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나에겐 2001년초까지 카메라가 없었다.
그래서 아이랑 놀러갈 때면 항상 1회용 카메라를 사서 들고 다녔다.
아니면 아내의 친구 영옥이에게서 카메라를 빌려갔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별로 카메라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그것은 글에 대한 나의 오만한 자신감 때문이었다.
카메라로 찍는 대신 글로 엮어갖고 오면 되지 뭐.
그래서 나는 제주의 바닷가에서 남들이 열심히 카메라의 셔터를 누를 때면
노트를 꺼내 파도와 바다의 얘기를 낱낱이 기록하곤 했다.
그때는 수평선 너머로 해가 질 때면 노을도 내게 말을 걸었다.
바닷가의 깨알같은 모래밭에선 한 자리에 쭈구리고 앉아
모래알들의 얘기 하나하나에 귀를 기울이고 그것을 노트에 새겼다.
그러나 그 버릇은 오래가질 못했다.
아무래도 그 습관을 버리게 된 것은 먹고 사는 일상의 힘겨움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어쨌거나 그러다 2001년에 난생처음으로 카메라를 구입했다.
코닥에서 나온 DC4800이란 이름의 디지털 카메라였다.
그건 1년 동안 디카, 디카 노래를 부르며
아내를 괴롭힌 연후에 얻어진 매우 오랜 투정의 산물이었다.
아내는 그 카메라에 대해 매우 쪽팔려했다.
그걸 사라고 내게 200만원이라는 거금을 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사람들이 그걸 일회용 카메라로 착각할 정도로 볼품이 없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내가 사진을 찍을 때면 아내는 멀찌감치 떨어져 있곤 했다.
물론 나는 그 카메라로 엄청나게 많은 사진을 찍었다.
아이를 데리고 가족 여행을 떠난 게 몇 차례 있었는데
2001년 12월 30일부터 2002년 1월 1일까지의 3일 동안
우리는 가족이 모두 함께 여행 중이었다.
그 3일중 둘째날인 12월 31일에 우리는 남해금산과 남해 바다에 있었다.
그때의 사진은 옛날 카메라가 남겨놓은 것들이다.
그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가장 아쉬운 것은 카메라이다.
지금처럼 좋은 카메라가 있었다면 당시에 정말 좋은 사진을 남길 수 있었을 텐데…
그러고 보니 지난해 새로 카메라를 장만한 뒤로 많은 곳을 다니긴 했지만
제주도를 제외하곤 남해엔 가보지 못한 것 같다.
다시 남해를 한바퀴 돌고 싶다.
완도와 거제도, 여수, 부산 등등의 옛추억이 서린 곳들이 그립다.
남해금산의 보리암에서 바라본 섬의 바다.
이성복은 그의 시 <남해 금산>에서
“한 여자 돌 속에 묻혀 있었네
그 여자 사랑에 나도 돌 속에 들어갔네”
라고 노래한다.
“어느 여름 비 많이” 오던 날
“돌 속”의 그녀는 울면서 떠나가 버린다.
남해 금산은 그녀를 떠나보낸 시인이 홀로 앉아있던 곳이다.
금산에는 정말 그녀가 있었음직한 바위들이 많았다.
바위를 떠난 그녀는 어디로 갔을까.
하루 종일 바위가 시선을 떼지 않는 푸른 남해 바다엔
섬들이 여기저기 떠 있었다.
기억은 흐릿한데 거제도로 들어가는 다리인 듯 싶다.
이 다리 옆의 식당에서 아침을 먹었다.
밤에 숙소를 빠져나가 아이랑, 아내랑 셋이서
거제도의 밤거리를 쏘다니던 기억이 새롭다.
아마 그날밤 아이스크림을 사먹었었지.
아마도 저 멀리 보이는 산에 올랐을 때
눈에 잡히는 풍경이 가장 좋을 듯 싶다.
다시 내려가면 동네의 뒷편으로 있는 저러한 산에 오르고 싶다.
남해 바다의 풍경.
멀리 배위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른다.
누군가 멸치를 잡자마자 배위에서 찌는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해가 뜰 때는 산에 있었고,
해가 질 때는 바다에 있었다.
때로 기억을 더듬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그날의 기억도 그 중의 하나이다.
9 thoughts on “남해 금산과 남해 바다”
지금은 저 사진속의 다리 이름에 (구)라는 명칭이 붙어요. 그 옆에 새 다리가 생겼거든요. 그런데 한려수도를 일주하실려면
시간이 제법 오래 걸리겠는걸요.?
굉장히 다리가 크고 좋아보였는데…
새로운 다리를 놓았다니 사람들이 무척 많이 찾는가 보네요.
저는 지금 하고 있는 굵직한 일이 하나있는데 아무래도 다음 달 중순경에는 끝나지 않을까 싶어요.
그러고 나면 어디든 멀리 3, 4일 정도 바람처럼 떠나려구요.
옛날과 달리 요즘은 하루 2천장 정도의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강력한 장비 덕택에 어디를 가도 걱정이 없죠.
카메라 가방 하나만 둘러메면 15일은 계속 하루에 2천장씩 사진을 찍으며 떠돌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 같아요.
사실 하루에 찍어봤자 천장 정도에 불과하지만요.
저로서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을 하시나 봐요. 하루에
사진 천장을 찍다니…(혹시 kbs2tv ‘인간극장’과 관련된 일을
하시나요? 자막에서 같은 이름을 본 것 같아서요)
저도 그 이름을 자주 봅니다만
완전히 다른 사람입니다.
사진은 본업이 아니구 그냥 좋아하고 있습니다.
장비가 디지털이다 보니 아무래도 많이 찍게 됩니다.
하루에 1000~1500장 가량 찍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참가하는 체육대회 같은 행사 때 그 정도 찍죠.
제 본업은 문학평론입니다.
그래서 시인과 작가들을 좋아하죠.
열림원에서 나오는 <문학판>이란 잡지의 가을호에 제 글이 한 편 실려있습니다.
어쩐지..너무 글을 잘 쓰셔서 ‘사진도 잘 찍고 거기다 글까지
잘 쓰는 사람’이란 생각을 했어요. 무척 부지런하신 분일 것 같네요. 둘다 보통 사람은 하지 않는 일이니까요…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움직이고 느껴야 하는 일들이라서…
사진은 재미나긴 한데 돈이 너무 많이 들어요.
지난해 처음으로 고급 카메라를 장만했는데 사진이 곧바로 달라지더라구요. 그것도 별로 비싸지도 않은 중급 렌즈를 끼웠는데 그랬죠.
좋은 렌즈 끼우면 정말 사진이 원하는 대로 나오는 것 같아요.
렌즈값이 워낙 비싸다 보니 마음대로 살 수도 없고.
지금은 85mm 1.4렌즈나 12-24mm 광각 렌즈를 추가로 장만하고 싶은데 워낙 비싸서 그냥 꾹 참고 있어요.
현재 갖고 있는 렌즈만 해도 4개나 되죠. 단렌즈 2개에 줌렌즈 2개.
그것보면 인간의 눈만큼 뛰어난 렌즈는 없는 것 같아요.
딱 하나 갖고 못보는 것이 없으니.
200만원하는 카메라가 부끄럽다고 멀찍이 떨어져계셨다니..
그럼 전 뭐에요.ㅋㅋ
아마도 기자에겐 훨씬 더 고급스런 카메라여야한다고 생각하셨나봐요.
그래도 맨위의 사진 너무 아름다운데요?^^
아니, 이게 200만원짜리 맞어? 그런 소리였죠.
카메라 값은 70만원이었는데
당시만 해도 엄청나게 비쌌던 플래시 메모리 카드, 추가 렌즈 등등이 합쳐져 200만원이 되어 버렸죠.
지금의 디카로 치면 한 20만원짜리 디카 성능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가을소리님의 디카가 그때의 200만원짜리보다 한 10배는 좋은 카메라인 셈이죠.
그래도 그걸 들고 좋다고 사진을 찍으러 다녔으니.
그때만 해도 지금 제가 쓰고 있는 DSLR은 3천만원 정도 하던 시절이라
정말 좋은 카메라는 꿈도 꿀 수 없었어요.
사실 요 사진 찍다가 엄청나게 고생했습니다.
그게 절벽 중간의 약간 펑퍼짐한 바위 위였는데
렌즈를 장착하다가 렌즈가 굴러떨어지는 바람에
그걸 찾으러 절벽 밑으로 기어 내려갔다가 와야 했죠.
지금은 다 아득한 추억이 되어 버리긴 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