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 선유도의 추억

지난해 8월 9일, 나는 군산의 선유도에 갔었다.
집을 나선 것은 새벽 5시였다.
군산에 도착하여 항구에서 배를 타고 선유도에 도착한 것은 12시 30분.
나는 자전거를 빌려타고 섬을 이 구석 저 구석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물론 선유도의 모든 것을 다 돌아볼 순 없었다.
집으로 돌아가려면 4시에 배를 타야했기 때문이었다.
성수기였던 관계로 섬은 북적거린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사람들이 많았다.
집을 나설 때 새벽이라 지하철이 다니질 않아 택시를 타고 고속터미널까지 갔다. 택시비 1만5천원.
서울에서 군산까지의 고속버스비는 1만1천5백원.
중간에 고속도로 휴게실에서 빵과 음료로 점심을 떼웠다. 3천5백원.
군산항까지는 또 택시를 탔다. 8천원.
군산항에서 선유도까지 가는 카페리 아림1호의 요금은 1만7백원.
선유도에선 물을 두 개 사먹었다. 2천원.
선유도에서 나올 때 옥도 페리호를 탔다. 1등칸밖에 없어서 1만5천6백원.
군산에서 서울로 오는 고속버스는 1만1천5백원.
중간에 고속도로 휴게실에서 호두과자를 하나 샀다. 5천원.
집에 들어갈 때는 지하철을 탔다. 9백원.
집에 도착한 시간은 밤 11시였다.

Photo by Kim Dong Won

바다의 터미널.
보통 터미널엔 버스들이 우글우글 거리고 있지만
바다의 터미널엔 배가 들어오기 전까지
저 끝에서 손짓을 하듯
바다가 일렁이고 있다.

Photo by Kim Dong Won

배가 막 항구를 떠날 때쯤
머리맡에 나타났다 사라진 스텔스 전폭기.

Photo by Kim Dong Won

군산항은 보통 넓은 항구가 아니었다.
목포항에 갔을 때는 섬들이 방파제처럼 늘어서 있어
아늑하다는 인상을 받았는데
군산항은 너무 넓어 그냥 바다를 향하여
모든 것을 열어놓은 느낌이었다.
등대를 저 멀리 밀어내며 배는 그 넓은 항구를 빠져나갔다.

Photo by Kim Dong Won

배가
바다를 밀어내자
바다는 한쪽 낯빛을 하얗게 바꾸었다.

Photo by Kim Dong Won

바다가 일렁인다는 것을 제대로 알려면
작은 몸집으로 그 위에 가볍게 무게를 실어보아야 한다.
몸집이 크면 바다를 힘겹게 헤치고 가야 하지만
몸집을 줄이면 바다의 일렁임을 타고 앞을 나갈 수 있다.

Photo by Kim Dong Won

섬이다, 섬!
나보다 구름이 더 반가웠던 것일까.
구름이 섬으로 우르르 몰려가고 있었다.

Photo by Kim Dong Won

선유도.
섬 뿐만 아니라 구름도 포즈를 취해 주었다.

Photo by Kim Dong Won

선유도엔 다리가 두 개 있다.
장자교에서 내려보면 이런 풍경을 볼 수 있다.
두 개의 다리가 세 개의 섬을 이어주고 있다.

Photo by Kim Dong Won

물이 빠져나가면
뻘에 다리가 빠진다.
그러면 배는 꼼짝없이 그 자리를 지켜야 한다.
아무리 한눈을 팔려해도
배의 삶은 바다의 것이다.
사랑할 때 내가 그녀에게 주는 자유도 이와 같다.
나는 바다가 되어 그녀에게 유영의 자유를 허용하지만
내가 자리를 비울 때면
그녀의 발목을 뻘밭에 묶어둔다.
동해와 달리 서해의 바다에서 보는 사랑은 그래서 찐득찐득하다.

Photo by Kim Dong Won

선유도에 있는 두 개의 다리 중 하나인 선유대교에 올라서면
이런 풍경을 구경할 수 있다.
선유도의 두 다리는 모두가 하나같이 매우 높아
아래쪽의 바다가 아득하게 내려다 보인다.

Photo by Kim Dong Won

사실 섬은 가까이서 보면
전혀 흔들림이 없어 견고한 뭍의 자태를 유지한다.
어디에서도 불안한 구석이 없다.

Photo by Kim Dong Won

마술은 마술가와 적정 거리를 유지해야 그 신비를 즐길 수 있다.
마술가와의 거리가 너무 가까우면 그의 손놀림이 보이며
그의 손놀림이 보이면 마술의 신비는 싱거워지고 만다.
섬도 마찬가지이다.
섬을 제대로 즐기려면 섬과의 거리를 적절하게 유지해야 한다.
그리하여 섬으로부터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떨어지는 순간
마치 마술처럼
섬은 바다 위로 둥실 떠오른다.

Photo by Kim Dong Won

나는 뱃전에서 선유도여, 안녕이라고 말했다.
그 짧은 작별 인사의 여운은 한뼘도 되지 않았다.
배는 매일 서너 번은 선유도를 들락거리면서도
떠나는 작별의 여운을 하얀 포말로 길게 남기며
섬을 뒤로 하고 있었다.

Photo by Kim Dong Won

파도 위에 그림자를 눕히다.

Photo by Kim Dong Won

들어갈 때 타고 갔던 아림 카페리호가
이번에는 섬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나올 때 탄 배는 이보다 작은 배였지만
표가 매진되어 1등실의 비싼 표를 사야했다.
사진을 찍느라 내내 바깥의 바람과 동행했다.
내 자리는 내내 비어있었다.

Photo by Kim Dong Won

군산항의 풍력 발전기.
아무래도 바람 속에 전기가 있나보다.
배위에서 바람을 맞을 때마다 짜릿짜릿한 느낌이었다.
그러니 바람이 불 때도 감전에 조심할 일이다.
바람에 감전된 탓인지
찌르르한 표정으로 부등켜 안은 남녀가 정말 많았다.

20 thoughts on “군산 선유도의 추억

    1. 요기는 가기도 편해요.
      숙박시설도 많고.
      바다와 함께 산도 있어요.
      섬이 3개인데 다리로 이어져 있어서 돌아다니며 구경하는 맛도 좋구요.
      좋은 여행되시길.

  1. 가깝게 있으면서도 한번도 가지 못한 곳…
    언젠가 가보고 싶었는데…
    조만간 군산에서 다리로 연결한다죠. 그러면 선유도는 더이상 선유도일 수 없습니다. 안타깝습니다. ㅠ.ㅠ

    군산이 개발되면 좋아할 사람도 있겠지만… 흔적조차 없어지는 기억의 저편으로 넘어갈 어떤 것들을 어떻게 그리워해야 할지…

    아무래도… 그런 게 고향이란 것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잘 지내시죠?

    1. 연말이라 한번 모이지 않을까 싶은데… 아직은 별 움직임이 없네요.

      아내랑 합쳤으니 좋은 시절 보내고 있으리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선유도 가던 이 시절이 가장 좋던 시절 같습니다. 한달에 세 번은 어딘가를 갔던 것 같아요. 그것도 혼자서… 물론 나머지는 뼈빠지게 알해야 했던 시절이었지만요.

      연말에 모임있으면 얼굴봐요. 요즘은 다들 바쁜 것 같습니다. 그래도 올해 한번은 얼굴본 것이 다행이라 여겨지기도 합니다.

      좋은 시간 보내시길요.

    1. 바닷가에서 사진찍고 있는데 섬의 아주머니들이
      그거 우리 집 배인데 어디가 그렇게 예뻐서 찍느냐고
      물어봤던 기억이 납니다.
      둥글게 생긴 산이 하나 있던데
      언제 가서 그 산에 한번 올라가 보고 싶어요.
      블로그 봤더니 그 쪽에 사시는 분인가 보네요.
      이렇게 만나서 반갑습니다.

    2. 아, 그러신 거군요.
      저는 전주, 군산 모두 들러보진 못했어요. 어디를 가다 슬쩍 스쳐 지나간 것이 전부… 전주는 김제의 금산사갈 때 지나쳐 간 것 같아요.

    1. 배로 가죠.
      군산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택시타면 5~10분 거리에 선유도가는 항이 있어요.
      그냥 걸어가도 되구요.
      배로 한시간 정도 갔던 것 같습니다.

  2. 안녕하세요^^.
    우연히 웹서핑을 하다 발견했네요. 글도 넘 맘에 들고 사진도 넘 좋아서 링크걸었는데,
    실례가 안될런지요. 사진이 넘 깨끗해서요. ㅠㅜ. 실례가 되었다면 연락주시면 바로 지울게요. 선유도 좋은 줄은 알지만 새삼 님의 글을 보고 다시 느끼게 되네요. 그럼 행복하시고 건강하세요. ^^

  3. 기억력이 참 좋으신가봐요? 그때 들었던 비용을 일일이 기억하시다니. 저라면 대충밖엔.^^ 아님 가계부를 쓰시는지?^^
    여기선 군산이 가까운데도 선유도엔 한번도 못가봤어요.
    장항에 잠깐 들렀던 기억밖엔.^^

    1. 가계부는 아니고 여행을 갔다 오면 다 기록을 해두죠.
      그날 저녁에 기차표나 버스표를 주머니에서 꺼내서 일일이 데이터베이스에 기록을 합니다.
      사실 위에서 하나 빼먹은게 있어요.
      자전거 빌리는데 돈이 들었는데 그건 영수증이 없어서 그냥 지나쳤어요. 지금도 잘 기억이 안나요.
      군산이나 통영 모두 서울에선 상당히 멀더군요.
      올해는 가장 멀리간게 충청도 괴산인 것 같습니다.
      지난해 한달에 서너 차례 여기저기 떠돌던 시절이 그리워요.
      광주(여기 사시는 것 맞죠?)에는 딱 한번 갔었는데
      그때는 그냥 일반 필름 카메라를 빌려갖고 갔었죠.
      나의 그녀와 함께 간 여행이었답니다.
      그곳에서 자고 지리산으로 갔던 것 같아요.

    2. 저는 가을소리님의 블로그 어디에선가 광주라는 지명을 보고 그곳에 사시는 분인가 생각을 했었는데 익산이셨군요.
      군산갈 때 버스가 익산을 거쳐 군산으로 가더군요.
      하긴 가까운데 살면 가까운 곳은 못가보고 먼 곳을 구경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저도 영월에서 20여년 살았지만 영월의 고씨굴을 가본 것은 서울로 이사오고 난 뒤였으니까요.
      그나저나 그렇게 바다 가까이 사시다니… 부럽부럽.

  4. 숫자가 주는 삭막함이 가끔은 도움이 될 때가 있어요. 사진을 볼땐 그저 ‘좋구나’하는 혼자만의 즐거움이었는데 시간과 비용을 알고나니 님의 사진에 대한 열정을 함께 느끼겠네요(사진에 대해서 아는 것이 너무 없어서 …)
    기회가 되면 꼭 선유도에 가고 싶어지네요.. 그리고 여긴
    경남 통영이예요. ….

    1. 경남 통영이면 외도가 있고 거제도, 해금강, 그리고 남해금산이 있는 곳이 아닌가요.
      몇년 전에 2박3일 동안 남해를 여행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외도도 구경하고 금산의 보리암에도 올랐죠.
      카메라가 지금처럼 좋은게 아니어서 사진은 별로 건지질 못했어요.
      그때 바다에서 검은 연기를 길게 뿜어올리며 멸치를 찌던 먼발치의 배가 생각나는 군요.
      남해 금산에 다시 가보고 싶어요.
      그 산에서 내려다보던 어촌 마을은 모든 일정을 팽개치고 그리로 가고 싶도록 만들더군요.
      50만원짜리 공짜 여행권이 생겨서 가족과 함께 떠난 여행이라 그럴 수가 없었죠.
      그날 새벽에 보았던 금산 보리암에서의 일출은 잊을 수가 없어요.
      이성복의 <남해금산>이 저절로 떠올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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