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전, 그러니까 9월 8일에 고향에 내려갔다 왔다.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의 벌초 때문이었다.
예전에는 산소까지 올라가는 오솔길이 세 곳이나 있었지만
지금은 그 길을 무성한 잡초들이 모두 뒤덮어 버렸다.
그렇게 하여 길을 자연으로 돌려주고
이제는 그 흔적마저 찾을 수 없게 된 것이 사실 이미 오래 전의 일이다.
때문에 매년 갈 때마다 산소까지 길을 마련하면서 가야 한다.
그런데 올해는 어찌된 일인지 거의 중간까지 누가 잡초를 잘라 길을 내놓았다.
그 때문에 수월하게 올라가고 내려올 수 있었다.
고향 마을에 들렀지만 만나는 사람의 8할은 처음보는 얼굴이었다.
그러나 아직은 친구들이 몇몇 살고 있어
두드리고 들여다볼 문이 있었다.
산소에서 내려다본 풍경.
구름이 너무 좋았다.
혼자 가던 벌초길을
요즘은 항상 아내와 같이 간다.
덕분에 아내가 내 모습을 찍었다.
할아버지, 할머니 살아계실 때 그 앞의 나는 언제나 응석받이였다.
부모님이 혼내면 나는 냉큼 달려가 할아버지, 할머니의 뒤로 숨었다.
올해도 산소의 풀을 베며
나는 어김없는 그 응석받이로 돌아갔다.
–할아버지, 할머니, 누구 누구가 저를 못살게 굴어요. 누구 누구 좀 혼내주세요.
할아버지, 할머니를 찾아 내려올 때마다
내가 누리는 가장 큰 재미가 그 고자질인 것 같다.
올해도 할아버지, 할머니께 일러바쳤더니
마음이 후련했다.
산소 주변으로 심어놓은 잣나무와 밤나무가 너무 무성해졌다.
아내가 그 그늘에 앉아 잠시 휴식을 취한다.
밑에서 올려보면 위쪽의 산이 머리에 파란 하늘을 이고 있다.
밑에서 보면 나무들의 높이도 더욱 확연하게 느껴진다.
종종 이렇게 벌초를 하는게
무슨 큰 차이가 있을까 싶지만
그러나 하고 나면 그 단정한 느낌은
차이가 어떤가를 확연하게 일러준다.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에 갈 때마다
또 하나 생각나는 것은 우리 딸아이의 말이다.
처음 딸아이를 데리고 고향을 내려가 산소를 찾았을 때
딸아이는 이렇게 말했다.
–아빠, 그럼 저기가 할아버지, 할머니 사시는 하늘나라야?
내려와서 쳐다보니 딸아이 말대로 올해도 그곳이 하늘나라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