간에
홍천의 화로구이 돼지갈비 마을을 지나가게 되었다.
그 주변에서 시간보내다 그곳에서 점심 먹기로 하고
마을 뒤쪽으로 들어가 보았다.
이정표도 없는 길이었다.
작은 언덕길을 올라가니 아래쪽 논에 눈이 엷게 덮여있었고,
볏단을 쌓아놓은 노적가리도 머리에 눈을 이고 있었다.
좀더 들어가니 할아버지 한 분이
동네로 들어가는 어귀의 눈을 쓸고 계신다.
빗자루 끝에서 하얀 눈이 한움큼씩 좌우로 갈라서며
길을 열고 있었다.
눈온 날엔 할아버지가 눈을 쓸 때마다
길이 새롭게 열린다.
점심 먹고 홍천을 떠난 그녀와 나는 인제로 가다가
한번도 가보지 못한 샛길로 들어섰다.
418번 도로였으며, 표지판은 그 길이 상남으로 간다고 알려주고 있었다.
인가는 없고 군부대만 있는 길이었다.
상남을 지난 뒤엔 화천으로 방향을 틀었고,
그 다음엔 진동계곡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가다가 시냇가에서 잠시 멈추었다.
얼어붙은 시내 한가운데로 물의 노래가 졸졸졸 거리며 흐르고 있었다.
음악 감상이라도 하듯 우리는 한참 동안 물의 노래에 귀를 기울였다.
한소절 끝났다 싶으면
바람이 우웅 대며 일어나 거센 앵콜을 보냈다.
바람의 앵콜은 다 좋은데
앵콜만 했다하면 갑자기 시냇물 공연장에 냉기가 돌았다.
나무는 가을엔 한해내내 가지에 얹어두었던 나뭇잎을 모두 떨어뜨려 산으로 돌려보내고,
겨울엔 하얀 눈을 잠시 가지에 얹어두었다가 또 훌훌 털어내 산으로 돌려보낸다.
나뭇가지 위엔 눈이 없었지만, 그래서, 산엔 눈이 희끗희끗했다.
우리는 그런 산을 지나 동해로 갔다.
산을 지나면 또 산이고, 또 산을 지나도 또 산이다.
그녀가 말했다.
“마치 산을 한꺼풀 한꺼풀 벗기면서 동해로 가는 것 같아.”
오호, 그렇다.
고속도로나 넓은 국도를 타고 동해에 가면
길을 달려 동해에 가는 것이지만
강원도 내륙 깊숙한 곳의 꼬불꼬불한 길을 따라 동해에 가면
산을 한꺼풀 한꺼풀 벗기면서 동해로 가는 것이다.
그때의 동해는 강원도의 산이 꽁꽁 감추어둔 신비의 세계이다.
어디쯤이었을까.
길가에 상당히 넓은 갈대밭이 펼쳐져 있었다.
그곳에서 바람과 함께 조인트 공연을 펼치고 있는 갈대의 군무를 구경했다.
바람이 어찌나 거센지 길을 가는 동안
종종 낙엽들이 우르르 떼를 지어 차보다 먼저 길을 달려가곤 했다.
그녀가 말했다.
“낙엽들의 달리기 날인가. 낙엽들이 달릴 때도 발자국 소리가 나네.”
차는 거의 없었고,
길은 온통 낙엽과 우리의 차지였다.
임시 개통한 조침령 터널을 통하여 손쉽게 조침령을 빠져나갔다.
그래도 어찌나 높은 고개인지
터널 위쪽으로 보이는 옛길보다 터널 아래쪽으로 닦아놓은 새길이
더욱 아득하게 휘어지고 있었다.
저 길을 내려가면 곧 구룡령 동쪽의 미천골에 도착하게 될 것이다.
양양의 남대천에 도착했다.
하늘엔 달이 떠 있고,
달 아래 구름이 걸려 있었으며,
냇가에선 갈대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그녀가 낙산해수욕장에서 양양 바다를 카메라에 담는다.
그림자가 길어 그림자는 밀려온 파도에 살짝 젖었다.
속초로 올라가 외옹치항에서 저녁먹었다.
복어회가 제 철이라며 먹어보라고 했지만 너무 비싸서 먹지 못했다.
그냥 저렴하게 먹었는데 그녀가 생새우에 침을 삼켰다.
그건 한 마리에 천원.
다섯 마리 사 먹었다.
생새우 홍보 모델해도 되겠수.
나는 구워서 먹고, 그녀는 껍질 벗겨 생으로 먹었다.
처음에 다섯 마리 시켰다가, 나중에 맛있다고 다섯 마리 더 시켜 먹었다.
속초해수욕장 주변의 가로등.
갈매기 모양이다.
날진 않는다.
아니, 난다.
빛이 밤하늘 밝히며 날아가니까.
미시령 터널.
통행료는 소형차의 경우 2800원.
무지 길다.
그래도 빠져나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5분 정도.
터널로 들어가기 전,
설악산의 윤곽이 희끗히끗한 눈 때문에 웅장하게 다가선다.
마치 희말라야의 한가운데를 달리는 기분이었다.
속초에서 서울까지 걸린 시간은 3시간이었다.
11시쯤 집에 도착하여 씻고 잤다.
7 thoughts on “조침령을 넘어 양양에 가다”
저 새길을 보는순간 운전학원의 S자길이 생각나네요.ㅋㅋ
저런 길 달리면 스릴있으려나?^^
생새우로 먹는건 처음보는데 무지 맛있었나봐요. 표정이 넘 밝아요.^^
일단 달리질 못해요.
저렇게 휘어지는데 어떻게 달리겠어요.
이 날 꼬불꼬불 고개를 한 다섯 개는 넘어간 것 같아요.
거의 빙판길이었어요.
민간 차량 만난 것도 한 세 대 정도.
겨울이라 거의 설설 기면서 가게 되죠.
생새우를 먹을 수 있는 기간이 짧은 모양이예요.
저도 처음 먹어봤어요^^
엽기적인 그녀가 너무 즐거워 하는군^^
오랜만의 바다 여행이었어.
Go^o^o^o^o^o^o^o^o^o^o^o^o^o^o^o^d~
여행도 좋았지만 갔다와선 더 좋았지 않우? 흐흐흐
좀 특별한 여행이지…
여행을 다녀오면 배터리 만땅으로 충전되는 느낌이야.
아마도 2월이나 3월 중에 한번은 폭설이 내려주지 않을까…ㅎㅎ
사진을 훑어보니 지난해(2005)에는 12월초부터 눈이 많이 왔더라. 그 왜 남부 지방에 눈많이 와서 난리났던 해 말야. 올해는 눈이 너무 없다.
2006년도 2월에 눈이 많았는데 올해는 그 징조도 안보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