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꽃 세상 2 – 부여 궁남지

벌써 이태전의 일이다.
2004년 8월 10일, 그날 나는 부여의 궁남지에 다녀왔다.
떠날 때의 하늘은 그 언저리로 하얀 구름이 솜처럼 피어있는 맑은 하늘이었다.
도착해선 먼저 궁남지 근처의 식당에 들러 냉면을 먹었는데
행색이 불쌍해 보였는지 상당히 많이 주었다.
그거 남김없이 먹느라고 무척 힘들었다.
셈을 치루고 나오면서 양이 아주 많다고 했더니
보통은 그렇게 많지 않은데 나에겐 더 주었다고 했다.
먹는데는 힘들었지만 마음씀이 고마웠다.
궁남지는 시외버스 정류장에서 그다지 멀지 않아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있었다.
나는 갈 때는 몰라서 택시를 타고
(타자 마자 내리는 듯한 느낌의 거리였다)
올 때는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갔다.

Photo by Kim Dong Won

꽃들은 대개 피기 전엔
꽃잎을 보자기 삼아 무엇인가를 곱게 싸둔다.
연꽃도 예외가 아니다.
그렇게 감싸놓으면 속이 궁금해진다.

Photo by Kim Dong Won

연꽃은 꽃이 핀다는 느낌보다
꽃이 열린다는 느낌이 더 강하다.
그것도 환하게 열리는 느낌이다.
그렇다면 연꽃이 열리기 전,
그 속에 감싸둔 것은 빛이었을까.

Photo by Kim Dong Won

원래 한낮에는 빛을 밝혀놓아도
그 빛이 태양빛에 지워져 버려 잘 알 수가 없다.
그래서 가로등이 켜져 있어도
그 밑을 지나가는 사람들은 아무도 그 사실을 모른다.
그렇지만 연꽃은 분명 불을 켜든 것도 아닌데
언제나 환하다.

Photo by Kim Dong Won

연꽃 속엔 사실 연밥이 들어있다.
꽃잎을 보낸 연밥은 마이크 모양이 되었다.
연꽃의 합창이라도 들려주려는 것일까.

Photo by Kim Dong Won

연밥은 익어간다, 탱글탱글.

Photo by Kim Dong Won

연잎은 위에서 내려다 보면
짙은 녹색이지만
아래서 올려다보면
2할쯤의 빛을 아래로 흘리면서
투명한 연두색으로 낮빛을 바꾼다.
2할의 빛을 아래로 흘리는 것만으로도
잎의 실핏줄이 다 보일 정도로 투명해진다.

Photo by Kim Dong Won

연잎의 꿈은 다양하다.
이 연잎은 배가 되는게 꿈이었다.
그래서 잎의 양쪽 가장자리를 말아올려
제 스스로 배가 되었다.
어디로 저어가고 싶었던 것일까.

Photo by Kim Dong Won

이 연잎은 연잎에 누워 한잠 청하며
정말 한낮의 꿈에 취하는 것이 꿈이다.

Photo by Kim Dong Won

이 연잎은 왜 이렇게 축쳐진 것일까.
“어허, 축쳐졌다니!
나는 김삿갓 연잎이오.
그래서 잎을 아래쪽으로 눌러쓴 것이오.”

Photo by Kim Dong Won

연못의 한가운데 정자가 있다.
걸어들어가고 걸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난 정자보다는 연꽃이 좋았다.

Photo by Kim Dong Won

떠날 때의 날씨는
손톱만큼도 비올 기미를 보이지 않았으나
갑자기 날이 흐려지더니 소나기가 밀려왔다.
바람이 거세게 몰려다니고 있었으며,
나무들의 뿌리라도 뽑을 기세였다.
우산을 준비하지 못한 나는 화장실로 대피했다.

Photo by Kim Dong Won

소나기의 공습.
유리창의 방어.
헤, 완벽하지.
어디 한번 더 세게 내려봐라.

Photo by Kim Dong Won

잠시 비가 뜸한 사이를 틈타 바깥으로 나왔지만
다시 또 빗발이 거세졌다.
여기저기 만들어놓은 원두막으로 피신을 했다.
원두막의 처마끝에선 볏짚가리를 타고 빗방울이 흘러내렸다.

Photo by Kim Dong Won

빗줄기가 끊임없이 연잎을 두들기면서
연잎은 한시도 가만있질 못하고 시달렸다.
연잎의 가운데 고인 물도 함께 출렁거렸다.

Photo by Kim Dong Won

그러다 무게를 이기지 못하면
연잎은 고인 물을 아래로 주루룩 쏟아버렸다.
가느다란 연잎 폭포가 생겼다.

Photo by Kim Dong Won

올라 올 때 차창으로 보니
강이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Photo by Kim Dong Won

그리고 해가 산넘어로 넘어가면서
세상은 어둠에 젖어들었다.
연꽃과 보내다 오는 그 하루의 저녁은 아늑했다.

11 thoughts on “연꽃 세상 2 – 부여 궁남지

  1. 처음 남편을 만났을때 무슨 꽃을 좋아하냐고 물었더니
    연꽃이라고 했던게 생각나서 웃었네요.^^
    남자들은 자잘한 꽃이름들 잘 모르잖아요.
    아마도 그래서 그때 떠오른꽃이 연꽃이 아니었을까 생각이되요.^^

  2. 혼자 갔었던 곳이네…
    그때 무지 후덥지근하니 더웠던 것 같은데…
    그것도 벌써 2년전이 아니라 3년전이 되네.
    참 세월도… 급하시긴… 쉬어가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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