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꼭대기에서 – 계룡산 연천봉과 관음봉

높은 산은 거의 예외없이
산꼭대기는 거대한 바위가 차지하고 있다.
원래부터 그런 것이었는지,
아님 사람들이 많이 찾다보니
멀리볼 수 있도록 나무를 잘라낸 것인지 그건 잘 모르겠다.
지금까지의 내 경험에 의하면
낮은 산은 정상에 올라도
나무가 키를 높이 세우고 시야를 가리는 경우가 가끔 있었다.
하지만 높은 산의 꼭대기는 거의 예외없이 거대한 바위의 차지였다.
정상에선 바람이 너무 거세,
나무도 그 바람을 모두 이겨내며 살아가기가 어려운 것인지도 모른다.
2월 10일날 찾았던 계룡산의 연천봉과 관음봉도 예외가 아니어서
그 정상엔 거대한 바위가 있었다.
특히 관음봉은 거대한 바위 하나로 뭉쳐있었고,
바람 또한 아주 거세
조심스럽게 몸을 가누어야 했다.
정상의 즐거움 중 하나는
그곳에선 세상이 멀리까지 아득하게 보인다는 것이다.
나도 그곳에서 내가 올라온 세상을,
또 내려갈 세상을 둘러보았다.

Photo by Kim Dong Won

연천봉.
갑사를 둘러보고 산길로 접어든 것이 오후 1시 경이었다.
그리고 연천봉이 200m 남았다는 표지를 본 것은 오후 3시경.
산길을 오르면서 계곡의 물소리와 나무를 기웃거리기 때문에 발걸음이 느리다.
연천봉까지의 마지막 200m를 올라가는 데는 10분 정도 걸렸다.
올라가기 전 올려다 보니
먼저 올라간 사람들이 보인다.
산에선 꼭대기에 먼저 오른 사람들은 부러움의 대상이 아니라
정상에 다 왔으니 당신도 어서 오라는 손짓이 된다.
그러면 그때부터 피곤한 다리에 다시 힘이 솟기 시작한다.
정상에 선 사람들은 자신들은 아는지 모르겠는데
암암리에 먼저 오른 것만으로도
아래쪽에서 올라오는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고 있는 셈이다.
정상이 눈앞에 있을 때는 더더욱 그렇다.
그러고 보면 먼저 정상에 오르는 것도 작은 수고이다.

Photo by Kim Dong Won

연천봉 정상에서 남쪽으로 내려다 본 풍경.
중간에 거쳐온 헬기 착륙장이 보인다.

Photo by Kim Dong Won

시선을 약간 더 남쪽으로 옮겨간다.
멀리 통신시설의 탑이 솟아 있는 부분이 천황봉이라고 한다.
그곳은 현재 출입 통제 구역.

Photo by Kim Dong Won

정상에선 시선을 한바퀴 빙그르르 돌려볼 수 있다.
그래서 시선을 서쪽으로 더 옮겨간다.
그러자 소나무가 앞을 가로막는다.
그래도 그 사이는 비어있다.
소나무와 소나무의 사이에서 산들이 멀리까지 뻗어나가고 있었다.

Photo by Kim Dong Won

연천봉에서 헬기착륙장까지 다시 내려오니
아래쪽에 있었던 산봉우리가
이내 고개를 쑥 뽑아들고 나를 내려다 보고 있다.

Photo by Kim Dong Won

연천봉에서 30분 정도 걸어
계룡산 봉우리 중 하나인 관음봉에 도착했다.
우리가 산을 오르기 시작한 동쪽으로 시선을 가져가 본다.
저기 아래쪽 어딘가에 우리의 시작이 있다.
시작은 보이지도 않을만큼 작다.
그런데 나는 여기 산꼭대기에 우뚝 서 있다.
요 맛에 산꼭대기에 오르나 보다.

Photo by Kim Dong Won

시선을 옆으로 약간 더 옮긴다.
그래도 여전히 동쪽이다.
산맥이 북쪽으로 걸쳐있으면 동쪽이 길어진다.

Photo by Kim Dong Won

봉우리에서 조금 내려서서 여전히 시선을 동쪽에 두었다.
삼불봉으로 가는 길이 내 시선을 끌고 간다.
풍경은 좋은데 길이 험하다고 했다.
다음에 가자고 마음 먹었다.

Photo by Kim Dong Won

이번에는 시선을 남으로 틀어본다.
오후의 서쪽 하늘은 태양의 차지이다.
태양이 차지하면 푸른 빛이 하얗게 벗겨져 버린다.
원래 색이 벗겨지면 흉하지만
태양이 하늘의 푸른 빛을 하얗게 벗겨내면 그때는 눈이 부시다.

Photo by Kim Dong Won


시선을 아예 서쪽으로 가져가자
하늘은 더욱 태양볕으로 가득하다.
흰빛으로 쏟아지는 태양은
계곡을 메운 나무들 사이로
따뜻한 봄기운을 흩뿌리고 있었다.

Photo by Kim Dong Won

다시 시선을 거두어 들인 뒤
동쪽과 남쪽의 사이로 두었더니
우리가 내려갈 동학사가
저만치 계곡의 품속에 아늑하게 잠겨있었다.
우리가 발걸음을 마감할 자리가
저만치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높은 곳에 오르니,
시작의 자리도 어림짐작이 되었고,
마감할 자리도 멀리 어렴풋이 내다 보였다.

4 thoughts on “산꼭대기에서 – 계룡산 연천봉과 관음봉

  1. 맨 마지막 사진 산자락 저 밑 한가운데에
    왼 작은 마을이 있나 하였지요.

    그런데 그것이 동학사란 사찰이군요.
    밑에서 두번째 사진은 첩첩산중이란
    표현이 생각납니다.

    한폭의 한국화를 감상하는
    느낌입니다.

    수고하신 발걸음으로 이렇게 집에 앉아서
    귀한 사진을 즐길 수 있는 기회주심을
    진심으로 이 밤에 감사드립니다.
    오늘 하루도 평안하시고 강건하세요.

    1. 지리산이나 설악산에 비하면 작은 산이어서 그다지 힘들지는 않았어요.
      계곡이 아주 좋아서 언제 계곡을 찍으려 다시 가려구요.
      내려갈 때 저장 장치 하나를 빼먹고 가는 바람에 보통 때 절반 정도밖에 못찍었지 뭐예요.
      오늘 삼각대 볼헤드도 하나 새로 주문했으니 다음에 더 좋은 사진을 건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 겨울산에 눈이 없으니 산의 자태를 다 볼 수 있어서 좋네…

    높은 곳에 오르니,
    시작의 자리도 어림짐작이 되었고,
    마감할 자리도 멀리 어렴풋이 내다 보였다…. 라는 표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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