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의 미래 — 손미의 시 「누구도 열 수 없는 병 속에서」

시인 손미는 「누구도 열 수 없는 병 속에서」라는 그의 시를 이렇게 시작한다.

이제 막 아가미가 생긴 개를 만났다
—손미, 「누구도 열 수 없는 병 속에서」 부분

아가미가 생긴 개라니? 언뜻 들으면 기괴하게 들리겠지만 시 속에서 이 상황은 우리들 인간에게까지 확대되어 있다. 시인이 “우리는 걸어 다니는 물고기”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기괴한 상황은 그러나 생각하기에 따라선 아주 자연스런 상황이 될 수도 있다. 이 시의 시점이 지금 현재가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진화되어 지금에 이르렀다. 고래는 육지 동물이었으나 진화되어 오늘은 바다에서 살게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시인은 진화가 자꾸 진행되면 어느 날 개가 아가미를 갖출 것이며, 일부 사람들도 아가미를 갖추어 마치 걸어다니는 물고기가 될지도 모른다고 말하고 있다. 시는 다만 이러한 시의 상황이 진화가 오래도록 진행된 아득히 먼 훗날의 정황이란 것을 친절하게 알려주고 있지 않을 뿐이다. 그 정황을 눈치채지 못하면 시는 기괴하기 이를데 없는 난해한 얘기로 바뀌고 만다.
시 속에는 진화의 이유도 설명이 되어 있다. 진화가 진행된 것은 시인에 따르면 “물 밖에선 그토록 숨이 막혔던” 때문이다. 지상은 답답하며 숨을 쉴 수가 없다. 시인은 이런 상황에선 시인이 살 수가 없으며, 결국 시인들은 아가미를 갖춘 걸어다니는 물고기라는 종으로 진화하여 ‘알’을 낳으며 종족을 번식하고, 그리하여 시인이란 종을 이어가게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그때가 되면 시인이란 종은 ‘파피루스’에 알을 낳게 되며 파피루스는 시인이 낳은 알을 잘 숨겨준다. “파피루스 한 그루가 내 알을 감추고 있다”는 구절이 그러한 추론을 가능하게 해준다. 아주 오래 전, 인간이 문자를 기록해두었던 식물이 파피루스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시인의 진화는 생존을 위하여 귀신같이 그 파피루스를 찾아가며 이루어지고 있다.
물론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지상을 시인들도 숨쉴 수 있는 세상으로 바꾸면 시인을 계속 우리와 같은 종으로 우리 곁에 둘 수 있다. 물론 현재로 봐서 그에 대한 전망은 절망적이다. 아이들을 수장한 부모들의 마음도 제대로 알아주지 못하는 세상은 시인들이 제대로 숨을 쉬기 어려운 세상임에 분명하다.
(2014년 8월 31일)
(인용한 시는 손미 시집, 『양파 공동체』, 민음사, 2013에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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